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보다 그리운 것은 괴로움

<시 하나에 삶 하나 3> 이별과 그리움

등록 2006.12.25 12:06수정 2006.12.25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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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때문에 눈물을 흘린 적이 있는지요. 사랑하지만 사랑을 받아드릴 수 없어서 가슴 깊이 묻어둔 오열을 터트린 적이 있는지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며 '안녕'이라는 말 한 마디에 '울컥' 치솟는 그리움을 이기지 못해 떨리는 목소리로 '미안하다'고 한 적이 있는지요.

@BRI@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이지만 성성한 눈발이 볼을 스치는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무정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보낸 날이.

그녀와의 첫 만남은 기차 속에서였습니다. 군에서 첫 휴가를 얻어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 길에서 우연히 만난 귀여운 사람이었습니다. 처음엔 군대 생활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편지 친구나 할까 해서 연락처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매주 두 세통의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아주 작은 글씨로 보내온 그녀의 편지는 군대 생활에 하나의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편지에 나도 틈만 있으면 편지를 보냈고, 그리울 때면 남몰래 편지를 보곤 했습니다. 그리곤 휴가나 외출을 할 때면 한강변을 걷거나 남산을 오르며 즐거운 만남을 가졌습니다.

제대 후에 그녀와는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웃음 많은 그녀는 웃음 없는 나에게 늘 즐거움을 주었고, 팍팍한 생활 속에서 그녀는 나에게 생기를 심어주는 작은 새였습니다. 그렇게 만나던 어느 날 그녀는 나에게 함께 하길 희망했습니다. 그러나 난 그녀의 희망을 당장 들어줄 수 없었습니다. 생활적으로 그녀를 받아드릴 준비가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희망과 그녀에 대한 나의 희망의 물리침이 계속되던 어느 날 그녀는 내 곁을 떠나기로 마음먹었고 눈이 내리던 밤 작은 찻집에서 마지막 만남을 가졌습니다. 그날 난 밤새 쓰다 지우고 쓰기를 반복한 편지를 내밀었습니다. 편지를 주며 그녀에게 마지막 건넨 말은 '미안하다'였습니다.

그녀는 아무런 말도 없이 눈물을 주르르 떨구다 떠나갔습니다. 그녀가 떠난 빈자리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왠지 모를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러면서 그녀의 웃던 얼굴이 그리움이란 단어에 묻혀 목울대를 울리며 치밀어 왔습니다.


"사랑은 저렇게 허망이 떠나가는 거구나."

자책해 보았지만 떠난 새는 다음 해 3월 새 둥지를 찾아 영원히 날아갔습니다. 그녀가 영원히 날아간 날 난 그녀가 살던 대문 밖을 수없이 서성이다 돌아섰습니다. 휑한 찬바람을 가슴에 안고 무심코 올려다 본 하늘엔 웬 별이 그리 총총히 떠있던지. 그런 마음을 절실하게 울려주는 시가 있습니다. '새벽 편지'입니다.

죽음보다 괴로운 것은
그리움이었다.

사랑도 운명이라고
용기도 운명이라고

홀로 남아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오늘도 내 가엾은 발자국 소리도
네 창가에 머물다 돌아가고

별들도 강물 위에
몸을 던졌다.

- 정호승의 < 새벽 편지 >


그리움이란 꼭 이별을 옆에 두고 다니나 봅니다. 함께 있고 가까이 있을 땐 그리움이 남의 일처럼 무덤덤하게 생각되지만 멀리 떨어진 순간 그리움이란 녀석은 잽싸게 온 가슴과 머리를 헤집고 돌아다닙니다. 아니 헤집을 뿐만 아니라 콕콕 들쑤시며 마음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그리움을 죽음보다 괴로운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는가 봅니다. 지금은 추억이라는 흘러간 돗단배가 되었지만 그때 나에게도 그녀에 대한 그리움은 지독한 마약과 같았습니다.

시인의 말처럼 사랑하는 것도, 떠나보내는 것도, 그래서 홀로 남는 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해보지만 어찌 진하 디 진한 그리움의 그림자가 사라지겠습니까. 그래서 가엾은 자신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서 그녀의 창가에, 그녀의 대문 밖을 서성이며 머물다 돌아서야 했을 것입니다. 그리움은 보고픈 마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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