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무협소설 <천지> 133회

등록 2007.02.12 08:32수정 2007.02.1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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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안고 가던데 그 놈이 마교두를 데리고 간 건가?”

웬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인가? 이런 상황에서 무슨 마교두 타령인가? 다 잡았던 흉수 중 한 놈을 눈앞에서 놓친 옥기룡은 가슴이 타들어갔다. 헌데 이 인간이 왜 헛소리만 지껄이고 있는지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BRI@“마교두는 안에 널 부러져 있소. 도대체 이곳을 빠져 나온 그 놈이 어디로 갔는지나 말해 주쇼.”

급박하고 짜증 섞인 음성이었다. 이미 옥기룡은 밖으로 내려서 이목을 최대한 높인 채 여기저기 들러보고 있었다.

“다행이로군. 이번 기회에 반드시 버릇은 고쳐주어야지.”

백도는 고개를 끄떡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옥기룡에게 말했다.

“누군지 모르지만 이곳에서 튀어 나온 놈은 현무각 쪽으로 갔다네.”


백도의 말에서 ‘현’자가 나오는 순간 옥기룡은 북쪽으로 몸을 날렸고,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모습은 어둠 속으로 묻혔다. 백도는 천천히 창문 안으로 들어섰는데 그 안에는 매우 불만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옥청량과 단혁 등을 볼 수 있었다.

그가 안으로 들어서자 그를 힐끗 본 단혁이 몸을 날려 창문 밖으로 나갔다. 아마 백도가 창문에 걸터앉아 있었기 때문에 나가지 못했던 것 같았다. 백도는 주위를 쭉 훑고는 바닥에 널부러져 아직까지 부르르 떨고 있는 마궁효에 시선을 던졌다.


마궁효는 게거품을 물고 양 손으로 자신의 하초를 부여잡고 있었는데 아마 마궁효는 앞으로 다시는 하초를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그의 미간에 잔주름이 잡혔다. 그것은 저 자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모습이었는데 백도는 금방 고개를 저었다.

“교두란 작자가 비겁하게 암습까지 하다니… 손가락을 모두 분지르고 싶지만 오늘은 이쯤에서 관두지.”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마궁효를 더 이상 어쩌지 못한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따가운 시선들이 그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고 있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마궁효에게서 시선을 떼어 내며 중얼거렸다.

“운이 좋았군.”

그는 주위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인물들을 쭉 한 번 돌아다보았다. 그리고는 왜 그리 잡아먹을 듯 바라보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듯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허나 그의 모습과는 달리 그를 노려보고 있는 인물들은 다 된 밥에 재를 뿌린 백도를 때려죽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옥청량의 못마땅한 시선과 마주친 백도가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소란을 피워 죄송스럽게 되었소.”

백도로서는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 예의바름이었다. 옥청량 역시 백도가 그렇게 나오자 어쩔 수 없이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상황을 몰랐다면 탓이라도 하겠지만 이미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알고 있었던 옥청량으로서는 백도에게 추궁할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67

복(蝮)에게 있어 추적하지 못할 인간은 이 세상에 없었다. 상만천의 수족인 일접사충은 모두 경신술과 잠입술, 그리고 추적술에 있어서도 그 누구에게도 뒤지고 싶은 마음이 없는 여자들이었다. 심신을 단련하고 고강해지기 위해 무공을 익힌 것이 아니라 그러한 기술에 필요하기 때문에 익힌 것뿐이었다.

그런데 이번 뒤쫓는 인간은 아주 특이할 정도로 뛰어난 자였다. 속도의 조절이나 예측하지 못할 방향의 전환으로 복(蝮)으로 하여금 추적하기 매우 까다롭게 만드는 영리한 자였다. 사람을 하나 더 안고 있었지만 그의 속도는 너무 발라 자신도 당황하게 만들고 있었다. 처음에는 현무각 쪽으로 향하더니 일순간에 방향을 틀어 숲 속으로 향했다.

