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오백년 지난 우물에 물이 '찰랑찰랑'

경북 구미시 도개면 신라불교초전마을 '모례가정'에 다녀와서

등록 2007.08.05 11:37수정 2008.04.09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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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해 앞서 이 마을에 들어온 스님이 이 집에 벽마다 탱화를 그렸어요. ⓒ 손현희

지난 7월 15일, 자전거 나들이를 다니면서 자주 지나쳤던 경북 구미시 도개면에 갔을 때였어요. 이곳에도 숨어있는 '우리 것'이 많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 이날은 도개면에 있는 마을마다 구석구석 다녀볼 생각이었죠.도개면 도개리에 닿았을 때, 마을 들머리부터 뭔가 예사롭지 않다는 걸 잘 느낄 수 있었어요. '모례교'라는 다리를 지나 흙 돌로 쌓은 낮은 담장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어요. 낡아 보이지 않아 쌓은 지 그리 오래된 듯 보이진 않았어요. 마을 크기도 한눈에 내다볼 수 있을 만큼 작은 마을인데, 낯선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와서 구석구석 사진을 찍는 걸 보더니, 어르신 한 분이 다가오셨어요.

 

마을 어르신을 만나 마을에 얽힌 이야기를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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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례마을 들머리, 신라때 불교가 처음 들어온 곳이에요. ⓒ 손현희

"안녕하세요. 어르신!"

 

남편과 나는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마을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지요. 그러자 어르신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얼굴빛이 환해지셨어요.

 

"본디 이 마을은 '모례마을'이라고 하는데요. '신라불교초전마을'이에요.""네? 불교초전마을이요?"

"네. 그렇지요. 신라에 불교가 가장 먼저 들어온 곳입니다."

"아, 네. 어쩐지 마을 들머리부터 뭔가 남다르게 생겼다 싶었어요."

"네. 그렇습니다. 구미시에서 지원을 해주어서 이렇게 새로 단장을 했지요."

"그런데 왜 모례마을이라고 해요?"

"아, 네. 그건 여기가 신라 첫 불교신자였던 '모례'가 살던 곳이에요. 옛날에 이 마을에서 가장 부자였다고 해요."

"아, 그래서 '모례장자'라고 하는군요?"

"네, 맞습니다. 이 모례가 고구려에서 '묵호자'라고 하는 스님이 이 마을에 왔을 때에 자기 집에다가 굴을 파고 3년 동안 숨겨주면서 불교를 전하게 했답니다. 그 모례의 집이 바로 저 안에 있었는데, 지금은 그 집에 있던 우물만 남아 있어요."

"네. 저희도 그 우물을 봤어요. 신라 때 같으면 1500년이 지났는데, 그렇게나 오래된 우물인데도 아직도 물이 찰랑찰랑 차 있던데요."

"네, 그렇지요. 또 나중에 아도가 왔을 때에도 자기 집에 머슴살이를 하면서 살도록 했지요."

"아도요? 아, 저기 송곡리에 있는 '도리사'를 지었다는 '아도' 말이지요?"

"네, 그렇습니다. 잘 아시네요. 바로 아도가 저 도리사를 지을 때 이야기도 아주 신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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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첫 불교신자였던 모례네 집에 있던 우물만이 이 터를 지키고 있다. 우물 안에는 나무판자가 깔려있는데, 1500년이 지난 지금도 썩지 않고 물이 찰랑찰랑거려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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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물이 찰랑찰랑거려요. ⓒ 손현희

머슴살이 끝에 받은 시주로 지은 '도리사'

 

어르신과 이런 얘기를 주고받는데, 마을 저쪽에서 오토바이를 탄 또 다른 어르신이 우리를 보고 멈추었어요. 반갑게 인사를 하고는 마을에 얽힌 또 다른 이야기들을 들려주셨어요. 어르신이 우리한테 들려준 이야기는 다음과 같아요.

