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가 만들어낸 아름다움

달내일기(85)-달내마을에는 달이 참 아름답습니다

등록 2006.12.07 16:59수정 2006.12.07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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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달내마을이란 지명은 달이 떠서 냇물에 비치면 달 그림자가 냇물과 함께 흘러가는 정경이 아름다운 마을이란 뜻에서 왔다. 이 달내가 일제시대에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월천(月川)이란 말로 변하여 지금은 다들 월천마을이라 부른다. 그래도 나이 든 이들 중에는 달냇골이란 옛이름을 써는 이도 간혹 있다.


지명처럼 이 마을과 달은 떼려야 뗄 수가 없다. 이곳은 사방이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하늘 부분만 뻥 뚫린 덕인지 구름 등의 기후 변화가 심하여 다른 곳에서는 평범한 자연 현상이 여기서는 신비로울 때가 많다.

a 실수로 찍은 달내마을의 달 1

실수로 찍은 달내마을의 달 1 ⓒ 정판수


@BRI@ 어젯밤(12/6)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난 뒤 다 꺼진 걸 확인하러 나가 불문을 닫고 들어오다가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 그런데 … 달무리, 달무리 진 아름다운 둥근달이 떠있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이 하도 예뻐 카메라를 들고 와 셔터를 눌렀다. 그런데 캄캄한 밤에 달을 찍으러 들다니 …. 사진 찍는 솜씨가 한참 서툰데다 디카마저 아주 오래 전에 구입한 거라 화소가 떨어지는데 그런 만용을 부리다니 ….

그리고 잊었다. 오늘 아침 직장에 와 전에 찍은 다른 사진을 뽑아보려는데 어제 찍은 사진도 있었다. 살펴보았더니 역시 엉망이었다. 초점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흔들리다보니 흐트러져 하나의 달이 두 개로, 어떤 것은 길게 꼬리를 이어 보이는 게 아닌가.

다른 걸 보려고 넘기려는데 어느 새 곁에 있던 선생님이 보시더니, "어 이게 뭐예요? 달 아니예요? 참 희한하네." 하신다. 그 소리에 역시 다른 이가 보더니 같은 말을 한다. "별난 동네 사시더니 그 동네는 달도 별나게 보이네요." 하시며.


a 실수로 찍은 달내마을의 달 2

실수로 찍은 달내마을의 달 2 ⓒ 정판수

몇 사람이 신기한 걸 봤다는 듯이 언급하는 바람에 잘못 찍어 그렇게 됐다는 말을 할 기회를 놓쳤다가 한창 칭찬을 들은 뒤에 사진 찍는 솜씨가 미숙해서 그렇게 됐다고 했더니, "야 이건 잘못 찍은 게 아니라 완전 예술이네요. 정말 멋있어요." 하신다.

그 말에 더 부끄러움을 느끼다가 가만 보니 처음엔 좀 이상하다가 자꾸 보니 정말 신기하고 신비롭다. 어떻게 잘못 찍은 사진이 본래 모습보다 더 나아보이는지. 실수한 게 도리어 더 나은 작품이 되다니 ….


a 실수로 찍은 달내마을의 달 3

실수로 찍은 달내마을의 달 3 ⓒ 정판수

‘백치 아다다’의 작가 계용묵은 ‘효조(曉鳥 : 새벽 새)’란 글에서 추사 김정희의 선생 조광진이 겪었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조광진이 잠자리에서 갓 깨어나 뜰 앞 나무 가지에서 재재거리는 참새들을 보고 필흥이 일어 ‘曉鳥’를 단숨에 써 젖혔다. 그러나 새 ‘鳥’의 아래 점 4개를 쓸 때 실수를 하여 마지막 점이 제대로 올라가지 못하고 아래로 축 처지게 되어 버려두었다.

몇 년 뒤 중국 여행길에 한 관리의 집에 들렀더니 그 글씨가 사랑에 걸려 있어 주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 처진 점을 살짝 올렸다. 그때 자리로 돌아오다 그 광경을 본 주인이 노발대발하자 선생이, 자신이 쓴 글인데 이전에 쓰다가 마지막 점을 잘못 찍어 그랬노라고 하자, 주인은, "무슨 소리냐, 잠에서 갓 깨어난 새가 무슨 흥이 있어 꼬리가 올라가겠느냐!"며 호통을 쳤다고 한다. 결국 조광진은 글씨를 잘 썼는지 모르지만 글씨를 볼 줄 몰랐던 것이다.

갑자기 오늘 조광진이 떠오름은 웬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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