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친구, 뭔가 알고 있는 건가'

추리무협소설 <천지> 296회

등록 2007.10.25 08:13수정 2007.10.25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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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운중의 시선이 옆으로 돌려졌다. 중의의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을 스쳐 성곤의 왼손을 바라보고는 다시 성곤의 얼굴에 가 멎었다.


“내가 심하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중의는 자네와 나 그리고 자네 제자 모두에게 다른 것도 아닌 무형독을 하독했단 말이네. 왜 그랬다고 생각하는가? 이 친구는 언제나 자네를 두려워했다고 했네. 자네를 죽이려고 했던 것 아닌가?”

“틀린 말은 아니네.”

“더구나 나 또한 죽이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할 수 없네. 아니 우리 모두가 이 친구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모두 죽이려고 생각했단 말이네.”

성곤이 큰 머리를 가로로 흔들며 언성을 높였다. 그러다 문득 성곤은 운중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놀라며 물었다.

“자네…중독증상이 벌써 있는 것인가?”


운중의 얼굴에 불그레한 기운과 함께 미세하나마 청살선이 나타나 있는 것 같았다. 이것은 믿지 못할 일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천하제일인이라고 평가 받는 운중이 벌써 중독증상을 보일 리 없었다. 제자들은 물론 하독한 중의마저도 어쩌면 이미 신화경(神化境)에 달한 그는 만독불침(萬毒不侵)의 신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던 터였다.

“이 친구가 나에게는 좀 심하게 다른 독까지 하독한 모양이네.”


운중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했다. 성곤의 시선이 다시 중의와 운중을 번갈아 오고갔다.

“으음…”

중의가 신음성을 흘렸다. 허리에 박힌 소도의 고통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운중의 말을 시인한 셈이었다.

“그렇군. 내 잔인함에 내 스스로 자책할 필요는 없겠군. 중의 자네는 명의니 잘 알 것이야. 자네는 자네가 사용하던 소도를 영원히 허리에 박고 살아야 할 거야. 만약 빼낸다면 자네는 그 즉시 절명할 테니까….”

알고 있었다. 평생 앉은뱅이로 살아가야 할지도 몰랐다.

“이런데도 내가 너무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아직까지도 참고 있었어야만 했단 말인가? 나는 왜 자네가 참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네.”

성곤의 음성이 더욱 높아졌다. 마치 운중에게 억울하지도 않으냐는 투였다. 운중이 슬쩍 미소를 베어 물었다.

“그것은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없어서라네. 희망이 없어서지. 허나 자네와 같이 또 다른 목적을 가지면 가능한 일이겠지만 말이네.”

운중의 말에 성곤은 내심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 친구는 뭔가 알고 있는 것일까? 자신마저도 중의와 마찬가지로 이 친구의 이목을 피하지 못한 것일까? 성곤은 내심과는 달리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무슨 말인가?”

“자네까지 시침을 떼려고 하지 말게. 물론 자네만큼 나에게 진심으로 대했던 친구도, 그리고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했던 친구도 없었다는 것은 인정하네. 허나 나는 그동안 자네의 매우 미심쩍은 몇 가지 행동에 대해 무척이나 고민했다네.”

“그런가?”

대답에는 반박하는 힘이 없었다. 이미 반쯤 시인한 셈이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맏이가 자네를 위해 나서는 것을 보니 확실해지더군.”

그 말에 장문위가 머리를 푹 숙였다.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것은 무형독에 의한 중독현상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정말 부끄러워서였다.

“무엇 때문인가? 무엇이 자네의 마음에 더러운 욕망을 심어놓게 했는가?”

“나는….”

“그가 황제라도 되면 자네에게 이 중원의 절반이라도 떼어주겠다고 했나?”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날카로움이 배어 있었다. 성곤의 얼굴이 점차 일그러져 갔다. 어차피 밝혀질 일이었지만 막상 밝혀지고 나니 부끄러운 마음과 함께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 때였다. 문이 스르륵 열리며 박수 소리가 들렸다.

짝짝짝!

“역시 보주시구려!”

문 안으로 들어서는 인물은 지금 상황으로는 뜻밖의 인물이었다. 그는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우엑! 왝!”

들어온 인물을 본 운중이 갑자기 핏덩이를 토해냈다. 노화가 치민 것일까? 옆으로 상체를 숙이며 토한 것은 한 번뿐이 아니었다. 검붉은 피를 연거푸 다섯 번이나 토해내고는 힘들게 상체를 세우며 앞에 놓인 천으로 입을 닦았다.

“사부님!”
“자네….”

제자들이 몸을 일으키고 성곤이 미안한 듯 운중의 몸을 부축하려 하자 운중이 고개를 흔들었다.

“결국 자네마저 나를 실망시켰군. 그래도 자네만큼은 나를 비참하게 만들지 않을 것이라 기대했는데….”

성곤의 얼굴에는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허나 운중의 시선은 성곤이 아닌 바로 들어온 자에게 머물러 있었다.

-------------

“허헉!”

운중보의 교두인 탈명화운(奪命花雲) 정이랑(鄭二朗)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교두 네 명이 모두 술래가 되겠다고 자청하고, 노회한 무당과 점창의 인물들은 숨는 자가 되기로 남은 것은 이유가 있어서였다. 하지만 여러 명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것이 술래의 역할이 아니었고, 왜 무당의 인물들이 나서지 않고 뒤로 빠지는지를 좀더 신중하게 생각해야 했다.

물론 뒤늦게 합류했고, 아직까지도 누워 있어야 할 단양수(斷陽手) 마궁효(馬躬效)의 주장 때문이었기도 하지만 다른 교두들로서도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이 노린 인물은 두말 할 나위 없이 바로 백도였다.

처음에는 그들의 의도대로 그리고 너무나 운이 좋게 얼마 움직이지 않아 쉽게 상대의 술래가 된 백도를 찾아낼 수 있었다. 아무리 백도가 강하다고는 하나, 또한 마궁효가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지는 못한다고는 하나 그래도 사대 일의 싸움이었다.

백도로서는 당연히 불리한 싸움이었고, 쉴 사이 없이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숨기고 있던 모든 절기를 다 쏟아낼 수밖에 없었고, 겨우 버틸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는 도망을 친다든가 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생각했을 때, 그의 위기를 벗어나게 해준 사람은 바로 생사판 종문천과 혈녹접 소유향이었다.

그들이 합류되자 상황은 급변했다. 수십 초 지나지 않아 두 명의 교두가 죽음을 당하게 되고 마궁효와 정이랑은 도망을 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냥 도망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불리하게 되면 덫을 쳐놓고 기다리고 있는 무당과 점창의 인물들에게 가기로 했고, 그것은 도망만이 목적이 아니라 유인하는 목적도 있었던 것이다.
#천지 #추리무협 #연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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