추적을 따돌리거나 숨기에는 숲이 아주 적당한 장소였지만 복(蝮)에게 있어 숲은 평지보다 더 자유로운 곳이었다. 그녀는 냄새와 풀과 나무를 밟고 스치는 소리만으로도 상대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아낼 수 있는 동물적인 본능과도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추격을 따돌리는 방법치고는 아주 현명한 선택을 했지만 오히려 네 놈은 내 손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녀는 오히려 내심 안도했다. 오늘밤 운중보 내의 경비는 그녀를 꽤 성가시게 만들고 있던 참이었다. 상대가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이곳저곳을 헤매게 되면 오히려 그녀의 움직임도 남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우려가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모시는 주인께 누(累)를 끼치는 일이었다.

더구나 자신이 쫓는 자를 은밀하게 쫓는 또 다른 인물이 감지된 상태에서 아주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납작 엎드려 어둠 속에서 숲을 헤맬 것이 분명한 상대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다. 수림이나 숲에서 하는 추적의 기본은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숲은 일단 시야를 가리기 때문에 주로 소리에 의존하게 된다. 특별한 훈련을 거치게 된다면 소리에 땅의 진동이나 풀이 누운 방향, 그리고 빛이 들어오는 방향 등을 이용하게 되는데 그녀는 여기에 기류의 움직이나 미세한 냄새까지도 이용하는 독특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

헌데 이상했다. 이 자는 숲 속에 들어 온 순간 갑자기 움직임을 멈춰버렸다. 오히려 자신과 같은 또 다른 추적자가 미세하게 움직이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또 다른 기관을 발동했다. 바로 후각(嗅覺).

그 자가 메고 있는 자는 옥기룡에게 당해 입에서 피를 뿜은 자였다. 피 냄새는 동물적인 감각을 가진 그녀에게는 매우 친숙한 냄새였고. 최소 이십 여장 밖에서도 맡을 수 있는 뛰어난 후각을 가지고 있었다.

‘우측… 짧은 순간 멀리도 달아났군.’

꽤 멀리 있는 듯 미세하게 맡아지고 있었다. 그녀는 수풀을 헤치며 그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급박한 움직임이 일며 고용함을 깨는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타타타닥---!

그 소리는 우측에서 시작하여 전면을 향했는데 너무나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비는 그쳤지만 나뭇잎에 맺혀있던 이슬들이 비가 내리듯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이것은 분명 누군가 빠르게 나뭇가지를 박차고 이리저리 몸을 날리는 듯한 형상이었다.

허나 복(蝮)은 잠시 움직이지 않았다. 추적에 있어서 가장 큰 실수는 서두르는 것이다. 뒤쫓기에 급급하게 움직이면 상대를 놓치거나 상대의 계략에 빠져 오히려 당하게 된다. 더구나 지금은 추적자가 자신만이 아니다. 추적자는 또 한 명 있었다. 이럴 때는 더욱 움직임을 한 순간 늦추고 주시하는 것이 좋다.

매미를 노리는 당랑(螳螂)이 되지 말고 그 당랑을 비웃으며 노리는 참새가 되어야 한다. 이 순간 충동을 억누르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느끼고 있었던 추적자 하나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던지 추적을 당하던 자가 먼저 움직였던 곳으로 빠르게 몸을 날리고 있었다.

매우 몸놀림이 뛰어난 인물인지 조금 전과는 달리 진동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벼웠고 그녀가 더 이상 기다리면 놓칠 것 같다는 경각심이 일어날 정도로 민첩했다. 그녀 역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그녀는 앞선 추적자가 빠르게 수림 위쪽으로 향하자 지체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헌데 이상했다. 아무리 한 사내를 안고 몸을 날렸다 해도 나무 가지에 이리도 형편없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두꺼운 수피(樹皮)가 벗겨져 나갔다는 것은 확실히 이상했다.

‘추적당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쩐지 너무 쉽게 추적하게 만들더라니.’

어쩌면 처음부터 그녀가 추적하는 것을 알았는지도 모르고, 아니면 또 다른 추적자를 파악했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그 자는 분명 추적을 하고 있는 인물이 있다는 것을 알고 따돌리기 위해 이 숲에 뛰어들었음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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