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사냥을 시작해 볼까?

추리무협소설 <천지> 289회

등록 2007.10.16 08:14수정 2007.10.16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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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으실 대로….”

용추는 이미 추태감의 의도를 어렴풋이 짐작했다. 지금 보이는 것으로 보면 힘은 상만천의 일행이 가장 강력하다. 추태감 일행이 다소 처지는 상태. 그럼에도 무당이나 점창의 인물들을 자신의 일행으로 끌어들이지 않은 것은 상만천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무당과 점창의 인물들을 앞세워 방패막이를 삼고, 이신을 움직여 상대들을 제거해 나가겠다는 것.


“하지만 소생은 이곳에 남겠습니다.”

“무슨 말인가?”

묻는 추태감 뿐 아니라 상만천도 의외라는 듯 용추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함곡과 같이 있겠다는 말씀입니다. 어차피 소생은 거추장스러운 존재만 될 것입니다. 더구나 누군가는 함곡을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네가 함곡을?”


“저들이 함곡을 탈취하고자 노릴 수 있겠지만 소생에게는 최소한 함곡을 그대로 빼앗기지는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소생이 죽는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럴 능력은 있을 것이다. 극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성의 옥음지를 익혔으니 무공을 모르는 함곡을 죽이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것은 함곡을 구해내려 노리고 있는 풍철한 일행에게도 경고를 한 것이다. 만일 함곡을 구하려 한다면 아예 함곡을 죽여 버리겠다는 것이다.


“…”

허나 추태감은 잠시였지만 눈을 가늘게 뜨고 용추를 바라보았다. 당연히 상만천 일행과 합류해 진두지휘를 해야 할 용추가 선뜻 빠져버리며 함곡을 감시하겠다는 정확한 의도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이내 추태감은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였다. 함곡의 확보는 어쩌면 최악의 상황이 닥친다 해도 이 생사림 안에서 살아나갈 수 있는 마지막 패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함곡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그렇다면 추태감 쪽에서도, 또한 상만천 쪽에서도 함곡을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무당의 인물들에게 넘겨놓을 수도 없는 일. 그나마 함곡을 상만천 일행에서 빠지겠다고 한 용추의 손에 있는 것이 나을 것으로 생각했다. 추태감은 확인이라도 하듯 함곡과 같이 있는 천과 쪽을 바라보았다. 천과 역시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게 하지. 이곳에 계속 있을 텐가?”

상만천에게 속해 있는 용추지만 눈에 보이는 장난은 치지 않을 터. 지금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으려면 이것이 최선이다.

“물론입니다. 여기만큼 사방 십여 장의 공터도 없으니 누군가 다가와도 금방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추태감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렇다면 추태감에게 의심을 받을 만한 여지를 남겨 두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적어도 이 생사림 안에서만큼은 완벽하게 서로 공조해야 한다는 것.

추태감과의 본격적인 싸움은 그 다음의 일이다. 더구나 이신이 나타난 이상 이곳에서 시간을 가지고 차분하게 계획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상만천 역시 용추의 생각을 짐작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사냥을 시작해 볼까?”

말과 함께 추산관 태감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추태감 역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밤이 깊었어. 잠자리에 들 시간이 지난 것 같군. 나중에 사냥한 머릿수를 세어보는 것도 재미있겠지?”

일찍 끝내자는 말이었고, 서로 최선을 다해보자는 말이다.

이렇게 생사림에서의 술래잡기, 추태감이나 상만천은 사냥이라고 표현한, 혈투의 막이 오르고 있었다. 허나 누가 사냥감이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는 함곡의 얼굴에 미세한 미소와 함께 그늘이 깔리는 상반된 표정이 스치고 있었다.

93

“사매가 무척 피곤한 모양이군.”

옥기룡이 궁수유를 보면서 나직하게 말했다. 궁수유는 매우 피곤한 듯 자꾸 하품을 하고 있었고, 눈빛은 다른 때와 달리 완연하게 풀려 있었다. 더구나 사부와 어른들이 계시는 자리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지 않았다.

조금 더 지나면 누군가가 지적을 했겠지만 아랫사람들에게 예의를 강요하는 옥기룡이 먼저 나무라듯 말했던 것이다. 장문위 역시 궁수유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약간은 의아한 듯한, 한편으로는 뭔가 걸리는 듯한 눈빛이었다.

“죄송해요. 사형. 술이 과했나 봐요.”  

궁수유가 애써 정신을 차리려는 듯 찻잔을 들어 찻물을 마시고 나서 미안한 듯 말했다.

“아니 사매, 왜?”

장문위가 약간 놀라는 듯한 표정으로 궁수유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자 다른 인물들도 궁수유를 모두 주시했다.

“대사형, 왜? 제 얼굴에 무엇이라도 묻었나요?”

“아니, 네 얼굴에 청살선(靑殺線)이 왜 나타났는지….”

장문위의 말마따나 자세히 보면 궁수유의 미간에는 미세하지만 푸른 선이 나타나 있었고, 뺨은 붉으레하게 변해 있었다. 술기운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자네….”

궁수유의 얼굴을 바라보던 성곤이 고개를 홱 돌리며 중의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 눈빛은 지금까지 친구를 바라보던 그것이 아니라 살기가 들어있는 눈빛이었다. 중의가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성곤의 시선을 피했다.

“무형독(無形毒)이로군.”

운중의 입에서 탄식하듯 말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중의로 향했다.

“미안하네.”

중의가 술잔을 단숨에 들이키더니 술잔만 바라보며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했다. 자신이 무형독을 사용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어떻게?”

장문위와 옥기룡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태세였다. 자신들도 사부의 입에서 무형독이란 말이 나오는 순간 진기를 운용하자 중독되었음을 알았던 것이다. 그들의 눈에서 분노의 기색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만약 사부가 없는 자리였다면 중의라 할지라도 손을 썼을 터였다. 그러고 보니 이 안에 있는 인물들 모두 무형독에 중독되었으나 내력이 가장 정순하지 못한 궁수유에게서 가장 먼저 중독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천지 #추리무협 #연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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