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다가스카르 럼주를 마시고 타마타브로

[마다가스카르 여행기 21] 항구도시 타마타브 1

등록 2007.10.10 07:33수정 2007.10.10 10:24
0
원고료로 응원
a

42도 짜리 망고스탄 마다가스카르 럼주 ⓒ 김준희


"동생 일어나!"

조용주 사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을 떴지만 꿈인지 생시인지 구별이 안 된다. 머릿속은 어질어질하고, 누운 채로 천장이 한 바퀴 빙글도는 느낌이다. 여기가 어디더라? 조 사장님이 다시 말한다.


"어때? 몸 괜찮아?"

여기는 어젯밤에 술을 마셨던 미소식당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미소식당 2층에 있는 최명천 사장님의 방이다. 나랑 조사장님은 술을 마신 채로 그 방에서 누워버린 것이다. 시간은 새벽 6시. 한국에서도 이렇게 일찍 일어난 적이 별로 없었는데, 이 먼 곳에 여행 와서 이런 시간에 일어나다니.

럼주와 맥주를 마시고 술이 덜 깬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니까 방 전체가 입체적으로 돌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숨을 쉴 때마다 술냄새가 풍기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몸이 휘청거린다. 어제 마다가스카르 럼주와 마다가스카르 맥주를 함께 마셨다. 럼주도 좋고 맥주도 좋았다. 문제는 그 두 가지를 섞어 먹었다는 데에 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불변의 진리. 역시 술은 섞어 마시면 안 된다.

나는 세면도구를 챙겨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세수와 양치를 하고 면도를 했다. 여행을 하는 중에는 아무리 귀찮더라도 면도를 빼놓지 않았다. 왠지 면도를 하고 있으면 지금이 여행 중이 아니라 일상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일상 속에서는 여행을 꿈꾸지만, 막상 여행을 떠나오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기분이 드는 것일까?


아래층으로 내려가니까 어느새 최 사장님이 빵과 잼, 커피를 준비해두었다. 우리는 테이블에 둘러앉아서 빵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속이 더부룩해서인지 빵도 많이 먹을 수가 없다. 난 빵 대신에 커피를 두세 잔 마신 후에 배낭을 메고 조 사장님과 함께 미소식당을 나왔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최 사장님께 인사를 꾸벅하고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침 7시에 출발하는 타마타브행 버스를 타러 가는 길이다. 조 사장님은 마다가스카르에 와서 한 번도 타마타브에 가본 적이없단다. 그래서 나의 여행길에 조 사장님이 동행했다. 미소식당에서 20분 정도 걸으면 타마타브로 가는 버스터미널이 있다.

안타나나리보(타나)에는 총 4개의 버스터미널이 있다.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곳은 그중에서 북쪽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서 마다가스카르의 북쪽으로 떠나는 미니버스를 탈 수 있다. 타마타브, 무라망가에 가는 버스도 있고 마하장가, 디에고 등으로 떠나는 버스도 이곳에서 탈 수 있다.

버스를 타고 항구도시 타마타브로 향하다

a

안타나나리보 타마타브 가는 버스가 있는 터미널 ⓒ 김준희


터미널에 도착한 나는 버스회사의 직원들에게 버스표를 보여주면서 타마타브행 버스를 어디서 타면 되냐고 물어보았다. 사람들이 이끄는 대로 가서 붉은색 미니버스에 올라탔다. 15인승 미니버스지만 아무 자리에나 앉는 것이 아니다. 버스회사 직원은 공책을 한 권 들고 있다.

그 공책에는 미니버스의 좌석배열이 그려져 있고, 거기에는 승객의 이름이 적혀 있다. 승객들은 버스표를 예약하면서 자신의 이름도 함께 말해야 한다. 그러면 그때 직원은 적당한 좌석에 배치해준다. 물론 사전에 어느 자리에 앉고 싶다고 얘기할 수도 있다. 그 자리가 비어 있으면 앉을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남는 자리에 앉아야 하는 것이다.

조 사장님과 나는 미니버스의 제일 뒷자리를 배정받았다. 제일 뒷자리의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중간에 쉴 때마다 앞쪽에 앉은 사람들을 헤치고 밖으로 나가려면 고생 좀 하게 생겼다. 7시 출발 예정이던 차는 정확하게 7시 22분에 출발했다. 조금 늦기는 했지만, 지금까지의 경험과 비교해보면 꽤나 시간을 잘 지킨 편이다. 타마타브 도착 예정시간은 대충 오후 3시경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약 8시간 정도가 걸리는 셈이다. 타나에서 타마타브까지는 대략 350km 정도다. 버스로 350km를 달리는 데 8시간이 걸린다. 타나를 벗어나면 도로가 정체되는 일은 거의 없다. 타나에서 타마타브까지는 비포장도로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는 마다가스카르의 도로사정 때문이다. 산길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엄청나게 돌고 돌아간다.

마다가스카르의 지방도로가 대부분 굽잇길이지만, 타나-타마타브 길은 그중에서도 아마 손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 왼쪽 오른쪽으로 쉼 없이 굽어진 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버스의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벌써 구토를 하고 있다. 아침에 빵을 조금 밖에 안 먹은 것이 어쩌면 다행일지 모르겠다. 안 그래도 술이 깨지 않은 상태인데 음식까지 많이 먹었더라면 나도 벌써 구토를 했을지 모를 일이다.

