포크 들고 잠든 망둑어를 깨우다

[갯살림 31]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 갯벌

등록 2006.11.08 14:02수정 2006.11.11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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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를 보고 눕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칠게와 함께 서남해안의 갯벌을 지배하는 망둑어라는 녀석들도 누울 자리를 가린다.

이 친구들은 너무 깊지도 않으면서 갯골이나 갯등에 물이 방방한 곳이다. 헤엄을 치기도 하고, 갯벌 위를 걸어다 다니며, 급할 때는 뛰어간다. 배 앞쪽에 변형된 둥근 지느러미가 있어 빠르게 흐르는 휩쓸리지 않고 빨판처럼 바닥에 딱 붙을 수 있어 빠른 물살도 견디어 낸다. 뛰어난 적응력과 잡식성인 망둑어는 갯벌을 지배한다.


대부도는 시화방조제가 막히고 선감도-탄도-불도가 연결되면서 안산과 화성으로 연결되어 더 이상 섬이 아니다. 시화방조제 안쪽 갯벌들은 모두 사라졌다. 담수호를 조성하겠다는 물길을 막은 시화호는 전문가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붇고 나서, 물길을 열었다.

해수를 유통시켜 시화호 안쪽 수질을 개선시키겠다는 것이다. 예상대로 물길이 열리면서 방조제 안쪽에 태공들이 낚시하기에 이르렀다. 이놈의 인간들은 한번 실험으로 성이 안차는지 다시 방조제 안쪽 마산수로에 내측방조제를 쌓아 작은 담수호를 만들었다. 여기도 수질문제가 발생하자 시화호와 연결하는 수문을 열어 수질을 관리하고 있다. 이쯤에서 다시 새만금을 생각해 본다. 답답하다.

a 대부도 연목갯벌

대부도 연목갯벌 ⓒ 김준


a 망둑어는 어디 있을까?

망둑어는 어디 있을까? ⓒ 김준


생활력이 강한 망둑어 갯벌을 지배한다

망둑어는 세계적으로 1875종이 알려졌으며, 우리나라는 48종이 있다. 가을철 사랑을 받는 짱뚱어탕의 주재료 짱뚱어도 망둑어과에 속한다. 여러 종의 망둑어가 있지만 식용으로 잡는 것은 서남해역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은 풀망둑과 문절망둑이다. 이러한 망둑어에 대한 구분은 전문가들이나 가능하지 어민들은 지역에 따라 운저리, 망둥이, 범치, 문절이, 고생이, 무조리, 문주리 등으로 부른다.

<자산어보>에는 ‘큰 놈은 두 자가 조금 못된다. 머리와 입은 크지만 몸은 가늘다. 빛깔은 황흑색이며 고기 맛은 달고 짙다. 조수가 왕래하는 곳에서 돌아다닌다. 성질이 완강하여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으므로 낚시로 잡기가 매우 수월하다. 겨울철에는 진흙을 파고 들어가 동면한다.


이 물고기는 그 어미를 잡아먹기 때문에 무조어(無祖魚)라고 부른다.’라고 소개되어 있다. <현산어보를 찾아서>를 쓴 이태원 선생은 정약전이 무조어라고 기록한 것은 ‘문절이’나 ‘무조리’를 한자어로 옮긴 탓이라고 추정한다.

a 대부도 연목갯벌의 망둑어

대부도 연목갯벌의 망둑어 ⓒ 김준

정약전선생이 기록한 것처럼, 연목갯벌의 누워서 잠을 청하는 녀석들은 옆에까지 첨벙거려도 도망가질 않는다. 낙지나 짱뚱어라면 벌써 구멍 속으로 숨고 말았을 터인데. 하긴 도망간들 손바닥만 한 웅덩이 갇힌 꼴이지만. 작살을 거의 망둑어 등에 닿을 정도로 가지고 가도 도망갈 줄 모른다. 맨손으로도 쉽게 잡을 수 있다.


녀석들은 머리를 물 밖에 내놓고 꼼짝하지 않는다. 때로는 구멍에 몸을 숨기고 머리만 내놓고 잠을 자기도 한다.

