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이기만 했던 조노의 4년 한국생활

상처주는 이웃, 따뜻한 이웃

등록 2007.03.27 14:10수정 2007.04.03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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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만나다 보면 모든 일이 순탄하게 잘 풀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쩜 그리도 꼬이느냐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사람이 있다.


a 오른손을 감추는 버릇이 생긴 조노(쉼터에서)

오른손을 감추는 버릇이 생긴 조노(쉼터에서) ⓒ 고기복

조노(K.Jono)는 그런 질문이 쉽게 나올법한 사람 중의 한 명이다. 그는 3년간 일했던 최초 근무지에서 퇴직금을 받지 못해 애를 먹더니, 얼마 안 있어 고향인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에 지진이 일어났을 때는 집이 완파되었다는 소식을 들어야 했다.

그 당시 출입국에서는 지진피해 지역의 자진출국자에 대해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재입국을 허락하던 터라, 나는 조노에게 이참에 귀국하라고 권했었다. 하지만 조노는 집도 사라졌는데 조금만 더 벌어 가고 싶다며 귀국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그는 작년 9월에 기계에 손이 빨려 들어가 오른손 검지와 중지 일부가 절단되고, 손등이 눌리는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사고가 난 후 1주일이 지났을 때, 조노는 손목까지 붕대를 감고 쉼터를 찾아왔다.

조노는 회사 사장이 "병원에 있으면 병원비가 많이 나오니, 앉아서라도 간단하게 일하면 돈을 주겠다"고 했을 때 "일을 못한다"고 했더니, 회사를 그만두라고 해서 쉼터를 찾아왔다고 했다.

그때까지 다친 손끝에선 눈으로도 쉽게 진물을 확인할 수 있었고, 손끝을 건드리면 전기를 대는 것 같은 통증이 있다고 하여, 평소 무료진료를 해 주는 정형외과에 도움을 의뢰했다.


병원에서는 "처음 치료를 한 병원에서 최대한 뼈를 살리기 위해 절단을 자제했는데, 절단 부위가 감염되고 통증이 계속되면 다시 절단을 할 수도 있으니, 현장에서 일하는 것은 무리이고, 치료를 잘 받는 것이 우선이다"라고 처방을 내려줬다.

그런데도 조노 회사에서는 산재처리는 물론이고, 입원치료에 대해서도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며, 할 만큼 했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쉼터에서는 세 차례의 만남을 통해 사측에 산재처리를 부탁했다.


업체 대표는 "나도 알아볼 만큼 다 알아봤어요. 조노가 장해등급 11급 정도 되는데, 그 보상으로 백만원 정도 생각하고 있어요"라며 "신고하면 우리 공장에 다른 친구들이 피해를 봐요"라고 생색을 내려 했다. 하지만 휴업 급여도 없이 터무니없는 장해보상 금액에 대해 조노는 거부했고, 근로복지공단 직권조사를 의뢰할 수밖에 없었다.

산재를 당하고도 당당하게 피해 보상을 청구하지 못하는 사람과 그런 사람에게 오히려 큰소리치는 고용주를 보아온 것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산재신고 거부업체의 정형화된 모습을 다시 한 번 보았구나 하는 생각에 조사를 의뢰하면서 씁쓸함이 더해졌다.

근로복지공단을 통해 산재를 신청하여 산재승인을 기다리는 동안 조노는 여러 번 근로복지공단을 방문해야 했다. 사장이 산재 사실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사업주 명의 변경 이후, 자신은 사장으로 일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여 사업주에 대한 사실 조사 때문에 한 번, 사장이 사고 발생 전 급여를 지급액보다 적게 신고하여 사실 확인 차 한 번 등.

업체 사장은 이러 저러한 이유를 대며 산재처리에 비협조적이었으나, 근로복지공단에서는 사업장 조사를 통해 3월에 산재 승인과 함께 장해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줬다.

결국 사고 이후 6개월 가까이 몸과 마음고생을 하며 산재 승인을 기다렸던 조노는 장해보상을 받고 나자, 곧바로 귀국항공권 예매를 한 후 귀국을 준비했다.

그런데 귀국을 이틀 앞둔 어제(26) 출입국단속에 걸렸다. 그것도 멀리 전주에서 올라온 출입국 단속반이었다. 조노는 단속되었을 때, 자신이 산재 처리 이후 자진출국하기 위해 항공권까지 예매했다는 사실을 제대로 전달하고자 전화연락을 해 왔다.

그런데 전화상으로 "저 출입국에 잡혔어요"라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핸드폰을 거칠게 빼앗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바로 전화가 끊겼다.

단속대상자가 전화로 단속 사실을 지인들에게 알릴 경우 그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전화를 뺏는 것은 일정 부분 이해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전화를 뺏었으면 통화하고 있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소속과 신분을 밝히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단속했고, 언제쯤에 강제 추방될 것이니, 출국에 협조해 달라고 했으면 걱정이 덜 갔을 텐데, 막무가내로 전화가 끊긴 터라 별의별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전화 한 통화로도 내일모레 출국할 사람이고 손만 봐도 산재환자였다는 걸 알 수 있을 텐데, 상식적으로 전화까지 끊어가며 단속한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혹시 귀국한다고 장해보상비로 받은 돈을 찾아놨는데, 그 사실을 안 누군가가 그걸 노리진 않았나 하는 생각조차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저녁 8시가 넘어서 출입국에서 전화가 왔다. 결국 출국할 사람이니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그래도 그동안 몸과 마음고생이 여간하지 않았던 사람인데, 자진 출국을 위한 준비를 마친 사람을 굳이 강제출국을 시킬 필요가 뭐 있겠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다행히 출입국에서는 조노가 자진출국하기 위해 항공권을 예매했고, 귀국준비 중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 인도적인 견지에서 오늘(27일) 아침에 다시 풀어줬다.

이만하면 조노는 이주노동자로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다 겪은 셈이다. 임금체납, 고향에서의 불운한 소식, 산재, 단속과 해제. 그 와중에 그를 돕기 위해 여러 가지 편의를 봐 주던 사람들까지.

조노의 지난 4년은 꼬이고 풀리기를 반복했던 세월이었고, 가슴을 아프게 하는 상처도 많았지만, 주위에서 따뜻한 시선으로 그를 돌봐줬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 중 인상적이었던 사람이 있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조사가 진행될 당시 경기도 안성에서 농민운동을 오랫동안 해 왔다는 중년 남성이 우리 쉼터를 찾아왔었다. 조노가 일하던 회사 직원들이 기숙사로 사용하는 집주인이었다. 그는 조노의 사장이 사업을 하면서 동네에서 인심을 많이 잃은 사람인데, 다친 외국인을 보상은커녕 제대로 치료도 해 주지 않을 것 같아 옆에서 보기에 안타까워서 찾아왔다고 했다.

"조노가 다쳤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사장이 치료도 제대로 해 주지 않을 것 같아서 조노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조노가 쉼터에 있다고 해서 찾아왔소. 이 사람들, 참 순해요. 뭐 하나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인사성도 밝고요. 요즘 젊은 사람들 같지 않아요. 정이 가는 친구들이에요. 이런 사람들 우리가 잘해서 보내야 하지 않겠소."

'잘해서 보내야 한다'는 그의 말에서 이주노동자인 조노를 단순히 외국인으로 보지 않고, 다정한 이웃으로 보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돌아가는 그가 부디 '한국에는 상처주는 이웃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이웃들도 참 많더라' 하고 기억해 주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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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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