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지 않으면 죽는 놀이

추리무협소설 <천지> 297회

등록 2007.10.26 08:37수정 2007.10.26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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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곳에 채 당도하기도 전에 완전치 못한 몸이었던 마궁효가 백도의 공격에 최후를 마치게 되었고 자신만이 홀로 죽을 힘을 다하여 가까스로 이곳에 당도했지만 기대했던 육파일방의 인물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휘이익


세 개의 신형이 곧 바로 정이랑의 뒤를 따라 당도했다.

“이제 도망가기도 지쳤나?”

백도가 싸늘한 어조로 말을 뱉었다. 용서해 줄 마음이 없었다. 어차피 종문천과 소유향이 아니었으면 지금쯤 싸늘하게 시신으로 변했을 사람은 바로 자신이었다. 생사림의 술래잡기는 죽이지 않으면 죽는 놀이였다. 정이랑은 두리번거렸다.

“도와줄 사람을 찾고 있는 모양이네요. 하지만 자신이 몸담고 있는 운중보를 배신한 자를 도와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얼굴에 가득 비웃음을 머금으면서 소유향이 독안에 든 쥐 꼴인 정이랑을 조롱했다. 정이랑의 얼굴이 더욱 구겨지고 있었다. 도대체 이 작자들은 왜 나타나지 않는가? 교두 세 명이 희생되면서까지 이들을 여기까지 유인해 왔는데 왜 손을 쓰지 않는가?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것일까? 아니면 이미 그들도 당한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마음이 초조했다. 허나 이미 품자 형으로 둘러싸인 정이랑에게 퇴로는 없었다. 

정이랑은 소매 속에 손을 넣은 채 자신의 암기를 되는대로 양 손에 나누어 쥐었다. 다시 도망을 가야 한다. 가장 약한 쪽은 어디일까? 당연히 소유향으로 보였다. 그는 더 이상 주위를 두리번거리지 않고는 탄식을 터트렸다.


“나쁜 놈들!”

누구에게 욕을 하는 것일까? 그의 시선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 사람에게 가 있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뒤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급작스럽게 몸을 왼쪽으로 틀면서 소유향을 향해 양손을 떨쳤다.

쏴아아 슈욱

수십 개의 암기가 소유향의 전신을 덮을 듯 쏘아나갔다. 비침(飛針)은 물론 자오정(子午釘)까지 종류도 다양해 날아가는 모양새도 가지가지였다.

“어맛!”

소유향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졌다. 그녀는 정이랑의 갑작스러운 공격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당황하며 짧은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 몸을 비틀며 오른쪽으로 급히 몸을 비틀어 바닥을 굴렀다.

보기는 흉하지만 저 암기를 피할 방도는 오직 그것뿐이었다. 그 순간 원하던 퇴로가 열리자 정이랑이 죽을 힘을 다하여 신형을 날리며 도망치려 했다. 허나 그의 생각은 아주 잘못된 것이었다.

쇄액

그의 움직임을 예상한 백도의 신형은 그가 소유향을 향해 암기를 뿌리는 순간 이미 소유향의 좌측으로 다가들었다. 그런 그에게서 앞뒤 재지 않고 도망가기만 하려는 정이랑의 허리를 베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정확히 백도의 희고 가는 도광이 그의 오른쪽 옆구리를 베고 위로 올라가 그의 가슴으로 빠져나왔다. 

“억!”

정이랑의 단발마는 나직했고, 피분수가 뿜어 나오며 그의 몸이 허공에서 털썩 떨어져 내렸다. 무슨 말인가 하려 했지만 그의 입에서는 더 이상 음성이 새어나오지 않았다. 여전히 그의 원망스러운 시선은 본래 육파일방의 인물들이 숨어 있던 곳을 향하고 있었다.

백도가 도 끝으로 떨어지는 핏방울을 수풀에 문질러 닦아내더니 갈무리했다. 그러고는 죽어가면서도 원망의 눈길을 주었던 바로 그곳을 향해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그러자 그곳에서 보이지는 않지만 약간의 기척이 들렸고 백도는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렸다.