망둑어는 낚시로 잡고, 그물로 잡고, 작살로도 잡는다. 옛날에는 나무에 못을 밖아 만든 작살로 망둑어를 잡았다. 대부도의 연목갯벌에서 잡히는 망둑어는 ‘풀망둑’이다. 이들은 연안과 강 하구의 바닥에 서식하며, 갑각류, 어류 등 작은 동물을 잡아먹는다. 산란기는 4-5월이며, 수명은 2년이다. 흔히 낚시로 잡는 망둑어도 ‘풀망둑’이다.

이들은 겨울철이면 뻘 속에 있다가 봄에 나와 짝짓기를 한다. 볼 일을 마친 망둑어들은 뼈만 남고 말라 죽고 만다. 대신 새끼들은 갯지렁이나 게를 잡아먹고 무럭무럭 자란다. 특히 겨울잠을 준비하는 가을철에는 먹성이 몇 배로 증가해 토실토실하다. 그래서 ‘봄 보리멸 가을 망둑’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망둑어는 가을에 먹어야 제격이다.

태공들은 망둑어 낚시는 낚시로도 인정하지 않는다. 가을철이면 한강하구에서 영산강하구 갯벌까지, 방조제나 다리 위 어디에서나, 제법 폼을 갖춘 낚시꾼부터 상점에서 구입한 5천 원짜리 낚시까지 많은 사람들이 망둑어 낚시를 즐긴다.

a 망둑어 낚시하는 사람

망둑어 낚시하는 사람 ⓒ 김준


a 잡은 망둑어를 말리는 모습

잡은 망둑어를 말리는 모습 ⓒ 김준


이놈의 하늘이 ‘염장’지르네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려나 보다. 방아머리 선착장에서 가시리칼국수를 한 그릇하고 연목갯벌로 가는 길이다. 갑자기 번개가 여러 차례 하늘을 가르더니 천둥소리와 함께 동전만한 비가 쏘다진다. 이럴 때는 왜 일기예보도 잘 맞는지. 유성에서 일을 보고 안산으로 오는 길은 예상보다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시골에 사는 탓에 주차장이 되어버린 고속도로에 짜증이 날만 하지만 느긋하고 즐겁다.

저녁에 불을 들고 망둑어 잡이를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소주도 한 잔 할 터인데 좀 막히면 어떤가. 보름 전에 물때를 확인하고 대부도 상동에 사는 김종선님과 날을 받았다. 그런데 하필 오늘 그것도 갯벌에 나가려고 하는 시간에 비가 오는지. 김종선님은 현지 주민으로 대부도와 시화호에 애정을 가지고 오랫동안 지킴이 활동을 해오고 있다. 지금은 작은 펜션을 운영하며 갯벌체험과 대부도 안내를 하기도 한다.

도로는 막혔지만 내내 차창 밖으로 약간 모자란 둥근달이 떠올랐다. 그때까지 일기예보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대부도에 도착해 갯벌에 들어가려고 준비를 하는데 동전만한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이런 제기랄, 지은 죄라면 대학 다니면서, 친구생일 선물로 서점주인 몰래 책 몇 권 훔친 것 밖에 없는데.

'이놈의 하늘이 염장을 지르네.'

a 김종선님이 직접 고안한 망둑어 잡이 '작살'

김종선님이 직접 고안한 망둑어 잡이 '작살' ⓒ 김준

망태와 작살을 꺼내며 망둑어 잡이 채비를 하던 김종선씨가 중얼거리며 장화를 벗고 안으로 들어간다. 나는 과학보다 사람들의 경험을 더 믿는다. 이번에도 그랬다. 굵은 빗방울이 잠시도 밖에 서있기 어려운데, 김씨는 펜션 안에서 채비를 해놓고 기다리고 있다. 괜스레 객들만 밖에서 안타깝게 시꺼먼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금방 그칠 테니 안으로 들어와 기다리라는 말을 흘렸지만.

잠시 후 비가 그치더니 하늘이 조금씩 열린다. 그럼 그렇지. 랜턴 3개를 준비하고 김씨는 망태 한 개는 등에 지고, 하나는 어깨에 걸었다. 펜션을 돌아 후미진 곳을 벗어나자 물이 빠진 갯벌이 반짝거린다. 갯벌로 들어가는 긴 시멘트 포장길로 들어서자 반기는 녀석들은 갯강구다. 반기는 것이 아니라 갑작스런 인간의 출현에 짜증이 나는지 어서 지나가라고 길을 열어준다.

