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로 가는 기차, 2박 3일을 달리다

[무작정 떠난 러시아-유럽여행 11] 이르쿠츠크-모스크바 기차 이동

등록 2006.12.08 15:43수정 2006.12.09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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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고, 복잡하며, 혹은 무서운 유러피안 러시아로

우리는 종종 러시아가 유럽국가라는 사실을 잊는다. 특히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유럽도시라는 사실을 잊기 쉽다. 하지만 엄연히 우랄산맥 서쪽의 러시아지역은 유럽이다.


유러피안 러시아라고 부르는 이곳 지역들은 시베리아에 있는 시베리안 러시아와 사뭇 다르다고 했다. 사람도 훨씬 많고, 도시도 더 번화하며, 무엇보다 스킨헤드의 위협이 실재하는 곳이다.

@BRI@사실 이때까지 러시아를 여행하고는 있었지만, 당시 시끌시끌하던 러시아의 스킨헤드의 위협은 거의 느끼지 못했다. 그건 내가 조심하고 다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베리안 러시아에는 스킨헤드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거점으로 하는 러시아 스킨헤드들은 아직 시베리안 러시아의 도시들까지 영향력을 미칠 만큼의 규모는 아니라고 했다. 더구나 시베리아 지역의 비 슬라브계 러시아인들(고려인을 비롯한 중국인, 여러 토속인 소수민족 등)의 사회·경제적인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슬라브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공격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러므로 우랄산맥을 넘기 전까지는 스킨헤드의 공격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도둑이나 다름없는 경찰을 조심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런 유러피안 러시아로 가기 위해 민박집 우진 형님과 거기서 만난 동갑내기 친구 승희의 배웅을 받으며 이르쿠츠크 기차역에 도착했다. 비록 객지에서 6일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떠나는 마지막까지 챙겨준 너무나 고마운 사람들이었기에 지금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러시아의 수도권과 지방의 차이는?

a '009번 바이칼호' 앞에서 우진 형님과 함께.

'009번 바이칼호' 앞에서 우진 형님과 함께. ⓒ 강병구

이번에 탄 열차는 '009번 바이칼 호'라는 열차였다. 이 열차는 주로 관광객이 타는 관광열차로 바이칼 호수가 있는 이르쿠츠크와 모스크바 사이를 이동한다. 관광열차라 그런지 깔끔하고, 시설도 좋은 편이지만, 그만큼 비싸고 객차량이 적았다.


하지만 정작 인상적이었던 건 동승한 러시아인들의 무관심하고 쌀쌀맞은 태도였다.

먼저 차장. 이전에 탔던 열차들의 차장보다 젊고, 깔끔한 차림의 러시아 여자였는데, 어찌나 쌀쌀맞던지 뭐라 말하기도 힘들었다. 기차역까지 배웅을 와준 우진 형님, 승희와 함께 사진을 찍으려고 부탁하려는데, 무슨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니엣(아니)!" 하며 고개를 돌렸다.

이후에도 차장은 모스크바에 도착할 때까지, 라면을 사려고, 혹은 물을 좀 얻으려는 등의 질문이나 요청을 하려고 하면 말하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의 고자세를 취했다.

불친철한 것은 차장 뿐이 아니었다. 모스크바에 도착할 때까지 같은 칸에 탓 던 5명의 러시아인들은 하나같이 나에게 무관심했다. 물론 그들이 나에게 관심을 두어야만 하는 건 아니었지만, 하바롭스크에서 아무르 호를 타고 이르쿠츠크까지 도착하며 만났던 사람들이 나에게 보였던 반응과 너무 상반됐다.

이전에 만났던 그들은 타기가 무섭게 나에게 뭔가 말하려고 시도하고, 뭐 하나라도 나누어 먹자고 하던 것과 달리, 모스크바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도 나에게 말 한마디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언가 물어보려고 하면 고개를 돌렸다. 아무르 호에서 보드카를 나눠마시던 사샤, 바샤씨가 너무 그리웠다.

이런 반응에 대해 나름대로 내가 생각해 본 건, 번화한 유러피안 러시아와 아직은 낙후된 시베리안 러시아의 차이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여러 가지로 발전한 유러피안 러시아의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그만큼 외국인도 익숙하고 특별할 게 없을 듯했다.

그에 비해 시베리안 러시아의 사람들은 외국인이, 특히나 여행하는 외국인이 흔하지도 않고 신기해 보였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이전 기차에서 만난 러시아 사람들이 하나같이 내가 혼자 여행을 한다고 하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도 그래서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마치 우리나라 지방을 여행하는 외국인을 사람들이 신기하게 쳐다보는 것처럼, 러시아의 수도권과 지방의 차이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지루하게 5100여km를 달리다

a 아시아, 유럽의 경계비가 있다는 예까쩨린부르그의 역.

아시아, 유럽의 경계비가 있다는 예까쩨린부르그의 역. ⓒ 강병구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아 말할 사람도 없고, 계속 달리기만 하는 기차를 2박 3일 넘게 탄다는 것은 참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챙겨간 PDA에 넣어놓은 책과 게임이 아니었다면, 정말 어딘가에서 내려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신기하던 건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과 날씨였다. 지평선이 보이는 어마어마한 땅과 한두 시간쯤은 계속 이어지는 자작나무 숲. 그리고 하루 사이에 눈이 오다, 볕이 쨍쨍하다, 비가 오다가, 다시 눈이 오는 이상야릇한 날씨. 그리고 점점 모스크바로 다가갈수록 길어지기만 하던 낮과 짧아지는 밤. 이런 풍경이 2박 3일간에 볼 수 있었던 가장 인상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열차에서 만난 또 다른 여행객의 등장은 내가 지금 하는 것이 여행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었다.

