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는 서울보다 안 좋은 곳일까?

[무작정 떠난 러시아-유럽여행 12] 모스크바 1

등록 2006.12.12 10:45수정 2006.12.13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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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모스크바 야로슬랍스키 역에 도착 직후

모스크바 야로슬랍스키 역에 도착 직후 ⓒ 강병구


뜨거운 햇살만큼이나 숨막히는 첫인상

5월 5일 모스크바 시간 오후 4시 42분. 2박 3일을 달린 기차가 드디어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러시아 혁명의 격정적인 느낌을 주던 곳이자, 신문과 뉴스를 통해선 아직도 뭔가 빨간 느낌이 남은 그 모스크바에 도착한 것이다.


@BRI@하지만 모스크바에 도착해 처음 느낀 것은 숨이 턱턱 막힐 정도의 더위였다. 어제 기차가 달리던 곳만 하더라도 눈이 내리고 있었는데 이게 무슨 조화인지……. 여하튼 뜨겁다 못해 따가울 정도의 햇살이 겨울 잠바를 입고 있던 나를 힘들게 했다.

기차에서 내려 플랫폼을 서성이며, 미리 연락해 두었던 효승이를 찾았다. 동갑내기 친구인 효승이는 모스크바 국립대학에 어학연수를 와 있는 상태였다. 한국을 출발하기 전에 주변을 수소문해 본 결과, 대학 동기 중 한 명이 효승이와 고향친구였고, 그걸 핑계로 연락해 모스크바 길잡이를 무조건 부탁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효승이도 3월말에 모스크바에 도착해 고작 한 달밖에 머물지 않았는데 여행 안내를 부탁한 것이다. 그것도 한국에선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친구의 친구라는, 사돈의 팔촌만큼 먼 관계임에도 말이다. 그저 여행객의 막무가내 강짜였다.

그럼에도 반갑게 맞아준 효승이는 쫓기는 듯한 발걸음으로 역을 빨리 빠져나가고자 했다. 모스크바에 도착했으니 역 사진도 좀 찍고, 구경도 하고 싶어하던 내 기대와는 사뭇 다른 행동이었다. 그래서 나는 효승이에게 역 구경 좀 하자고 했다.

“병구야, 여기까지 무사히 와서 참 다행인데, 왜 이 시기에 여길 왔니. 지금 모스크바는 외국인이 그렇게 함부로 돌아다닐 수 있는 시기가 아니야. 특히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선 빨리 빠져나가야 해.”


이야기인 즉, 4월말에서 5월 9일 전승기념일까지가 러시아 스킨헤드들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특히 올해는 유난스러워서 유색인에 대한 불상사가 많이 일어나 유학생들끼리도 조심하자는 말을 하고 다닌다고 했다. 25도가 넘는 날씨도 힘들었지만 그런 이야기들 들으니 더욱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a 5월 9일 전승기념일 행사 준비관계로 더이상 접근이 불가능했던 끄레믈

5월 9일 전승기념일 행사 준비관계로 더이상 접근이 불가능했던 끄레믈 ⓒ 강병구


불편하고 긴장되는 모스크바


첫인상부터 상당한 압박을 주던 모스크바는 이후로도 찌푸린 얼굴을 쉽게 풀어주지 않았다. 역에서 나와 택시를 잡으려고 하는데, 서두르는 동양인 둘을 만만하게 본 건지 택시기사들이 하도 터무니없는 값을 불러, 효승이는 미뜨로라고 부르는 지하철을 타자고 했다. 어차피 모스크바에선 지하철을 타고 혼자 돌아다닐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나야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뭔가 꺼림칙한 표정을 짓던 효승이는 모스크바에서 지하철을 타지 않는 이유에 대해 하나씩 늘어놓았다.

“무엇보다 지저분해. 도대체 점검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이 지하철이 언제 사고가 날지 모를 것 같은 느낌이야. 그리고 지하철은 스킨헤드 같은 불량배로 인한 사고가 가장 빈발하는 곳이야. 특히 해가 진 저녁에 타면 술병을 든, 술에 취한 사람들로 상당한 곤욕을 치르게 돼. 실제로 유학생들은 해가 지면 거의 지하철을 타지 않아. 특히 남학생들은 더더구나 조심하지. 내가 지하철을 안 타려고 해서 서운한 듯한데, 너도 여기서 생활하게 된다면 알게 될 거야.”

문짝이 나무로 짜여 유리창이 끼워진, 언제 만들어졌는지 알기도 힘든 전동차였다. 힘겨운 소리를 내가며 운행하는 것을 보니 그 말도 이해될 듯했다. 그리고 스킨헤드에 대한 효승이의 말은 가뜩이나 겁을 집어먹은 나에겐 섬뜩하기까지 했다. 뭐 그런 것뿐만이 아니었다. 이후 모스크바를 돌아다니면서 본 것들은 정말 가관인 것들이 많았다. 서울보다 심한 교통체증은 기본이고, 그런 길가를 걷고 있자면 매연에 눈이 아플 지경이었다. 차들의 배기통에선 시커먼 연기가 나오기 일쑤였고, 신호체계는 엉망이라 사고 나기 딱 알맞았다.

