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교육보다 책이 있는 거실이 더 낫다

[아가와 책 80] 김정희의 <책이 있는 집 아이들이 달라졌어요>

등록 2007.07.28 14:32수정 2007.07.28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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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책이 있는 집 아이들이 달라졌어요> ⓒ 알마

서점가의 자녀 교육 서적 코너를 가보면 '어떻게 공부시켰더니 명문대를 가더라' '영어 조기 교육은 이렇게 하라'는 종류의 책들이 난무한다. 성공한 자녀 교육은 곧 '명문대 입성'이라는 고정 관념이 존재하는 한 이런 종류의 책들은 언제나 서점가를 휩쓸 것이다.

<책이 있는 집 아이들이 달라졌어요>는 영재 교육 이야기도 아니고 조기 영어 교육 이야기도 아니다. 책을 많이 읽혔더니 아이가 똑똑해지더라는 내용은 더더욱 아니다. 한 평범한 엄마와 아이들의 단순한 성장과 교육 이야기인데 아이 엄마인 나의 마음에 무척 와 닿는다.

그 이유는 '아, 이렇게 좌충우돌하면서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 바로 교육이구나!'하는 생각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타산지석처럼 이 책을 쓴 엄마의 실패 사례를 답습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바른 교육이란 무엇인가를 절로 느끼게 한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태교다 뭐다 온갖 아이 머리에 좋다는 것은 다 신경 쓴 극성 엄마 김정희씨. 그녀는 세상에 태어난 똘망똘망한 치영이에게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싶은 엄마다. 그녀는 치영이를 남보다 뛰어난 아이로 만들기 위해 조기 한글 교육을 비롯해서 안 해본 게 없다.

이러는 과정에서 치영이가 배에 심한 통증을 느끼고 병원에 가게 되면서 이 집의 가치관은 뒤바뀌게 된다. 7살짜리 아이답지 않은 심각한 스트레스성 위염을 앓는 치영이.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한글과 영어를 술술 읽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게 놀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시간인 것이다.

결국 엄마는 조기 교육 교재들을 모두 집어던지고 매일 같이 두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와 시장, 자연적인 공간을 찾아다니며 '실컷 놀기'에 몰두한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저절로 스트레스를 풀고 세상에 대해 직접 경험하며 익힌다. 워낙 어린 시절에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공부하기를 싫어하게 된 치영이지만 엄마가 보기엔 긍정적인 사고의 예쁜 아이다.

이렇게 놀이를 즐기게 된 이 집에 다시 찾아오게 된 어두운 복병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텔레비전'. 아이들이 스트레스 안 받고 잘 지내는 건 좋지만 식구 모두가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족은 대화를 잃어간다.

급기야는 엄마 아빠가 텔레비전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아이들까지 중독되는 과정에서 가족 간의 불화가 깊어진다. 김정희씨는 다시 결심한다. 집에서 텔레비전을 몰아내야겠다고. 남편의 끈질긴 집착에도 그녀는 꿋꿋이 자기 의사를 밝히고 텔레비전을 추방하는 데에 성공한다.

텔레비전이 사라진 거실에는 과거 조기 교육을 위해 구입했던 교재며 여기저기에서 얻은 책들을 가득 채워 넣었다. 처음에는 너무 할 일이 없고 심심해서 책을 들춰보던 아이들이 나중에는 책에 푹 빠져 살면서 아이들은 또 다른 멋진 세상을 만난다.

"그동안 아이들은 스스로 보고 싶은 책을 골라잡았고, 즐겁게 책을 읽었다. 독서 단계도 무시하고, 독서 영재도 바라지 않았다. 독서 감상문도 강요하지 않았다. '믿는 만큼 자란다'고 했던가. 엄마인 나는 기다린 것 말고는 정말 한 일이 없다."

이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아이를 키우니 아이도 엄마 마음을 알고는 제법 재미나는 인생을 스스로 꾸려간다. 요새 엄마들은 아이의 창의력과 사고력을 신장시켜 준다고 온갖 학습지며 과외를 들이댄다. 하지만 책과 직접 경험한 것들로부터 얻어지는 사고력은 단순한 학습지의 지식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을 것이다.

김정희씨의 딸 치영이는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가장 행복한 꼴찌'다. 다른 오학년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시험을 보면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친구들과 맛있는 걸 사먹으며 즐거워하는 평범한 아이. 비록 그 점수가 30점이거나 50점일지라도 전화를 하는 아이의 목소리는 언제나 밝다. 그것만으로도 저자는 충분한 행복을 느낀다.

내 주변의 많은 엄마들도 조기 교육에 관심이 많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나름대로 외국에서 언어 교수법까지 전공한지라 특히 아이한테 이중 언어 교육을 시키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을 때가 많다. 교수법 이론에 따르면 어린 시절에 다양한 언어에 노출된 아이는 어른이 되어도 쉽게 외국어를 습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엄마들처럼 조기 교육 교재를 잔뜩 들여 놓고 아이에게 '언어'라는 것을 가르치려고 애쓰진 않으려 노력 중이다. 우리 딸이 이 책에 나온 치영이처럼 두뇌는 우수하나 속은 병든 아이로 자라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처럼 아이의 조기 교육에 솔깃하는 엄마라면 한번쯤 읽어볼 만하다. 내가 지나치게 과열 교육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리 아이의 성품과 지성, 육체의 고른 발달을 잊고 지나치게 지적인 발달만을 요구하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 반성할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책이 있는 집 아이들이 달라졌어요

김정희 지음,
알마, 2007


#조기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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