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 페테르부르크 혹은 레닌그라드에 가다

[무작정 떠난 러시아-유럽여행 16] 상트 페테르부르크 1

등록 2007.01.03 08:56수정 2007.01.03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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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모스크바에서 출발한 기차가 도착한 마야코프스키 바그잘(모스크바 역).

모스크바에서 출발한 기차가 도착한 마야코프스키 바그잘(모스크바 역). ⓒ 강병구

왜 이름이 '상트 페테르부르크(Sankt Peterburg, 레닌그라드)'일까?

모스크바에서 출발한 기차, '붉은 화살호'는 5월 9일 새벽 6시 30분쯤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하였다. 러시아 대도시 중 가장 서쪽 끝에 자리하고 있고, 예술의 도시라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사실 연재 제목만큼이나 무작정 떠나온 데다, 그중 러시아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이라곤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던 나에게 그곳은 전혀 알 수 없는 곳이었다.


@BRI@예전 제정러시아 시절 수도였다는 정도의 사실밖에 알지 못했던 나는, 왜 이름이 '상트 페테르부르크' 인지부터가 궁금했다.

여행서를 뒤적거리고, 풍문을 들어본 결과는 이랬다. 상트 영어로 치자면 Saint, 즉 우리말로 '성(聖)' 정도에 해당하는 말이다. 그리고 페테르는 영어로 Peter's, 기독교 세례명으로 '베드로'에 해당하는 말이고, 부르크는 '도시'라는 뜻의 러시아말이라고 한다. 대충 뜻을 조합하면 '성스러운 베드로의 도시'쯤이 되는 것이다.

이런 이름이 붙게 된 데에는, 이 도시를 만든 표트르 대제(러시아 사람들은 표트르 1세의 위대한 업적 때문에 '대제'라 부르곤 했다. 우리가 세종대왕이나 광개토대왕을 다른 왕들과 달리 특별히 부르는 것과 같다)의 이름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잘 모르고 있지만, 뒤늦은 근대화에도 18세기 러시아가 북유럽의 강국이 되고, 이후 제국주의시대 주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표트르 대제의 출중한 능력 때문이었다고 한다.

스페인과 네덜란드를 거쳐 영국으로 세계의 주도권이 넘어가고 있던 그 시절, 낙후된 북쪽 변방의 왕이던 표트르 1세는 조국 근대화에 필요성을 절감한다. 그래서 러시아를 근대화하려 하였으나, 아직도 농노가 대부분이고 공업, 상업의 바탕도 안 깔린 러시아를 무작정 근대화하기에는 모든 것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정말 무슨 옛이야기에나 나올 것 같은 일을 벌이는데, 똑똑하고 충성심이 깊은 신하 몇 명과 함께 서유럽의 기술을 배우기 위하여 직접 몇 년간의 잠행을 떠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배워온 기술과 안목을 가지고 강한 지도력을 발휘, 몇십 년 만에 러시아를 유럽의 주요국에 올려놓았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에 따르자면 정말 이상적인 절대군주라 할 수 있는 표트르 대제는 2m의 장신에 예술을 사랑하는 감성까지 풍부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런 표트르 대제가 유럽을 더욱 가까이하기 위해, 모스크바에서 옮긴 수도가 바로 이곳, 상트 페테르부르크 그리고 표트르 이름은 영어 Peter, 즉 베드로에 해당하는 러시아 이름이라고 한다. 이런 설명을 알게 되니, 영국에서 유학했던 친구 재혁이가 이곳에 대해 물어보는 나에게 자꾸 이곳을 세인트 피터스버그(Saint Petersburg)라고 불렀는지가 이해할 수 있었다.


200년 전의 계획도시

a 마스코프스키 바그잘 안에 있는 표트르 대제 흉상과 관광객들.

마스코프스키 바그잘 안에 있는 표트르 대제 흉상과 관광객들. ⓒ 강병구

'유럽으로 열린 창'을 생각해서 만들었다는 이곳은 핀란드, 스웨덴 등의 북유럽에 가까울 뿐 오히려 중부 유럽인 모스크바보다 멀다. 더욱이 바다와 큰 호수가 인접한 습한 지대이며, 높은 위도로 인해 백야와 흑야가 모스크바보다 훨씬 심한 지리적 단점을 갖고 있다. 더불어 도시를 만들기 전까지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곳이었다고 한다.

이런 열악한 조건의 지역에 근 300여 년 전인 1706년, 러시아의 황제 표트르 1세는 도시를 만들 것을 명한다. 그것도 베네치아와 암스테르담을 모델로 한, 러시아의 수도가 될 세계최고의 도시를 만들라는 주문을 더해 말이다.

그러기 위해 당시 최고 수준의 서유럽 건축가들을 수도 없이 모셔와, 한꺼번에 도시의 수많은 건물들을 건축한다. 또 열악한 조건의 신도시에 들어오지 않으려는 귀족들과 국민들을 강제로 이주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이후에도 이어져, 결국 18세기에는 세계 최고의 도시라는 찬사를 듣게 된다.

상트 페레트부르크 도시 자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있는데, 도시가 통째로 17∼18세기의 건축양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건축박물관 같은 곳이기 때문이란다. 특히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유럽 각국 당대 최고의 건축가들이 이렇게 한 지역에 한꺼번에 건물을 만들어 당시 각 나라 건축가들의 특징 비교를 해볼 수 있다. 더불어 건물 간의 조화가 아름답게 이루어진 곳은 여기뿐이라고 한다.