신발을 벗어 놓고 양말만 싣고 갯벌에 들어섰다. 갯벌에 들어 간지 보름도 되지 않았는데 차갑다. 하긴 첫눈이 벌써 내리지 않았던가. 몽실몽실한 갯벌이 발아래 우물우물하다 옆으로 밀려난다. 대부도와 구봉도 사이에 있는 연목갯벌은 김씨가 망둑어를 즐겨 잡는 것이다. 어디 웅덩이에 큰 망둑어가 있고, 어디 웅덩이에는 작은 놈이 있는지 훤하다. 그는 갯벌전문가임에 틀림없다.

연목갯벌 망둑어들 작살났다

망둑어들이 보금자리를 마련한 곳은 대부도와 선재도 그리고 구봉도 사이의 연목갯벌이다. 김씨는 망둑어를 잡기 위해 준비한 도구는 작살이 전부다. 작살이라 하지만 포크 손잡이를 검정 테이프로 칭칭 감아 두툼하게 손잡이를 만들고, 삼발이를 조금씩 벌려 넉넉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필요한 것은 직접 만들어 쓰는 김씨, 지금까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망둑어를 잡았지만, 이 작살처럼 망둑어 잡이 딱 맞는 것은 없다고 자신한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물이 빠지는 밤이면 이 녀석들은 물이 고인 웅덩이에 드러눕는다. 숫제 작은 갯골에는 물 반 망둑어 반이란다. 좀 큰 망둑어를 원하면 갯골 깊은 곳으로 가면 된다. 깊다고 해봐야 정강이에도 이르지 않는다.

옛날에는 횃불을 들고 나갔다지만 지금은 랜턴을 들고 나간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예상했던 것 보다 비가 많이 와 갯골에 불을 비추었지만 물이 흐려서 바닥이 누워 있는 망둑어의 형체가 보이지 않는다. 비만 그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이런!. 김씨 갯골을 포기하고 갯등 위로 올라서더니 작은 웅덩이로 불빛을 옮겼다.

a 망둑어 잡이 1 - 발견

망둑어 잡이 1 - 발견 ⓒ 김준


a 망둑어 잡이 2 - 작살로 찌르며 손가락을 잡기

망둑어 잡이 2 - 작살로 찌르며 손가락을 잡기 ⓒ 김준


a 망둑어 잡이 3 - 들어올리기

망둑어 잡이 3 - 들어올리기 ⓒ 김준


a 망둑어 잡이 4 - 망태담기

망둑어 잡이 4 - 망태담기 ⓒ 김준


그곳에는 망둑어가 얌전히 누워있다. 녀석들, 반갑다. 직접 만든 작살을 움켜쥐는가 싶더니 어느새 망둑어를 망태 안에 담는다. 몇 차례 반복해 망둑어를 잡았지만 사진찍기 실패. 너무 빠르다. 같이 갔던 선생님들 카메라를 들이대고 준비하지만 도통 맞출 수 없다. 그러길 몇 차례, 김씨의 행동이 카메라에 잡힌다.

이렇게 포크로 작살을 만들기 전에는 나무에 못을 밖아 잡았는데 망태에 집어넣기 너무 불편했다. 필요가 발명가를 만든다고 했던가. 그래서 만든 것이 한손에 딱 들어가는 작살이다. 만들었다기보다는 식탁위에 있던 도구를 갯벌로 가져왔을 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어구가 된 것이다. 오른손에 작살을 쥐고 누워있는 망둑어를 찌르면서 엄지와 검지로 머리를 잡는다. 망태에 집어넣으면서 망둑어를 손가락으로 밀어 빼낸다. 이 동작이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왼쪽에 영흥도로 들어가는 다리 불빛이 가깝고, 오른쪽 구봉도 상가 노래방에서 노랫소리가 갯바람을 타고 들여온다. 갯벌 한 가운데서 듣는 도시의 소음들이다. 비만 오지 않았다면 망태 가득 잡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하지만 묵직한 망태에 모두들 만족한다. 이제 남은 것은 한 가지 뿐이다. 망둑어를 찾아 꽤 멀리 들어왔다. 잰걸음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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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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