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짠하고 그랬지

<시 하나에 삶 하나 13> 어머니와의 첫 이별과 눈물

등록 2007.03.17 15:35수정 2007.03.17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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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였다. 그 해 3월의 첫날은 겨울비도, 봄비도 아닌 것이 질척거리며 내렸다. 포장도 안 된 그 질퍽한 길을 어머니와 난 걸었다. 내 손엔 책가방이 들려있었고 어머니 손엔 이불보따리가 들려있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그 길을 걸었다. 가끔 눈이 마주쳤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걷던 어머니는 빨간 대문을 한 어느 집 앞에 서더니 날 돌아보며 말했다.


"다 왔다. 여그가 니가 지낼 집이다."

@BRI@문을 두드리자 주인 여자인 듯한 사람이 나와 우리를 맞이했다. 어머니보다 젊어 보인 그 아줌마, 하숙집 주인 아줌마였다. 그 주인은 내가 지낼 하숙방을 알려주었고 이것저것 주의 사항을 일러주었다. 어머니는 방은 따뜻한지, 연탄가스는 새지 않는지 이것저것을 확인하였다.

그날 밤 어머니와 아들은 타지에서 처음으로 첫날밤을 함께 보냈다. 그날 밤 어머닌 다 큰 아들의 머리맡에 앉아 잠을 이루지 못하고 가끔 이마를 만지거나 손을 잡으며 뭐라고 입속말을 하였다.

자신의 품을 처음 떠나보내는 어미의 애틋함, 그러면서도 염려스러운 마음이 내내 입속말로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난 모른 체하며 눈감고 누워 있었다. 나 또한 타향에서의 첫 생활이 조금은 불안해 잠을 쉬 이룰 수 없었다.

입학식 날, 어머닌 교문까지 날 바래다주었다. 아니 그냥 함께 걸었다. 질퍽거리는 땅을 밟으며 어머닌 치마를 위로 훔치시다가 꺼칠한 당신의 손으로 내 손을 가만히 잡았다. 그렇게 하숙집에서 멀지 않은 학교까지 아무런 말도 없이 걸어갔다. 안개 같은 이슬비에 어머니 머리는 촉촉이 젖어 있었다.


"밥 잘 챙겨 먹고 그래라."

교문에 다다르자 걸음을 멈추고 어머닌 조용히 내게 겨우 한다는 말이 "밥 잘 챙겨 먹으라"는 소리였다. 그러면서 잠시 날 바라보더니 손에 힘을 줘 한 번 잡아주곤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오던 방향으로 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난 그때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점차 멀어져가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어머니도 이따금 뒤를 돌아보며 눈가에 손을 가져갔다. 갑자기 가슴이 폭탄 맞아 뻥 뚤린 것처럼 허전했다. 유난히 내성적이었던 난 그때까지 부모의 품을 떠나 하룻밤도 자본 적이 없었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중학교 때 다 가는 수학여행도 가지 않았었다.

한참을 그렇게 난 창피한지도 모르고 눈물을 흘렸고, 사람들은 시골촌놈인 날 이상한 아이처럼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그렇게 낯선 도시에 날 놔두고 어머닌 떠나갔고 허전함과 그리움에 멍하니 하루를 보냈다. 홀로 남겨진 마음이란 게 이런 걸까 하며 하루를 보내고 이틀을 보냈다.

메마른 도시 위에
비가 내리면
나는 홀로가 되어 그림자 진다.

나를 부르는 아늑한 유역에서
밤새 당신의 소리에 젖어

비가 오면 왜 홀로가 되어
알 수 없는 심연 속에 잠기는 걸까

온밤 들뜬 혼을 가라치운
당신의 소리에
생각의 문을 밤새 열어보지만

어둠은 조금도 열리지 않고
한 방울의 말씀도 고이지 않은데

잠자는 도시 위에 당신의 음성이
나직이 내리는 밤
나는 세상의 깊은 고요 속에 묻혀
벗을 수 없는 한 짐의 슬픔으로
온밤 당신의 소리에 젖는다.

- '비 오는 밤이 오면', 김동수


낯선 중소도시에 내려진 날밤들. 난 홀로가 되어 어머니가 가지고 온 이부자락을 뒤집어쓰고 그림자처럼 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 속에서 긴 한숨을 뿌려놓았다. 뿌연 한숨 속에 어머니의 뒷모습이, 이따금 눈가를 훔치던 어머니의 모습이 한숨 속에 쌓여 다가왔다.

그러나 잠시 동안의 이별의 그리움이란 시간의 퇴적 속에 희미해지는 것. 학교생활에 흥미를 가지면서 그 그리움은 이내 물안개처럼 사라졌다. 그러다 비가 오는 날 밤이면 이따금 어머니란 존재는 촉촉한 그리움이 되어 젖어왔다.

많은 시간이 흐른 후 어느 날 난 그때 어머니의 마음을 물었다.

"엄마, 그때 가면서 어떤 마음이 들었어요?"
"무슨 말인겨. 그때라니?"
"나 고등학교 입학할 때 말예요."
"무슨 소리라고. 그런데 갑자기 그때 일을 왜 묻는 거냐."
"아니, 그냥."
"어쩌긴 어쩌것냐. 마음이 짠하고 그랬지. 니 두고 오는데 걸음이 안 떨어지더라. 약하기만 한 니가 잘 지낼지 걱정이 돼서."


그러나 어머닌 눈물을 흘렸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지 않았냐고 물으니 왜 당신이 우냐며 딱 한 번 울었다 한다.

"내가 니 땜에 눈물을 흘린 적은 딱 한 번밖에 없다. 니 군대 간 다음 소포로 집에서 입던 옷이 온 날이다. 그땐 왜 그리 눈물이 나는지 모르것더라."

어머닌 내게 "넌 어땠냐"고 물었지만 나도 눈물을 흘렸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이 교복을 입고 입학하는 3월이 되면 질퍽한 흙길을 걸으며 잡았던 어머니의 손을 생각하곤 한다. 그때의 애잔했던 마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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