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한 지하 암벽교회 랄리벨라를 가다

[내가 만난 아프리카 ⑫] 예루살렘을 본 떠 만든 기독교 종교도시

등록 2007.01.23 15:38수정 2007.07.08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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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장터에 닭을 팔러 가는 부지런한 에티오피아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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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리벨라를 휘감고 있는 황량한 바위산인 라스타 산맥. ⓒ 김성호

어제 깨끗하게 빨아 따가운 햇볕에 말린 옷을 입으니 온몸이 상쾌하다. 흙먼지를 온통 뒤집어써야 하는 배낭여행을 하다 보면 깨끗한 옷을 입었을 때 느끼는 촉감이 얼마나 상쾌한지 다른 여행객은 모른다. 빨래 하나도 이렇게 여행객을 기분 좋게 만들어 준다. 신비한 지하암벽 교회가 있는 랄리벨라로 가는 길은 그래서 더욱 가볍다.

아일랜드의 젊은 오토바이 여행객과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자전거 여행객과의 작별이라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나는 홀로 아침 7시 랄리벨라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곤다르 공항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인데도 벌써 부지런한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거리를 분주하게 움직인다. 비포장도로의 양쪽 길에는 여자와 남자 할 것 없이 모두 다리를 끈으로 묶은 닭을 몇 마리씩 들고 간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가는 것도 눈에 띄었다. 젊은 엄마는 머리에 보자기로 싼 물건을 이고 두 손에는 닭 한 마리씩을 들고 앞에 가고, 7살 정도의 어린 아들은 닭 한 마리를 손에 들고 뒤따라 가고 있었다. 어디를 가느냐고 운전사에게 물으니 토요일에 열리는 장터에 팔러 가는 길이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돈 되는 것이 주로 닭밖에 없어 누구나 닭을 팔아 생필품을 산다는 것.

나를 태우고 가는 택시운전사는 "곤다르에 오면 궁전뿐 아니라 시미엔 산맥 국립공원을 꼭 봐야 한다"며 다음에 다시 방문하면 가보라고 강력히 추천했다. 시미엔 산맥을 가보지 못하고 떠나는 아쉬움은 여행객인 내가 더하다.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인 라스다셴 산(4543m)이 있는 시미엔 산맥은 여행객들의 트레킹 장소로 유명한데, 보통 산에 올라갔다 내려오는데 나흘 정도가 필요하다. 에티오피아에서의 여행은 역사 유적 탐방이 주요 목적이었고, 시간도 촉박해 애초부터 시미엔 산맥 트레킹은 먼 훗날로 미뤄야 했다.

곤다르 공항에서 탄 비행기는 동쪽으로 얼마 날지 않아 랄리벨라 공항에 도착했다. 오히려 랄리벨라 공항에서 미니버스를 타고 시내로 가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거리상으로도 무려 27km이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웅장한 산들을 몇 차례 넘어가야 하는데, 햇볕은 사막 날씨처럼 따갑다.

곤다르와 바하르다르가 타나 호수 근처에 있어 푸른 숲이 우거진 데 반해, 랄리벨라는 나무가 거의 없는 황량한 산악지대의 고산도시이다. 몇 년 전 가본 적이 있는 티베트 불교도시인 라싸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라싸가 해발고도 3600m인 라마교의 종교도시라면, 랄리벨라는 라스타 산맥의 해발고도 2630m에 위치한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성지라고 할 수 있다.

버스에서 내려 가장 싼 숙소인 미니로하 호텔로 걸어갔다. 미니버스운전사가 하룻밤에 120비르(1만4천원) 하는 알리프 파라다이스 호텔을 추천했으나 가장 싼 숙소에 내려 달라고 했다. 미니로하 호텔은 하룻밤 숙박료가 40비르였으니 우리 돈으로 4700원 정도이다. 아프리카 여행 중 내가 묵은 가장 싼 숙소였다. 배낭을 민박집 같은 초라한 방안에 내려놓자마자 근처 빈터로 달려갔다.

아프리카의 시골 5일 장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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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마다 서는 랄리벨라의 장터 모습. ⓒ 김성호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어 무엇을 하나 보니 곤다르에서와 마찬가지로 토요시장이 열린 것이다. 마침 내가 랄리벨라에 도착한 날이 6월 17일 토요일이었다. 우리 농촌에서 옛날에 닷새마다 5일장이 열렸듯이 이곳에서는 일주일에 한번 토요일마다 시장이 열린다고 한다.

