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말고 배곯지 말아라

[시하나에 삶 하나 12] 파꽃에 어린 어릴 때 징하게 물던 어머니의 젖가슴

등록 2007.03.10 12:24수정 2007.03.1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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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시골에 가서 대파 한 움큼을 신문지에 돌돌 말아 가져왔습니다. 그리곤 깨끗하게 손질하여 다시 신문지에 싼 다음 냉장고에 넣습니다.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 먹기 위해선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합니다.


아직 결혼하기 전의 겨울 때 일이었습니다. 동생이 시골에서 비료부대에 대파를 가득 가져다주었습니다. 겨우내 싱싱하게 먹으라고 어머니가 보내주신 것입니다. 부대 속엔 흙도 들어있었습니다. 낯선 서울의 도시에서 흙을 구하기 어려울 것임을 알고 흙과 대파를 함께 보내주신 것입니다. 대파 외에도 동생에 손에 들려온 것은 갖은 마른반찬과 김치, 내가 좋아하는 싱건지도 들어있었습니다.

a 몸이 좀 나아지면 틈 나는 데로 채마밭을 일구던 어머니

몸이 좀 나아지면 틈 나는 데로 채마밭을 일구던 어머니 ⓒ 김현

어머니가 보내주신 것들을 받은 다음 시골에 전화를 했습니다. 힘들게 뭐 하러 이렇게 바리바리 싸서 보냈느냐는 투입니다.

"엄마, 나. 뭘 이렇게 많이 보냈어요."
"많기는 머시 만타냐. 더 보낼려고 한 것을 니 동생이 투정을 해서 고것밖에 못 보냈다."

"엄청 많은데요. 겨울 내내 먹어도 끄떡없겠어요. 오늘은 엄마 때문에 진수성찬이네요."
"타지에서 혼자 생활하려면 잘 먹어야 한다. 배곯으면 안 되닝께 배고플 땐 돈 아끼지 말고 머든지 사먹으라. 알았지. 에미가 옆에서 밥 해주면 좋것지만 어디 그럴 형편이 되냐."

"걱정 마세요. 알아서 잘 해먹고 있으니까. 그럼 끊을 게요."
"그래 알았다. 참, 그 대파는 베란다 볕이 잘 드는 곳에 놓고 하나씩 캐 먹거라. 파뿌랑구는 버리지 말고 감기 걸리려고 하면 끓여서 먹거라. 하얀 파뿌랑구 끓여 먹으면 감기에 좋다고 하드라."



어머니는 전화를 끊으면서도 내내 '아프지 말거라', '배곯지 마라' 하는 등 걱정을 합니다. 어머니가 보내주신 반찬으로 그날은 동생과 함께 모처럼 어머니의 그 애틋한 사랑을 배불리 먹었습니다. 멸치조림, 고추조림과 김치와 내가 좋아하는 싱건지 속엔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정성이 가득 들어있었습니다.

다음날, 난 대파 몇 뿌린 화분에 심었고, 나머진 비료부대의 흙에 심은 채 볕이 잘 드는 베란다 한쪽에 놓았습니다. 그리곤 콩나물국을 끓여 먹을 때나 라면을 끓여 먹을 때 송송 썰어 넣었습니다. 그러면 파의 향기가 가득 피어 놀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베란다 화분에 심었던 대파 몇 개가 하얀 꽃 대궁의 얼굴을 하고 고개를 들고 있는 것입니다. 파꽃을 처음 본 것은 아니지만 그때의 파꽃은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어머니의 얼굴이 아른거렸고, 어머니의 숨결이 아른거렸습니다.

그 뒤로 난 화분의 파는 뽑지 않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러자 주변의 다른 파들도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이 쓸쓸하거나 어머니가 그리울 때면 난 베란다에 쪼그려 앉아 파꽃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a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전해주는 파꽃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전해주는 파꽃 ⓒ 김현

파꽃은 내 작은 공간에서 겨울에 핀 유일한 꽃이었습니다. 그리 향기는 진하지 않지만 가까이 코를 대보면 향기가 일기도 했습니다. 그 파꽃을 바라보며 난 어머니를 생각했고,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파꽃은 어느새 그리움의 나비가 되어 창밖으로 훨훨 날아갔습니다.

어머니, 파꽃이 피었습니다.
당신의 마음 가져다가 화분에 심어
베란다에 놓았더니
어느 새 소담한 꽃이 되었습니다.

국 끓일 때, 무쳐먹을 때
한 두 뿌리 캐어다가
송송 썰어 향긋한 냄새 즐겼는데
어머니, 저 구속된 환경 속에서도
희망의 뿌리 하얗게 땅속으로 심으며
초록의 대궁이 누런 얼굴로 하직하며
찬바람 이는 내 작은 공간에
당신은 따스한 미소로 내게 왔나 봅니다.

내 입 속에서 추억의 꽈리처럼 노닐다
꽃이 된 대파 한 조각, 어릴 때 징하게 물던
당신의 젖가슴인 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 '파꽃을 바라보며' -


그때 난 그 그리움에 젖어 이렇게 어머니의 마음을 떠올렸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하며 객지생활의 외로움을 달랬습니다. 그러면 내 마음은 훈훈해졌습니다. 저 멀리 고향 땅에서 못난 자식을 생각하고 있을 어머니가 있다는 사실에 마음은 외롭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대파를 보거나 파꽃을 보면 그때 어머니가 보내주신 파에서 핀 화분의 파꽃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건강하게 일터로 나가시던 당시의 어머니의 모습과 병들어 지쳐있는 현재의 어머니를 떠올리며 속 숨을 쉽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난 파꽃을 바라볼 때마다 그때 어머니가 보내주신 사랑과 마음을 오래도록 떠올리며 간직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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