 

"아도가 모례네 집에서 다섯 해 동안 머슴살이를 했는데, 그만두고 돌아갈 때 그동안 일한 품삯(세경)을 한 푼도 받지 않았대요. 그러자 서운해 하던 모례가 소원을 하나 말하라고 했더니, 말없이 두 말짜리 망태기를 만들어 거기에 시주를 해달라고 했지요. 그런데 웬일인지 쌀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퍼다 부었는데도 희한하게 가득 채워지지 않는 거였어요. 몇 번을 거듭하여 채우고 또 채워도 가득 채우지 못한 채로 시주를 했는데, 그 쌀이 천 섬이나 된다고 해요. 그렇게 해서 모례가 시주한 쌀로 '도리사'를 지었다고 합니다."

 

어르신은 이야기를 들려주면서,"전설 같은 이야기죠? 지금 생각하면 너무 터무니없는 얘기지만 아무튼 그런 얘기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어르신 두 분이 모두 자기 마을에 얽힌 이야기를 꽤 자세하게 알고 계셨어요. 또 이런 남다른 문화를 지닌 마을을 생각하는 마음이 무척 자랑스러워하는 듯 보였어요. 우리가 마을마다 다니면서 아주 소중한 문화재를 보고, 그 마을사람한테 "이게 어떤 거냐?"고 물으면 "잘 모른다"고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요. 그런 것에 견주면 이 마을 어르신들은 저마다 마을에 얽힌 이야기를 거침없이 들려주고, 또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해서 이런 모습을 보는 저희가 더욱 기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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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두문 스님이 벽마다 온통 탱화를 그려놓았어요. 꽤 아름답고 멋스러웠답니다.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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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그린 탱화를 구경하다가 방문 앞에 굳게 잠긴 자물쇠가 왠지 멋스러워서. ⓒ 손현희

"어르신, 마을을 둘러보니 저 안에 우물곁에 있는 어떤 집에 가보니까, 벽마다 온통 탱화를 그려놓았던데요. 그건 누가 그린 건가요?""아, 그것도 보셨군요. 그건 '임도문'이라는 스님이 그렸어요. 그분이 이 마을에 들어오신 게 한 십 년쯤 되었을 걸요?""아, 그렇군요. 그런데 그림 솜씨가 예사롭지 않던데요?"

 

그 집안에 있는 모든 벽에다가 그림을 그려놓았는데, 사람은 없더라고요. 그래서 누가 그런 멋진 그림을 그렸는지 몹시 궁금했지요.

 

"여기 뒤에 있는 폐교에다가 법당을 차려놓았어요. 또 모례네 우물곁에는 큰 집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박물관이에요. 집만 지어놓고 아직 물건을 들여놓지 않았는데 아마 곧 열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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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과 밖에 모두 탱화를 그렸어요. 스님 그림 솜씨가 예사롭지 않아요. ⓒ 손현희

나중에 알고 보니, '모례가정' 곁에 있던 큰 집은 '신라 불교초전기념관'이더군요. 이 도개면 도개리는 이를테면, 신라불교 성지로도 손색없을 만큼 멋진 곳이에요.

 

김세환 어르신이 들려준 또 다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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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얽힌 이야기를 자세하고 자랑스럽게 들려주신 두 어르신, 왼쪽 김세환(76)어르신, 오른쪽 어르신은 인터뷰 하다가 손님이 와서 가시는 바람에 이름을 여쭙지 못했어요. ⓒ 손현희

"이런 얘기 들어보셨죠?"

"옛날 어떤 마을에 사이좋기로 소문난 형제가 있었어요. 늘 콩 한쪽도 반씩 똑같이 나누어 먹는 그런 사이였어요. 하루는 커다란 금덩이를 하나 주운 거예요. 형제는 그걸 둘이서 똑같이 반으로 나누기로 하고 헤어졌지요. 그런데 그날 밤 형제는 둘 다 잠을 못 이루고 힘들어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욕심이 생겼군요?"