토요시장을 가기 위해 숙소에서 나오자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어린이 2명이 장터를 안내하겠다고 바짝 따라붙는다. 어차피 시장터가 북적거려 안내자 없이 가면 헤맬 수도 있을 것 같아 2명을 안내자로 삼았다. 1비르(800원)씩 주고서.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이 달라붙자 자신들이 공식 안내자라며 쫓아내고, 신이 나서 시장 곳곳을 안내하며 물건 이름들을 설명한다. 랄리벨라를 여행하면서 상당히 귀찮은 것 중 하나가 바로 수십 명의 아이들이 안내자 역할을 하겠다며 졸졸 따라붙는 것이다.

워낙 가난하다 보니 외국 여행객만 만나면 20여 명의 아이들이 한꺼번에 몰려든다. 그래서 아예 일찌감치 한두 명의 꼬마 안내자를 삼는 것이 오히려 편할 때가 많다. 에티오피아 아이들의 초등학교 취학률이 31% 정도밖에 안 되니 어린이들이 대부분 아예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다. 9년간 중학교까지 무상 의무교육을 하는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이들의 교육과 건강, 생활상태가 열악하다 보니 외국 여행객 안내를 통해 돈을 벌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장터에는 향료며 소금, 고추, 전통음식인 인제라 재료로 쓰이는 테프와 과일, 노새 등 흔히 시장터에서 살 수 있는 모든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인근에 있는 농촌 사람들이 직접 지은 농산물들을 팔기 위해 장터로 몰려든 것이다.

꼬마 안내자들은 "여기 물건 파는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지은 농산물을 팔기 위해 4∼5시간 걸어서 온 사람들이 많다"며 장터에 팔기 위해 놓아둔 소금과 후추를 집어서 나에게 맛을 보도록 하는 등 '공식 안내자'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 애를 썼다.

아이들이 나에게 맛을 보도록 하기 위해 물건을 집어도 누구 하나 나무라지 않고 웃으면서 외국 여행객이 맛보는 것을 지켜보았다. 일부는 햇빛가리개를 설치해 물건을 파는 상인도 있었지만, 대부분 강한 햇볕 아래 포대 등을 깔고서 그대로 고추와 테프, 과일 등을 팔고 있었다. 워낙 햇볕이 강하다 보니 비 우산을 들고 와 햇볕을 가리는 사람도 가끔 눈에 띄었다.

아프리카에서는CNN보다 BBC WORLD 위성채널을 많이 본다

시장을 둘러보는 데 햇볕이 너무 따가워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휴식도 취하고 점심을 먹기 위해 근처 음식점에 들어갔는데, 이 시골에도 텔레비전이 있는 것이 신기했다. 위성 텔레비전인데 화면 상태는 그리 깨끗하지 않았으나 볼 만했다. 영국의 공영방송인 BBC WORLD 채널에서 요란한 퍼레이드 행사를 중계하고 있는데, 자세히 보니 6월 17일을 맞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80세 축하 행사를 생중계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80세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정정하고 품위있는 모습으로 왕실 기병대의 호위를 받으며 백마가 끄는 황금마차를 타고 런던 버킹엄 궁 앞에서 퍼레이드를 하고 있었다. 에티오피아는 지난 1937년 이탈리아의 침공으로부터 1941년 독립할 때 영국의 도움을 받아 전통적으로 영국에 호의적이라는 것을 여기저기서 느낄 수 있었다. 에티오피아뿐 아니라 동아프리카를 여행하는 동안 아프리카 사람들은 대부분 미국의 케이블 뉴스전문 채널인 CNN보다는 영국의 BBC WORLD 채널을 보고 있었다.

미국의 CNN은 동부아프리카에서 거의 볼 수 없었고, 남아공과 보츠와나, 나미비아 등 남부 아프리카에서야 겨우 볼 수 있었다. 아프리카 전반에 퍼져 있는 반미 감정과 동남부 아프리카 국가의 대부분이 영국의 식민지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독립을 했음에도 여전히 옛 식민지 지배국가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는 것.

식당 주인에게 "CNN은 보지 않느냐"고 묻자, "미국 방송은 볼 필요가 없다"는 반응이 즉각 돌아왔다. 아프리카에서 만난 사람들이 대부분 반미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오는데 시장을 안내했던 아이 중 한 명이 나를 보고는 달려온다. 손에 무엇인가를 꼭 쥐고 있다가 나에게 주면서 선물이라고 한다. 나무로 만든 작은 십자가에 허술한 끈으로 연결한 십자가 목걸이이다. 시골에 있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만들었다는 것이다. 목에 거니 그런대로 어울렸다. 제품이야 장난감 수준이지만, 어린아이의 마음이 전해지니 뭉클하다.

