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평화'는 있었지만 '반핵'은 없었다

[取중眞담] 남북 언론인, 해방 이후 60년만의 첫 만남, 그러나...

등록 2006.12.03 17:56수정 2006.12.05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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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 11월 29일, 해방 이후 처음으로 남북언론인들이 금강산에서 만났다.

지난 11월 29일, 해방 이후 처음으로 남북언론인들이 금강산에서 만났다. ⓒ 오마이뉴스 구영식


지난 11월 29일 금강산에서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해방 이후 처음으로 남북 언론인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60여년만의 일이라고 한다.

남측 대표단도 "해방 이후 처음으로 남북의 언론인들이 공식적인 만남을 갖는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60여년만의 만남'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또 해방 이후 첫 만남이란 의미에 걸맞게 규모도 제법 컸다. 남측 110여명, 북측 50여명 등 총 160여명의 언론매체 종사자들이 서로 얼굴을 맞댔다.

하지만 60여년만에 이루어진 남북언론인 토론회에는 '반전평화'는 있었어도 '반핵'은 없었다. 남북언론인들 모두 '반전평화'를 소리높여 외쳤지만, 정작 한반도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북핵문제'에는 사실상 침묵했기 때문이다.

"반전반핵" 외치면서도 '한반도 비핵화' 주장 못 펼쳐

이날 외금강 호텔 근처에 위치한 온정리문화회관에서는 '6·15 공동선언 실천과 남북언론인들의 역할'이란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란 이름을 내걸긴 했지만 '연설회'에 가까웠다.

이날 총 6명의 남북한 언론인들이 연설에 나섰다. 기자는 연설에 나선 남북한 언론인들이 가장 날카로운 현안인 북핵문제를 어떻게 다룰지 궁금했다.

'남북문제 전문가'로 통하는 정일용 6·15공동선언 실천 남측위원회 언론본부 상임대표(한국기자협회장)가 남측인사로는 처음으로 연설에 나섰다.


정 대표는 "제국주의 속성에 젖어 있는 이른바 패권국가와 그 추종국들은 오로지 이 땅(조선반도)만의 비핵화를 요구하고 있다"며 "한반도 비핵화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핵비확산조약(NPT)에 나와 있는 대로 핵무기 비확산 체제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핵무기 보유국들부터 먼저 핵 군축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핵무기 보유국들이 핵군축에 앞장섬으로써 핵전쟁 위험이 없는 세계를 만들려는 인류의 염원에 부응해야 할 것"이라며 "반제반핵, 반전평화는 언론인으로서 결코 내려 놓을 수 없는 깃발"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그가 '핵군축'을 언급하긴 했지만, 그 칼날은 "평화교란자"인 미국을 향해 있었다. 또 그는 연설에서 "반제반핵, 반전평화"가 언론인의 사명이라고 또렷이 언급했지만, 핵실험을 감행한 북한의 책임에 대해선 침묵했다.

남측의 두번째 연설자는 고승우 남측위원회 언론본부 정책위원장(<미디어오늘> 논설실장)이었다. 고 위원장은 "남북문제는 비이성적 방식, 즉 무력 등의 방식으로 결코 해결될 수 없다"고 전제한 뒤, 잠시 북한의 미사일 실험발사와 핵실험을 연설의 주제로 끌어들였다.

그는 "남북 간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전쟁이 일어나는 비극은 피해야 한다"며 "남북 모두 이 점을 확인하고 평화적이고 생산적인 미래를 공동 설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연설에 나선 남북한 인사들을 통틀어 거의 유일하게 북핵문제를 직접 언급했다. 하지만 그의 연설은 톤도 매우 낮았을 뿐만 아니라 특히 '한반도 비핵화'라는 결론에도 이르지 못했다.

오히려 기자는 그가 만남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너무 감개무량해서 숨이 막힐 지경" "민족의 이름으로 큰 박수를 치며 기뻐할 일" 등 감정적 표현을 보면 더욱 그렇다.

진보적 논객 손석춘마저 북핵문제에 '침묵'

남측에서는 마지막으로 손석춘 남측위원회 언론본부 정책위원(<한겨레> 기획위원)이 연설에 나섰다. 손 위원이 그동안 남한의 보수진영은 물론 진보진영을 향해서도 거침없이 붓대('펜'의 북한식 표현)를 휘둘러왔다는 점에서 기자의 기대가 컸다.

하지만 연설의 전반부는 미 제국주의 비판과 6·15 공동선언에 관한 추억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가 정작 말하고 싶었던 내용은 연설의 후반부에 배치돼 있었지만, 여기에서도 북핵문제는 빠져 있었다.

손석춘 위원은 "'연합-연방제 통일' 없이 민족경제의 균형발전은 추구될 수 없고, 민족경제의 균형발전 없이 '연합-연방제 통일'은 의미가 없다"며 "통일은 남과 북의 민족구성원 모두 삶의 질이 나아지는 방법으로 이뤄져야 하기에 더 그렇다"고 강조했다.