"그렇지요. 맞아요. 둘이 그렇게 사이좋은 형제였지만 막상 금덩이를 주우니, 서로 더 많이 가지고 싶었던 거예요."

"사람인데 아무래도 욕심이 났겠지요."

"그랬던 거예요. 다음날 아침에 형제가 만났을 때, 서로 똑같은 걱정으로 잠 못 이룬 걸 깨닫고, 둘은 그 길로 그 금덩이를 강에 내다버리지요. 서로 욕심을 내어 금덩이를 나눠 부자가 되기보다 욕심 없이 지금처럼 사이좋게 지내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 거지요."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르신이 왜 이런 얘기를 꺼내셨을까? 하며 궁금해하면서 더욱 귀 기울여 들었어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 욕심이 오늘날 많은 사람을 갈라놓는다는 거예요. 집 안 식구들도 그렇고, 동기간에도 그렇고, 마을사람도 그렇고, 나아가 정치하는 판에서도 그렇고…."

 

그제야 어르신이 무슨 말씀을 하려고 하는지 깨달았어요. '이분, 참 남다른 분이시구나!' 하고 여기고 고개를 끄덕이며 잠자코 얘기를 들었어요.

 

"나도 사람이기 때문에 욕심 없이 산다는 게 무척 어렵지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래도 욕심을 버리고 늘 정직하게 살려고 애쓴답니다. 모든 사람이 이런 마음으로 산다면 우리나라도 좀 더 좋은 나라가 되지 않을까요?"

 

어르신 얘기를 들으면서 가슴이 참 뿌듯했어요. 자기 마을에 얽힌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며 낯선 이한테 들려주는 것하며, 또 옛이야기까지 곁들여 우리나라 앞날까지 걱정하시는 모습을 보니, 이런 분들 밑에서 보고 배우며 자라는 젊은이들이 많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두문칠십이현' 농암선생의 후손 김세환 어르신

 

나중에 우리한테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주셨던 김세환(76) 어르신 이야기를 더 들으면서 알게 되었는데, 이분 집안 내력이 또 아주 놀라웠습니다.고려 말기, 조선의 새 왕조를 섬기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두문동에 들어가 절의를 지켜 고려에 충성을 다한 '두문동칠십이현' 가운데 한 분이신 예의판서 농암 선생의 후손이었어요. 모례네 우물이 있는 도개리와 아주 가까운 구미시 도개면 궁기리에 살고 있는데, 지난날 임금이 내려준 농암 선생의 사당이 너무 낡아서 다시 고쳐 짓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답니다. 생각대로 참으로 훌륭한 분의 자손답게 매우 올곧은 생각을 품은 분이라는 걸 깨달았지요.

 

빠른 때에 어르신을 다시 찾아 뵙고 농암 선생과 그 사당에 얽힌 이야기도 들어보려고 <오마이뉴스> 명함을 건네 드리고 전화번호도 받아 적고는 고맙다는 인사를 한 뒤 헤어졌습니다.

 

자기 마을에 찾아온 낯선 이한테 마을 이야기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들려주신 도개리 어르신 두 분께 무척 고마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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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클릭해서 원본으로 보세요. 흙돌담으로 쌓은 낮은 담장이 퍽 멋스러운 도개면 도개리 마을.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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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개리 마을회관. ⓒ 손현희

 

덧붙이는 글 | ※ 글 가운데 나오는 고구려의 스님인 '묵호자'와 '아도'는 서로 같은 사람이라는 얘기도 있고, 그렇지 않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한빛이 꾸리는'우리 말' 살려쓰는 이야기가 담긴 하늘 그리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2007.08.05 11:37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 글 가운데 나오는 고구려의 스님인 '묵호자'와 '아도'는 서로 같은 사람이라는 얘기도 있고, 그렇지 않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한빛이 꾸리는'우리 말' 살려쓰는 이야기가 담긴 하늘 그리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모례가정 #도개리 #신라불교초전마을 #아도 #묵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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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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