7살 정도의 어린아이는 장터 안내자로서 자신에게 준 1비르에 대한 고마움으로 십자가 목걸이를 보답으로 주었겠지만, 십자가 목걸이에 담긴 가치는 100달러 이상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특별한 종교를 믿지 않는 나였지만, 나무 십자가 목걸이를 그 자리에서 내 목에 걸었다. 십자가 목걸이를 걸으니 마치 온갖 위험으로부터 나를 지켜줄 것 같은 평온함이 같이 매달려 있는 느낌이 들었다.

예상치 않았던 아프리카 시골 아이로부터 받은 호의는 마음 한편을 찡하게 하면서 여행객의 닫혔던 마음의 문도 활짝 열어젖혔다. 졸졸 따라다니던 어린아이들을 귀찮아하고 경계했던 나의 마음을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들켜버린 것 같아 부끄러움이 다가왔다. 아프리카 여행을 하다 보면 아이들의 도움을 받을 때가 많은데,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만큼 아이들은 어디나 순수하기 때문이다.

신비로운 랄리벨라 지하암벽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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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리벨라 시내를 가로지르는 요르단강에 물이 말라 푸른나무가 자랐다. ⓒ 김성호

오후 1시께 지하 암벽 교회 구경에 나섰다. 랄리벨라는 바위산을 깎아 만든 사원으로 유명한 요르단의 유적도시 페트라와 비슷하다고 하여 '아프리카의 페트라'로 불린다. 12세기부터 130여 년간 자그웨 왕조의 수도로 애초 로하로 알려졌으나 지하 암벽 교회를 만든 랄리벨라왕의 이름을 따서 아예 지역 이름으로 삼았다.

지하 암벽 교회는 랄리벨라왕 때부터 시작해 120여 년간 계속 건설되었는데, 기독교의 부흥을 위해 예루살렘을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랄리벨라왕이 꿈속에서 로하에 제2의 예루살렘을 건설하라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 건설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에티오피아의 애초 수도였던 악숨 왕국은 7세기 접어들어 왕국뿐 아니라 왕국을 지탱해온 종교적 기반인 에티오피아 정교회도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슬람이 아라비아반도를 시작으로 이집트, 수단 등 주변 국가로 급속히 퍼져 나가면서 기독교 국가인 에티오피아가 동북쪽으로부터 고립되기 시작한 것. 교회를 멀리서 볼 수 없는 지하 암벽으로 만든 것도 바로 팽창해오는 이슬람세력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하기 위한 교회 보호용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실제로 에티오피아의 역사를 보면 이슬람 세력의 팽창에 밀려 수도가 1세기경 북쪽의 악숨에서 12세기 랄리벨라로, 17세기 곤다르와 바하르다르, 19세기 아디스아바바로 계속해서 남쪽으로 밀려 내려왔음을 알 수 있다. 수도의 남하와 기독교의 쇠퇴가 역사적 맥을 같이하고 있는 셈.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을 본떠 만들었다는 것은 랄리벨라 시내를 흐르는 강의 이름이 예수가 세례를 받은 강의 이름에서 따온 요르단강,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장소인 골고타에서 따온 베타 골고타 교회, 교회 안뜰에 만들어 놓은 아담의 무덤 등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랄리벨라 암벽 교회는 모두 11개인데, 요르단 강을 기준으로 북쪽에 6개, 남쪽 4개, 그리고 강북의 남서쪽에 홀로 떨어진 베트 기요르기스 교회가 있다. 교회를 위에서부터 밑으로 수직으로 깎아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바위 자체가 화산재가 굳어져서 만들어진 붉은색의 부드러운 응회암이었기 때문.

교회 매표소 입구에서 공식 안내자를 요구했으나 정오부터 오후 2시까지는 점심시간인지 안내자가 없다고 한다. 혼자서 여행책자를 보고 암벽 교회를 찾으려 했으나 교회 자체가 지하인데다 의외로 복잡해 도저히 홀로 구경하기가 어려워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그때 20대 중반의 젊은이가 50비르(4천원)를 주면 자신이 안내를 해주겠다고 해 따라나섰다. 북쪽 교회가 가까운데 이상하게도 남쪽 교회부터 보자며 나를 이끌었다.

