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핵 리더십은 바뀌어야 한다

미국의 참회가 세계 비핵화의 전제

등록 2007.04.26 11:02수정 2007.04.26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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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동아시아 외교를 잘 풀어 나가지 못하는 것은 일본이 과거 범죄에 대해 충분한 참회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덕적 권위가 확립되지 못한 상태에서 경제력과 군사력만으로는 일본이 역내 국가들을 리드하기가 용이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국이 세계 핵문제를 잘 풀어 나가지 못하는 것은 미국이 핵문제에 대해 원초적 아킬레스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로 원폭을 투하한 나라일 뿐만 아니라 과거 전 세계적으로 1만 3천 기 이상의 핵무기를 배치한 미국이 지금처럼 당당하게 세계 비핵화를 주도한다면, 미국의 영향권 밖에 있는 국가들의 입장에서는 한낱 주객전도(主客顚倒)의 양상으로밖에 비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히로시마·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 패권을 장악한 이후인 1950년대에도 핵무기 투하계획을 수립한 적이 있다. 또 세계적으로 미국의 핵우산을 온 사방에 펼쳐 놓았다.

미국이 세계 패권을 장악하기 이전에 히로시마·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한 것과, 미국이 세계 패권을 장악한 이후에 동일한 행위를 시도한 것은 질적으로 엄연히 다른 것이다.

경찰관이 되기 전에 범죄를 저지른 것과 경찰관이 된 후에 범죄를 저지른 것은 질적으로 엄연히 다른 것이다. 이는 미국의 리더십에 도덕적 정당성이 결여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해리 미들튼(Harry J. Middleton)이 뉴욕에서 발행한 <한국전쟁 간사>(The Compact History of the Korean War)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미 전략공군사령관이었던 토마스 파워(Thomas Power) 장군은 "나는 원폭 투하를 위해서 전략공군부대를 대기시키라는 명령을 받았다"라고 증언하였다.

한미연합군이 부산 교두보까지 밀린 1950년 8월경에 미국은 부산을 포위한 북한군에 원폭을 투하할 준비를 진행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미국은 미군 피해에 대한 우려와 미군 증파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부산 인근에 대한 핵 투하를 포기하였다.


이 외에도 미국은 1950년 11월경과 1952년 12월경에도 한반도 및 만주 지역에 대해 핵투하 계획을 추진한 적이 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청천강 전투(1950.11.25~28)에서 미군이 참패를 당함에 따라 전세가 도로 불리해지자, 1950년 11월 30일 트루먼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핵무기 사용이 검토될 수 있다"고 발언한 적이 있다.


하지만, 영국·캐나다 등 우방국들의 반대 때문에 이 계획은 결국 무산되었으며, 핵 투하의 제안자인 맥아더 장군은 이 때문에 해임되고 말았다.

그리고 1952년 12월경에는 북한을 압박하여 조기 휴전협정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역시 핵 투하를 고려한 적이 있다. 그때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조기 휴전을 위해서는 핵무기 사용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하였으며, 미 합참의장 아더 래드포드도 핵무기에 의한 대량보복을 주장하였다.

1964년 뉴욕에서 발행된 데이비드 리즈(David Rees)의 <한국의 제한전쟁>(Korea: The Limited War)에 따르면, 미국은 이 계획에 따라 1953년 봄에 핵탄두 장착 미사일을 오키나와에 배치하는 등 대북 압박에 들어갔다. 그러나 핵은 결국 투하되지 못하고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은 긴 휴식에 들어가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바 있듯이, 이후에도 미국은 전 세계적으로 1만 3천 기의 핵무기를 배치하는 등 전 지구를 미국의 핵우산 지역으로 만들었다. 동북아 지역을 포함해서 괌·필리핀·하와이 및 유럽 지역에 미국의 핵무기가 배치된 것이다.

이렇듯, 핵에 관한 한 원죄를 안고 있는 미국이 오늘날 비(非)핵보유국들만을 상대로 핵확산금지운동을 벌이고 있으니, 세계 비핵화가 제대로 진척될 리가 만무한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도덕적 권위를 주요 요소로 하는 리더십을 미국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북한과 이란 등이 핵을 무기로 미국의 권위에 도전할 수 있는 것도 기본적으로 미국에게 리더십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리더십이 부족한 상태에서 미국은 오로지 힘만을 앞세워 핵확산금지운동을 벌이는 측면이 있다. 도덕적 리더십이 없기 때문에 미국이 우격다짐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런데 이처럼 도덕적 리더십이 없는 상태에서 미국이 핵확산금지를 주도하는 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는 어디까지나 미국이 현재와 같은 국력을 유지할 경우에만 가능한 것이다. 만약 미국의 경제력이나 군사력이 지금보다 더 약화된다면, 북한·이란 외의 또 다른 국가들도 핵무장 노선으로 미국의 권위를 흔들 가능성이 충분히 잠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이 세계 비핵화 작업을 안정적으로 끌고 나가라면 종전에 갖고 있던 의식과 태도를 대대적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미국은 비핵보유국의 핵무장뿐만 아니라 기존 핵보유국의 핵무장도 불법이라는 인식을 갖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리고 기존 핵보유국의 핵무기에 대한 단죄 없이 비핵보유국의 핵무장만 단죄하는 것은,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는 사법체계와 다를 바 없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비핵화를 주도하는 미국 자신의 태도도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미국은 어떤 경우에도 여타 국가들에 대해 심판자적 자세를 취할 자격이 없다. 핵문제에 관한 한 미국이 가장 큰 전과자이고 또 원죄자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신도 불완전한 전과자라는 전제 하에서 '모든 나라가 다 함께' 참여하는 비핵화 운동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미국이 비핵화 운동과 관련하여 인류의 보편적 지지를 얻고자 한다면, 이제라도 과거의 핵 투하 범죄에 대해 머리 숙여 진심어린 사죄를 하고, 그런 연후에 심판자적 입장이 아니라 협력자적 입장에서 세계 비핵화운동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차라리 미국의 리더십을 강화하는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종전의 위압적인 자세를 버리고 동참자적 자세를 취하지 않는 한, 앞으로는 어느 나라도 미국의 리더십을 쉽사리 수용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예전처럼 강력하다면 모르겠지만, 미국의 이맛살에 하루가 멀다 하고 주름살이 늘어 가는데, 누가 이전처럼 미국을 두려워하고 따르려 할 것인가? 차라리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편이 미국의 리더십을 강화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미국의 참회가 전제되지 않는 상태에서 전개되는 '비핵보유국만을 대상으로 하는 비핵화운동'은 도덕적 정당성을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류의 평화와 번영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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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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