손 위원은 "남측 언론은 그동안 '통일비용'에만 관심을 기울여왔는데 오늘 남북언론인 토론회를 계기로 이제 통일효과에 눈 돌려야 한다"며 "언론은 통일민족경제의 효과를 알려 나가야 할 뿐만 아니라 구체적 실현을 위한 과제를 의제로 적극 설정해 나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개성공단에 부정적인 미국의 입김에 흔들리는 보도와 논평을 벗어나 오히려 개성공단에서 더 진전된 경협을 의제로 설정해 나가야 한다"며 '남과 북이 서로를 찬양하고 고무해야 한다'는 고 문익환 목사의 발언을 언급한 뒤 연설을 끝맺었다.

a 정일용 6.15 공동선언 실천 남측위원회 언론본부 대표와 정덕기 북측위원회 부위원장이 만나 반갑게 악수하고 있다.

정일용 6.15 공동선언 실천 남측위원회 언론본부 대표와 정덕기 북측위원회 부위원장이 만나 반갑게 악수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구영식

북측 인사들 "반통일언론이 머리를 쳐들지 못하도록"

연설에 나선 북측 인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역시 '반전평화'를 소리높여 외쳤지만, 그들에게서 또 다른 진보적 가치인 '반핵'의 목소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먼저 조충환 6·15공동선언 실천 북측위원회 언론분과위원회 부위원장은 "언론의 생명인 객관성과 공정성을 떠나 외세와 그 추종세력들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편파보도와 의도적인 왜곡보도 그리고 비본질적이며 부차적인 현상들을 확대 과장하여 민족의 단합과 화해에 저해를 주는 현상이 아직까지 없어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대의 요구와 현실을 외면하고 양심을 버린 붓대는 사실상 붓대가 아니라 막대기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은 시대의 나팔수가 아니라 전진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며 "동족 사이의 불신과 대결을 부추기고 매국배족적인 편파보도와 반통일언론이 머리를 쳐들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정명순 북측위원회 언론분과위원은 "편파보도, 왜곡보도는 6·15시대를 좀먹는 해독행위"라며 "그 무슨 '표현의 자유' '객관성'을 표방하며 통일에 이롭지 못한 무책임한 말과 글을 남발하지 않아야 하고, 민족의 화해와 단합에 백해무익한 여론전으로 통일잔치상에 재를 뿌리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홍동철 북측위원회 언론분과위원도 "북과 남의 모든 언론인들은 나라와 민족의 운명과 안전을 첫 자리에 놓고 미국과 그 추종세력의 침략과 전쟁책동의 위험성을 폭로하고 이를 반대하는 반전평화운동에 온 겨레가 적극 떨쳐 나서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듯 북측인사들은 주로 미국과 남한의 보수언론을 비판하는 데 집중했다. 물론 이러한 태도는 이미 예상된 것이었다. 하지만 '한반도 비핵화'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었다는 점을 헤아릴 때, 북측인사들 연설 역시 아쉬움을 남겼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지만...

남북한 언론인들은 토론회가 끝난 후 '6·15 공동선언 실천'을 강조하는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하지만 참석자들의 눈과 귀가 쏠려 있었던 '한반도 비핵화'는 공동성명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공동성명은 "민족문제에 대한 외세의 부당한 간섭과 전쟁위협을 단호히 반대 배격하고 6·15 공동선언 실천을 후퇴시키고 동족 사이에 대결과 긴장을 불러올 수 있는 민족분열적인 보도를 배격하고 민족의 화해와 단합, 나라의 평화와 통일에 이바지하는 방향에서 공정하게 보도한다"고만 밝혔다.

2차 남북언론인 토론회와 관련해서도 "남북언론인 토론회의 성과를 발전시키기 위한 남북언론들의 공동의 협력사업을 계속 해 나간다"며 구체적인 시기는 명시하지 않았다.

토론회에 참석한 한 기자는 "아무리 첫 만남이라고 하지만 북핵문제와 관련 아무런 언급도 없이 공동성명을 발표한 것은 정말 실망스럽다"며 "이럴 거면 뭐하러 토론회를 열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남측대표단의 한 인사는 "북측 언론인들이 온 것만 해도 성과"라며 "우리 시각으로만 보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하지만 한반도 정세에 가장 민감해야 할 남북언론인들이 북핵문제와 같은 중대한 현안에 대해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지 못한다면 그 만남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또 '해방 이후 첫 만남'이란 의미를 한껏 살리기 위해서라도, 공동성명에 '남북언론인들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문구가 꼭 들어갔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고민이야말로 '반전반핵'이란 깃발을 내려놓을 수 없는 언론인의 숙명일 것이다.

a 토론회가 끝난 뒤 남북언론인들이 모여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토론회가 끝난 뒤 남북언론인들이 모여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전국언론노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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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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