지하통로로 연결된 남쪽 지하 암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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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통로로 베트 메르코리오스 교회와 연결된 베트 암마누엘 교회 모습. ⓒ 김성호

남쪽 교회는 베트 암마누엘과 베트 메르코리오스, 베트 압바 리바노스, 베트 가브리엘-루파엘 등 4개이다. 처음에 간 곳은 바로 베트 암마누엘(Bet Amanuel) 교회이다. 베트(Bet)는 에티오피아 암하릭어로 '집(House)'이라는 뜻이고, 암마누엘(Amanuel)은 임마누엘을 의미한다. 결국 베트 암마누엘은 임마누엘의 집이라는 의미. 하나의 독립된 바위를 깎아서 만든 붉은빛 교회로서 전형적인 악숨스타일로 유명하다.

베트 암마누엘 교회에서 베트 메르코리오스 교회로 가는 길은 동굴 같은 지하 통로로 되어 있다. 안내하는 젊은이는 암흑 같은 지하 통로를 전등도 없이 잘 찾아갔다. 나는 이 젊은이의 손을 꼭 잡고 동굴을 통과해 베트 메르코리오스 교회로 넘어갔다.

이 교회는 지진으로 인해 반쯤 무너져 내렸는데 벽돌로 보수공사를 해 놓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나타낸 벽화가 보관되어 있었다. 그 옆에는 고대 그리스도교 지하묘지를 본떠서 만든 베타 압바 리바노스 교회가 있다.

남쪽 교회 중 맨 아래쪽에 있는 베트 가브리엘-루파엘 교회(또는 베트 가브리엘-라파엘 교회)는 애초 왕족들의 저택으로 사용되다 교회로 바뀐 것으로 여겨지는 데, 랄리벨라 왕이 교회 지붕 위에서 백성들에게 연설을 했다고 한다.

이 교회 입구에는 좁고 험한 길이 있는 데 천국으로 가는 길을 형상화해 놓은 것이며, 안쪽에는 지옥으로 가는 길도 형상화해 놓은 것이 특색이다. 지하통로로 교회 안뜰에 있는 '아로기 베들레헴'이라는 건물과 연결되어 있는데, 이곳은 바로 신성한 빵을 굽는 화덕 같은 부엌이다.

지하 암벽교회에는 석공들의 바위 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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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 가브리엘-루파엘 교회의 천국으로 이르는 길. ⓒ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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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 가브리엘-루파엘 교회의 베들레헴을 본 뜬 빵굽는 부엌 ⓒ 김성호

남쪽 교회를 둘러보면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커다란 바위 덩어리에 불과한 산을 어떻게 저런 웅장한 교회로 변모시킬 수 있었을까. 겉에서 보는 교회의 크기뿐 아니라 내부의 기둥과 아치, 조각, 장식은 또 얼마나 멋진가. 교회끼리 지하 통로로 연결하기 위해 만든 미로 같은 동굴도 신비함 그 자체다. 흙이나 벽돌을 쌓아서 지어도 힘들 텐데, 하나의 바위를 깎고 다듬어서 만들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종교의 대상이 어떠하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지한 믿음이 없고선 결코 지을 수 없는 불가사의한 건물이다. 종교를 믿든 안 믿든 상관없이 사람을 경건하게 만드는 곳이다. 8백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당시 교회를 짓던 석공들이 정을 들고 바위 쪼는 소리와 함께 안식을 기원하는 기도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베트 가브리엘-루파엘 교회를 끝으로 남쪽 지하 암벽 교회 구경을 마치고 북쪽 교회로 올라가려는 데 갑자기 젊은 안내자가 "더 이상 안내할 수 없다"고 나자빠진다. 북쪽 교회는 공식 안내자 자격증이 있는 사람만 들어갈 수 있어 자신 같은 비공식 안내자는 아예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황당하다는 것은 바로 이럴 때 쓰는 말.

매표소에서 가까운 북쪽 교회 대신 남쪽 교회부터 보자며 나를 이끌고 갈 때부터 이상했었지만. 자신도 미안했던지 약속했던 50비르 중 25비르만 달란다. 그러면서 북쪽 교회로 가는 길을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그래도 남쪽 교회를 둘러볼 때 열심히 설명하고 최선을 다한 성의를 봐서 25비르를 주었다.
#에티오피아 #랄리벨라 #곤다르 #베트 암마누엘 교회 #지하암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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