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현대사 늪에 빠진 예쁜 새, '딩링'

딩링 사망 21주년, 반전드라마와 같은 그녀의 삶을 돌아보다

등록 2007.03.05 09:48수정 2007.03.05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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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한 중국현대사의 굴곡을 온몸으로 감당해내야 했던 여성 작가 딩링(丁玲)! 수려한 외모와 문학적 천재성을 날개로 국공내전의 서슬 푸른 시대를 자유롭게 비행하던 그녀는 3번의 결혼이 말해주듯 봉건사회의 통념을 뛰어넘는 개방적인 성(性)의식으로 문단뿐만 아니라 정치계의 거물급 사내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또 투옥과 탈출 그리고 파면과 복권으로 점철된 그야말로 처절하게 사연 많은 삶을 살다간 대표적인 인물이다.

딩링의 인생은 그녀가 추구했던 사랑과 함께 현대사의 가장 험준한 협곡을 굽이굽이 흘러간다. 그녀는 1904년 후난성(湖南省) 린펑(臨灃)의 권문세가 가문에서 태어나지만 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외가에서 자란다.

3번의 결혼과 파란만장한 삶

a 굴곡 많은 중국현대사에서 반전드라마 같은 삶을 살다 간 딩링의 모습이다.

굴곡 많은 중국현대사에서 반전드라마 같은 삶을 살다 간 딩링의 모습이다. ⓒ 딩링기념관

1924년 처음으로 베이징에 올라간 딩링은 자신보다 1살 어린, 가난하지만 열정적인 시인 후예핀(胡也頻)을 만나게 되고 고향까지 그녀를 찾아온 후예핀과 1925년 결혼하여 짧지만 달콤한 결혼생활을 한다.

1927년 아들을 낳고 첫 작품인 <뭉크>를 필두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지만 1926년 3·18사건과 1927년 4·12사변 등 국민당의 백색테러가 자행되는 가운데 1931년 2월, 좌익활동을 하던 남편이 국민당에 의해 처형을 당하고 만다.

이 사건은 딩링을 좌익성향의 작가로 변모하게 했으며 그녀는 1930년 '좌련'에 가입하고 여류작가로서 취치우바이(瞿秋白), 선충원(沈從文), 루쉰(魯迅), 펑쉬에펑(冯雪峰) 등과 활발한 교류를 나눈다. 그리고 남편이 죽던 그해 11월, 통역일을 하던 펑다(馮達)를 만나 두 번째 결혼을 한다.

1933년 5월 14일 밤 두 번째 남편 펑다는 "만약에 내가 12시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빨리 이곳을 떠나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갔다가 결국 국민당 단속반과 함께 돌아온다. 1932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고 당 기관지인 <북두(北斗)>의 편집을 맡고 있던 딩링은 3년 남짓의 감옥살이를 하게 되며 국제적인 구명운동으로 목숨을 건지고 1934년에는 감옥에서 딸을 낳기도 한다.


1937년 2월, 공산당조직의 도움으로 해방구 옌안(延安)으로 간 딩링은 중국문예협회 주임과 해방일보 편집일을 맡아하게 된다. 1937년 해방구에서 열린 막심 고리키 사망 1주년 추모공연은 딩링의 남성편력을 다시 한 번 자극했다. 딩링은 공연무대에 오른, 남자배우인 20살 천밍(陳明)을 사랑하게 된다. 이들은 1942년 정식으로 부부의 인연을 맺었으며, 이것은 딩링의 세 번째 결혼이자 마지막 결혼이었다.

현실에 굴복 않고, 좌절 극복하는 여성 모습 생동감 있게 표현해


미국 작가 N.웨일즈는 "1919년 시작된 중국현대문학사에서 가장 우수한 여작가가 바로 딩링이며, 그녀가 아주 솔직하게 소녀의 심리와 감정을 묘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딩링은 전통적인 사회에서, 선구적 여성지식인들이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좌절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생동감 있게 형상화해 냈다.

그러나 딩링의 문학세계는 숨 막히도록 자신을 옥죄어오는 현실 앞에 변화될 수밖에 없었으며 1951년 스탈린문학상 수상작인 <태양은 쌍간허(桑干河)를 비추고>는 문예가 정치에 복무하는 프롤레타리아문학의 진수를 보여주게 된다.

한편의 반전드라마 같은 딩링의 굴곡진 삶의 후반부 또한 대단히 극적이다. 1942년 해방구에서 딩링은 공산당과 당간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공직을 박탈당하고 노동개조를 위해 농촌으로 보내지게 된다. 그 뒤 1949년 건국 이후에는 다시 복권되어 중앙문학연구소장 등의 중책을 맡게 된다.

그러나 점점 거세지는 극좌적 사회분위기 속에서 1955년 딩링은 다시 모든 공직을 박탈당하고 남편 천밍과 함께 헤이롱장(黑龍江)성 등지에서 노동개조에 종사하고 문화대혁명 기간에는 옥살이까지 하게 된다. 1979년 복권이 되기까지 25년의 모진 세월을 겪어낸 딩링은 말년에 중국작가협회 부주석을 지내다가 1986년 3월 4일 향년 82세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한다.

중국 현대사가 유독 '딩링'이라는 한 아름답고 재능 많던 여인에게만 그토록 많은 시련과 아픔을 가져다준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딩링의 굴곡진 인생은 바로 중국현대사의 모순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거울이며 수많은 중국인들이 딩링과 같은 모순된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아파하고 신음하다 사라져 갔던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국정브리핑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국정브리핑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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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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