'존'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 영국남자는 열차를 계속 돌아다니는 중인 모양이었다. 맨 마지막 칸, 내가 타고 있던 객차에 와서도 시끄럽게 영어로 방마다 돌아다니며 여행객을 찾는 모양이었다. 내가 있던 방에 와서도 인사를 하더니 영어가 가능하냐고 물었다. 그래서 시작된 존과의 몇 마디의 대화는, 내가 모스크바에 도착할 때까지 한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 이야기였다.

존은 나에게 다른 여행자들도 많이 있으니, 식사시간에 맞춰서 식당 칸으로 오라고 했다. 선뜻 알았다고 인사를 하고 생각해보니, 백야의 시작과 계속적인 시차 변화로 시간이 일정치가 않은데 언제가 식사시간인지 알 수가 없었다.

또 식당 칸의 값비싼 음식을 먹자는 말이 내 조건과는 맞지 않았다. '역시 영국인 여행자라 다른가 보다'하며 웃어넘기곤, 계속 모스크바까지의 지루한 기차이동만 즐기고 있었다. '핏, 설마 또 만나겠어?'하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a 아침엔 눈이 쌓이고(하루 사이의 변화 1).

아침엔 눈이 쌓이고(하루 사이의 변화 1). ⓒ 강병구

a 점심엔 비가 그치고(하루 사이의 변화 2).

점심엔 비가 그치고(하루 사이의 변화 2). ⓒ 강병구

a 오후엔 다시 눈발이 날리고(하루 사이의 변화 3).

오후엔 다시 눈발이 날리고(하루 사이의 변화 3). ⓒ 강병구


[여행팁 9] 시베리아 열차 여행을 위한 기본 정보 2

기차 정보 알아보기 : 시베리아 기차 정보를 사전에 알고 가지 못한다면 상당히 고생할 수 있다. 특히 자신이 탑승할 열차 운행 날짜나 정차 시간표 등을 갖고 있어야 당황하지 않고 열차여행을 즐길 수 있다.

http://www.poezda.net 사이트는 러시아를 비롯하여 인근의 CIS국가의 기차 시간표를 알아볼 수 있는 유용한 사이트이다. 영어서비스가 되니 러시아 말이라고 긴장하지 말고 잘 찾아서 기차정보를 얻자.

기차 여행의 필수품과 가져가면 유용한 것들

1. 듀얼모드 시계 : 기차에서뿐 아니라 러시아의 여러 곳을 갈 생각이라면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다. 러시아는 총 9개의 시간대가 있는 엄청난 크기의 국가이다. 지금껏 소개한 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롭스크, 이르쿠츠크의 시간대는 각각 다르며 모스크바도 마찬가지이다.

더욱이 기차의 시간은 오직 모스크바 시간으로만 표시되므로 현지의 시간과 모스크바 시간을 동시에 보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반드시 챙겨가고, 가능하다면 바늘로 표시되는 아날로그시계를 가져가자. 전자시계보다 훨씬 편하고, 유용하다.

2. PDA : 기차여행이 우리처럼 몇 시간짜리가 아니라 며칠씩 걸린다면 그 시간을 활용할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쉽게 떠오르는 것이 책이겠지만 무거운 배낭에 책을 몇 권씩 넣는 것은 그리 추천할 만한 것이 아니다.

싼 중고 PDA를 하나 준비해가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을까 싶다. e-book형태의 책을 몇 권씩 넣어도 가방이 무거워질 염려가 없고, 키보드를 챙겨 가면 간단한 기록도 하기 쉽다. 물론 충전할 도구도 가져가야 하는데, 콘센트 모양은 한국과 차이가 없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3. 상비약·간식·젓가락 : 약은 물론 챙겨가야 하지만, 러시아라면 더욱 그렇다. 약국이 흔하지도 않지만, 약도 믿기 어렵단다. 감기나, 소화제 등의 필수약품을 한국에서 구해오라는 현지 한인들의 전언.

지루한 기차여행에 주전부리가 없다면 더욱 지루할 것이다. 주전부리는 현지에서 구하는 것이 좋은데, 특히 추천하는 것은 견과류. 한국에선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땅콩이나, 아몬드, 호두 등이 싸다. 특히 러시아 재래시장에선 우리 돈으로 천원 정도면 비닐봉지 한가득 살 수도 있다. 상당히 맛있기도 하다.

젓가락을 챙겨가라고 하는 것은 현지에서 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상점에서 구할 수야 있지만, 젓가락이나, 포크가 상당히 비싸다. 공산품이 비싼 러시아라는 점을 알고 있다면 미리 챙겨 오는 것이 좋다. / 강병구

덧붙이는 글 | 지난 4월 21일부터 7월 28일까지 러시아와, 에스토니아, 유럽 여러 국가를 여행했습니다. 기사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이어지며, 저의 블로그(http://blog.naver.com/kbk8101)에 오시면 더 자세한 여행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러시아여행클럽(http://cafe.daum.net/russiatravel)에도 연재합니다.

덧붙이는 글 지난 4월 21일부터 7월 28일까지 러시아와, 에스토니아, 유럽 여러 국가를 여행했습니다. 기사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이어지며, 저의 블로그(http://blog.naver.com/kbk8101)에 오시면 더 자세한 여행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러시아여행클럽(http://cafe.daum.net/russiatravel)에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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