실제 구시가지 중심지인 넵스키 대로를 걸으며 건물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한마디로 이곳은 17∼18세기 유럽 건축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건축 타임캡슐 같은 곳이다.

a 넵스키 대로의 아름다운 야경.

넵스키 대로의 아름다운 야경. ⓒ 강병구

이런 인상적인 도시 환경은 지금뿐 아니라 과거에도 인정받았던 모양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라는 구절이 유명한 '삶'의 작가 알렉산드르 푸쉬킨이나 <죄와 벌>로 유명한 도스토예프스키 등의 유명한 러시아 작가들은 이곳에서 강한 예술적 자극을 받았다고도 한다. 특히 이곳 출신으로 상트 페테르부르크 자랑이라고 하는 푸쉬킨은 이 도시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작가라고 한다.

여하튼 아름다운 도시환경부터 인상적인 이곳은 2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계획도시라는 점에서 다시 한 번 놀라게 했다.

5월 9일의 상트 페테르부르크 혹은 레닌그라드의 모습

a 넵스키 대로에서 행해진 전승기념일 행진 모습.

넵스키 대로에서 행해진 전승기념일 행진 모습. ⓒ 강병구

소련과 레닌, 러시아 혁명을 통해 이곳을 알게 되신 분들이라면, 분명 상트 페테르부르크라는 이름 보단 '레닌그라드'라는 이름이 훨씬 익숙할 것이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중 역사적 사건의 하나로 기록된, 소련군과 나치독일군 간 900일의 레닌그라드 공방전을 기억하시는 분들에겐 레닌그라드라는 이름이 훨씬 익숙할 것이다.

이곳의 이름은 러시아혁명 직후 페테르 그라드라는 이름으로 한번 바뀐 후, 레닌 사망 후엔 레닌그라드로, 그리고 소련 붕괴 이후엔 다시 옛 이름인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왔다.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공산주의 색체를 버리려는 의도가 있었던 1991년의 도시 개명과, 이후 맥도날드와 코카콜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물결 등장 뒤 혁명 영웅적 도시 모습은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1년에 하루는 확실히 그 영웅적 면모를 되찾는데, 바로 5월 9일 러시아 전승기념일 그날이다.

독일에 대한 승리를 공식 선언한 5월 9일엔 온 러시아가 축제에 휩싸이지만, 상트 페테르부르크만큼 화려한 곳은 없다고 한다. 모스크바는 오히려 안전상의 문제를 들어 통제 속에서 기념한다고 하는데, 이곳은 정말 어제 막 승리를 거둔 듯한 분위기였다.

널찍한 넵스키 대로는 이날 아침부터 통제되기 시작했고, 본격적인 행진이 시작되자 모두 인산인해를 이루며 행진을 지켜보았다. 행진은 현역군인들부터 참전용사들, 그리고 당시 복장을 한 민간인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줄지었다. 약 2시간여의 행진 뒤로는 구경하던 일반인들까지 뒤따르며 춤추고 폭죽을 터트렸다.

지난 2002년 월드컵 때 서울 광화문과 종로 거리를 통제하여 개방하듯, 행진 이후로도 차량을 통제해, 널찍한 넵스키 대로를 활보하는 호사도 누렸다.

사실 나는 이날에 맞춰 이곳에 온 것에 불안해하고 있었다. 전에도 말했듯 4월 말에서 5월 9일에 이르는 기간은 러시아 스킨헤드들이 가장 활발하게(?) 외국인을 공격하는 시기인데다가, 모스크바에서 스킨헤드 소탕작전이 있은 후 최근 러시아의 큰 스킨헤드 단체들은 대부분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워낙 알려진 관광도시이기 때문에 평소에도 소매치기 등의 여행객 상대 범죄율이 높은 곳인데, 사람들이 특히나 몰리는 축제날에는 더 할 것이라는 말도 계속 들어왔다.

하지만 이런 걱정들은 기우에 불과했고, 화려한 전승기념 축제는 다른 날에 왔다면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인상적인 경험을 만들어주었다. 1년에 단 한 번 상트 페테르부르크가 레닌그라드로 되돌아가는 그날을 보게 된 것이다.

이런 행사를 보며, 우리의 광복절과 3·1절을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몇몇이 실내 행사장에 모여 식을 진행하고, 사람들은 그저 무심히 TV를 통해 볼 뿐인 국경일 행사.

분명 우리의 광복절, 3·1절은 러시아의 전승기념일만 못한 날이 아니다. 좀 더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참여를 유발할 행사를 기획한다면, 이들의 즐거운 분위기 못지않게 우리 역사의 빛나는 날들을 기념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걱정만 하고 있던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지만, 그 반가움이 또 한 번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었다.

a 행진이 끝난 후 넵스키 대로를 활보하는 시민들의 모습.

행진이 끝난 후 넵스키 대로를 활보하는 시민들의 모습. ⓒ 강병구

덧붙이는 글 | 2006년 4월 21일부터 7월 28일까지 러시아와, 에스토니아, 유럽 여러 국가를 여행했습니다. 다음 기사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다음 주 화요일(07/01/09)에 이어지며, 저의 블로그(http://blog.naver.com/kbk8101)에 오시면 더 자세한 여행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러시아여행클럽(http://cafe.daum.net/russiatravel)에도 연재합니다.

덧붙이는 글 2006년 4월 21일부터 7월 28일까지 러시아와, 에스토니아, 유럽 여러 국가를 여행했습니다. 다음 기사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다음 주 화요일(07/01/09)에 이어지며, 저의 블로그(http://blog.naver.com/kbk8101)에 오시면 더 자세한 여행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러시아여행클럽(http://cafe.daum.net/russiatravel)에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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