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납치당할 '뻔' 했었다?

[取중眞담] 시청 지하철역에서 만난 성난 농심과 GT의 고민

등록 2006.12.01 18:15수정 2006.12.01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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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30일 국회 당의장실에서 열린 한미 FTA 특별위원회 간담회를 갖고 김종훈 수석대표로부터 경과사항을 보고 받았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30일 국회 당의장실에서 열린 한미 FTA 특별위원회 간담회를 갖고 김종훈 수석대표로부터 경과사항을 보고 받았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지난달 30일 낮 김종훈 한미FTA 한국 측 수석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전날(29일) 있었던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했다. 이를 기자가 보충 취재 등을 통해 김 의장의 관점에서 다시 각색해 소개한다.

저녁 7시께,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창작과 비평사> 시상식에 참석했다가 오랜만에 만난 문인들과 담소를 나누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마침 운전을 담당하는 비서관이 결혼을 하는 바람에 차를 가져오지 못했다. 다른 보좌관이 운전을 하겠다는 것을 그냥 일찍 들어가라고 돌려보낸 터다.

바로 택시를 타려는데 멀찌감치 시청 지하철역이 보였다. 정계개편으로 촉발된 당내 친노-반노 갈등, 예상치 못한 노무현 대통령의 '여야정 정치협의체' 제안, 그리고 노 대통령의 '임기' 발언과 탈당 시사.

오전에 당 비상대책위 회의에서는 "당이 중심에 서서 민심을 북극성으로 삼고 오직 민심에 복종하는 정치를 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답답했다. 기분도 그렇고 해서 시청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서자마자 피켓을 든 일단의 무리들과 마주쳤다. '한미FTA 저지 범국민 총궐기대회'에 참여했다가 해산하는 농민들이었다. 행사의 원천봉쇄도 모자라, 시내에 모여있던 시위대까지 방패를 휘두르며 강제해산 시킨 경찰 때문에 이들은 몹시 흥분해 있었다.

문득 한 여성 농민이 이쪽을 바라보고는 크게 소리쳤다. "열린우리당 의장이다!" 주변에 있던 농민들이 "어디? 어디?"하며 달려든다. 그들의 본노어린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얼굴에 웃음을 띄우며 그들에게 다가섰다. 나를 둘러싼 그들은 일제히 울분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곤혹스러웠다.

"여러분은 여러분 주장이 있고, 저희들은 여러분 주장도 경청하되 종합적으로 판단내리고 결단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내 팔을 잡아끌며 더욱 거칠게 항의했다. 그들은 분명 나를 납치할 생각이 없었지만, 주변에서 보면 마치 그런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더 이상의 대화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결국 그들을 뒤로 하고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한미FTA... 그리고 4번의 퇴짜


김근태 의장은 김종훈 대표에게 에피소드를 소개한 뒤, "당시 분위기는 좀 험했다"며 "그러나 농민들의 그런 우려는 한편으로 타당성이 있기 때문에 협상 대표단에서 이런 농민들의 절박한 요구에 대해서도 경청과 고려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도 김 의장은 "우리당은 한미FTA 비준안이 국회에 제출되면 그에 대해서 찬반만 결정하는 야당과 다르다"며 "그것에 대해 무한 책임이 있기 때문에 과정 등에서 당도 합당한 역할을 하고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전날 "당이 국정의 중심에 서겠다"고 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실제 한미FTA 문제를 바라보는 김근태 의장과 노무현 대통령의 시각 차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5일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진행된 당·정·청 4인 회동에서 김근태 의장은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FTA 문제가 심각하다. 정부가 '한미FTA 반대 범국민운동본부'에 차관급 인사를 보내서라도 적극적인 설득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고 요구했다고 한다.

김 의장이 청와대와의 갈등 속에서도 4번씩이나 노 대통령과의 개인면담을 요청했던 목적도 이런 문제와 무관하지 않았다. 그는 노 대통령에게 직접 한미FTA 문제와 관련 민심의 거센 반대 목소리를 전달하려고 했다. 결국 그 4번의 면담 요청이 번번이 퇴짜를 맞으면서 당청 갈등은 '결별' 수순으로까지 이어졌다.

당 지지율이 바닥을 치면서 지지층이 급속히 와해되고, 한미FTA 문제 등으로 민심이 당으로부터 겉잡을 수 없이 이탈하고 있다. 이제 청와대와도 관계 정리에 나서야 하는 김근태 의장으로서는 농민들을 뒤로 하고 옮기는 발걸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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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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