도로는 많이 굽어 있지만, 버스 창 밖으로는 그야말로 열대우림이 펼쳐진다. 커다란 나무와 수풀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현지인들의 작은 목재건물들이 놓여있다. 조 사장님이 옆에서 계속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다. 술도 덜 깨고 잠도 덜 깬 나에게는 그 말이 들려오지 않는다. 창 밖으로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지금은 건기인데 웬 비가 이렇게 내릴까? 그 비를 바라보면서 나는 자다 깨다를 반복하고 있다.

타마타브는 마다가스카르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가장 큰 항구도시다. 근처의 니켈광산에서 채굴한 니켈을 배로 실어나르는 곳이기도 하다. 도시의 크기로 따지자면 피아나란츄아와 거의 비슷할 것이다. 타마타브의 인구는 채 20만이 되지 않는다. 두 번째로 크다고는 하지만, 수도인 타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은 곳이기도 하다. 항구도시이기 때문에 타마타브에서는 인도양을 볼 수 있다. 지금 창밖의 날씨는 계속 비가 내리고 있다. 이렇게 비가 내린다면 어떻게 인도양을 볼 수 있을까?

한자 메뉴판이 있는 타마타브의 식당

a

타마타브 가는 길 바나나와 알코올 음료 '베차'를 팔고 있다. ⓒ 김준희


a

타마타브 가는 길 야자열매를 팔고 있다. ⓒ 김준희


버스는 3시가 넘어서 타마타브 터미널에 도착했다. 여기에도 많은 인력거가 있다. 한 인력거꾼이 오더니 자신의 인력거를 가리킨다. 타지 않겠다고 손을 저었더니 이번에는 호텔로 안내해주겠단다. 그래서 따라나섰다. 인력거꾼은 인력거를 잡은 채로 열심히 걸어가고, 나도 배낭을 메고 걷고 있다.

앞서가는 인력거꾼은 연신 뒤를 돌아보면서 걷는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호텔은 'Flamboyant'. 마나카라에서 묵었던 호텔과 같은 이름이다. 설마 이 호텔도 체인점 형식으로 운영되는 것일까. 인력거꾼은 안내해준 대가로 돈을 요구한다. 내가 그에게 물었다.

"얼마 줄까요?"
"천 아리아리만 줘요."


천 아리아리면 우리 돈으로 약 오백원이다. 난 그 돈을 그에게 주고 호텔로 들어갔다.

"방 있어요?"

안내데스크에 앉아 있던 현지인이 나에게 표를 보여준다. 크고 작은 다양한 방이 있다. 난 조 사장님과 함께 방을 써야 하기 때문에 침대 두 개짜리 방을 골랐다. 가격은 하룻밤에 3만 아리아리. 이 정도면 적당한 편이다. 버스 타고 오면서 열심히 잤기 때문에 술도 잠도 다 깬 상태다. 나는 씻고 나서 조 사장님과 함께 방을 나섰다. 하늘은 잔뜩 흐리고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다. 우리는 함께 호텔 근처의 작은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의 메뉴판에는 특이하게도 프랑스어와 함께 한자로 쓰여 있다. 조 사장님이 말한다.

"이 근처에 중국인 노동자들이 많거든. 그래서 아마 여기 식당에도 한자로 메뉴를 써두었을 거야."

우리는 중국음식 '완탕면'을 골랐다. 메뉴판의 프랑스식 발음으로 하면 '빈탕미엔'이 된다. 이거 두 그릇과 맥주 두 병을 주문했다. 왠지 느끼해 보이는 국물에 만두와 면이 들어 있다. 칠리소스를 주문해서 이 국물에 넣었더니 그런데로 얼큰하게 되었다. 뜨거운 완탕면을 먹으면서 동시에 차가운 맥주를 마시는 기분. 어느새 밖에는 비가 쏟아지고 있다.

식당의 지붕은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슬레이트로 만들어져 있다. 그 지붕 위로 빗줄기가 툭툭 떨어진다. 타마타브에 비가 올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웬 비가 이렇게 쏟아질까. 아무튼 기분만큼은 좋다. 지붕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맥주를 마시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a

타마타브 흐린 날씨에 무지개가 떳다. ⓒ 김준희


a

타마타브 기차역 지금은 거의 운행하지 않는다. ⓒ 김준희

덧붙이는 글 | 2007년 여름, 한달동안 마다가스카르를 배낭여행 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2007년 여름, 한달동안 마다가스카르를 배낭여행 했습니다.
#마다가스카르 #타마타브 #럼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자식 '신불자' 만드는 부모들... "집 나올 때 인감과 통장 챙겼다"
  2. 2 '판도라의 상자' 만지작거리는 교육부... 감당 가능한가
  3. 3 [단독] "문재인 전 대통령과 엮으려는 시도 있었다"
  4. 4 쌍방울이 이재명 위해 돈 보냈다? 다른 정황 나왔다
  5. 5 카톡 안 보는 '요즘 10대 애들'의 소통법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