“…”

생사판 종문천과 소유향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 허나 그들 역시 아무 말 없이 잠시 그곳을 바라보더니 몸을 날렸다.

분명 그곳에는 육파일방의 인물들, 정확히 무당과 점창의 인물들이 있었다. 그리고 교두들과 약속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들은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다. 자신 있게 추태감에게 약속을 했지만 이 싸움에 끼어들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쉽게 그들이 이 싸움에 끼어들어 더 이상 얻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오히려 잃을 것뿐이었다. 대충 숫자만 채우고 한 쪽에 숨어있기만 하면 되었다. 만약 술래잡기가 시작되지 않았더라도 싸움판에 끼어들어 흉내만 냈을 터였다.

그들은 교두들과는 처지가 달랐다. 교두들은 이미 운중보를 배신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추태감이나 상만천이 운중보를 장악하지 못하면 그들이 설 곳이 없었다. 허나 육파일방의 인물들은 달랐다. 그들은 돌아갈 곳이 있었다. 충분한 지원도 받고 있었다. 목숨을 걸고 도울 이유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추태감이나 상만천이 운중보를 장악하지 못하면 운중보의 보복이라는 후환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문파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었다. 더구나 이미 추태감이나 상만천이 역모를 꾀하고 있는 이상 동조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그들은 그저 지켜보는 역할로 만족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술래잡기에서 방관자나 구경꾼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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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신에 구룡의 무공과 운중보주의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니 놀랍군.”

진정으로 감탄하는 목소리였다. 이미 진기가 고갈되어 헐떡이는 설중행은 이미 도마 위의 생선과 다를 바 없었다. 설중행은 벌렁 누워 있다가 옥청문 형제의 목소리에 힘겹게 상체를 일으켰다.

“후욱… 아주 적절한 시기를 맞추어 나타나셨구려.”

겉으로 내색을 하지 않고 진기를 끌어 올리려 했지만 진기가 거의 고갈되어 있었다. 혈룡장의 약점은 바로 진기가 많이 소모된다는 점이었으나, 혈룡기를 회복하는 시간도 다른 무공보다 빠른 편이었다.

여하튼 시간이 필요했다. 허나 저들은 결코 자신에게 시간을 주지 않을 터였다. 허나 다행스러운 것은 옥청문과 옥청량이 가지고 있는 의문이 너무 커 당장 손을 쓰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네 놈이 동창의 더러운 비영조에 속해 있었던 것이 맞느냐?”

옥청량이 한 발 나서며 물었다. 이미 초췌한 기색의 설중행이 계속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입술은 메말라 터지고 얼굴색은 파리하게 지쳐있는 모습이었다.

“그렇소. 어쩌다 보니 그곳에 몸담고 있었소.”

정말 다행이었다. 저들이 지독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설중행에게는 행운이라 할 만했다. 말을 늘여야 했다.

“추태감의 명으로 내 형님을 시해한 것도 사실이냐?”

옥청문 형제로서는 가장 궁금한 사항이었다. 말이나 상황으로 보아 추태감의 지시가 분명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직접 이놈에게 확인하고 싶었다.

“추태감의 명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분명 혈간어른을 시해하라고…아니…건덕부근에서 배를 타고 내려오는 인물들을 살해하라는 지시는 받았소. 그곳에 도착하고 우리가 살해해야할 인물이 혈간어른인지 알았으니 말이오.”

그게 그거였다. 이미 죽은 신태감이 모르고 있었다고 전해 들었다. 신태감 말고 비영조를 직접 움직일 수 있는 인물은 바로 추태감뿐이다.

“네놈이 능가라는 작자와 직접 형님을 시해했느냐?”

그 물음에 설중행은 잠시 두 형제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소. 이미 혈간어른이 암습을 당한 상태라 겨우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소.”

설중행은 솔직하게 대답을 하고 있었다. 헌데 그 때였다. 옆에서 지켜만 보고 있던 옥청문이 쏜살같이 설중행에게 달려들며 오른손을 튕겼다. 설중행에게 더 이상 시간을 주면 안 된다는 생각에 혈도를 제압하려 했던 것이다.
#천지 #추리무협 #연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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