여기에 여행자에게 일말의 배려라곤 없는 모습이나 전승기념일로 더 극심해진 경찰의 검문과 스킨헤드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이전의 러시아 도시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상점과 관광지 점원들의 모습은 여행을 정말 힘들게 했다. 특히 숙박비를 비롯한 모스크바의 살인적인 물가는 제대로 여행을 시작도 못한 상황이지만, 이대로 서울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들게 했다. 이거 잘못 온 것 아니야?

a 전승기념일 행사 준비로 출입이 통제된 붉은 광장과 성 바실리 성당

전승기념일 행사 준비로 출입이 통제된 붉은 광장과 성 바실리 성당 ⓒ 강병구


모스크바가 서울보다 훨씬 나은 점은?

그렇다면 모스크바 여행이 정말 지우고 싶은 기억이었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 더불어 내가 이번 여행 중 가본 도시 중 최악이었냐고 말을 한다면 오히려 다시 가보고 싶은 다섯 곳 중 하나라고 말하고 싶다. 불쾌한 인상만큼이나 확실한 이국적인 모습, 그리고 훨씬 역사적이고 인간적인 도시의 모습이 모스크바에는 있다.

모스크바에서 가장 인상에 남은 것은 수많은 공원들이다. 도시가 만들어지면서부터 공원들이 도시계획에 들어 있던 모스크바는 그만큼 역사적이면서 도시생활을 풍족하게 해주는 도시였다. 효승이 덕에 신세를 지게 된 최 선생님의 권유로 가본 노보데비치 수도원 공원이나 깔로멘스꼬예 공원 외에도 수많은 공원들이 모스크바 시내나 인근에 있어 도시생활에 지친 900만의 모스크비치(모스크바 사람)들에게 여유를 준다.

a 깔로멘스꼬예 공원의 아름다운 성당과 숲

깔로멘스꼬예 공원의 아름다운 성당과 숲 ⓒ 강병구


여기에 끄레믈과, 테트리스로 더욱 유명해진 성 바실리 성당 같은 역사적 건물들, 모스크바 국립대학, 외무성 건물 같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생긴 스탈린 양식의 건물 등은 이국적인 도시 매력을 한껏 뽐낸다.

또 러시아 미술의 정수를 모았다고 할 만한 뜨레차꼬프 미술관을 비롯한 수많은 미술관과 박물관, 그리고 발레부터 아르바트 거리의 길거리 연주까지 넘쳐나는 예술의 향기는 잠시 스쳐 가는 여행객이란 신분을 아쉽게만 했다.

최 선생님과 모스크바에 머물던 마지막 날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흔히 한국 사람들이 갖고 있는 모스크바에 대한 인상들은 오래된 것이거나, 잘못 전달된 것들이 많아요. 물론 여전히 불편하고, 불친절한 면 때문에 지긋지긋하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살기 좋은 곳입니다.

오일달러가 몰려든 최근엔 특히 활기가 넘치는 것이, 앞으로가 기대되는 곳입니다. 외국에선 그렇게 안 보이는지 몰라도 푸틴 대통령 이후 정치적으로도 상당히 안정되면서 지지도도 높고, 적극적인 모습이 도시 곳곳에 보입니다.

오히려 요즘엔 한국의 모습이 더 어렵지 않나 싶어요. 그리고 변변한 공원 하나 제대로 없는 서울이 더 삭막하지 않나요? 겨울에 영하 20도가 우스운 날씨만 아니라면 모스크바 살기 좋은 곳입니다.”

어릴 적부터 갖게 된 왠지 모를 부정적인 인상을 3박 4일만의 여행만으로도 날려버릴 수 있었던 모스크바 여행, 그런 소중한 경험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a 노보데비치 수도원 공원에서 한가롭게 쉬고 있는 모스크비치들

노보데비치 수도원 공원에서 한가롭게 쉬고 있는 모스크비치들 ⓒ 강병구


a 우주선같은 모양의 모스크바 국립대학 모습

우주선같은 모양의 모스크바 국립대학 모습 ⓒ 강병구

덧붙이는 글 | 지난 4월 21일부터 7월 28일까지 러시아와, 에스토니아, 유럽 여러 국가를 여행했습니다. 기사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이어지며, 저의 블로그(http://blog.naver.com/kbk8101)에 오시면 더 자세한 여행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러시아여행클럽(http://cafe.daum.net/russiatravel)에도 연재합니다.

덧붙이는 글 지난 4월 21일부터 7월 28일까지 러시아와, 에스토니아, 유럽 여러 국가를 여행했습니다. 기사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이어지며, 저의 블로그(http://blog.naver.com/kbk8101)에 오시면 더 자세한 여행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러시아여행클럽(http://cafe.daum.net/russiatravel)에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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