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의 풍요로움 속에서 길을 헤매고

[천진난만하게JH, 산티아고 가는 길 13] 로그로뇨에서, 둘째 날

등록 2007.11.26 12:02수정 2007.11.26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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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30일 토요일.
순례 8일째, 0km.
첫 휴식의 날.

아침 5시, 저절로 눈이 떠졌다. C와 언니들을 위한 한국식 아침식사를 약속한 날, 그리고 순례 일주일만에 처음으로 걷지 않는 날이다. 어제 가방에서 꺼내두었던 재료들을 들고 부스스한 모습으로 식당으로 향한다.


손에는 인스턴트 육개장 1봉지와 라면스프, 볶음밥 만드는 가루 등이 들려 있었다. 이미 식당에는 걸을 준비를 마친 부지런한 순례자들이 빵과 카페 등으로 가벼운 식사를 하고 있었고, 나는 덜깬 눈으로 인사를 전한다. 어느새 깨어 식당으로 온 J씨와 언니들의 도움을 받아 밥을 안치고 국을 끓이고 샐러드를 한다.

식탁이 준비되었을 즈음 잠에서 깬 C가 식당으로 왔다. 들어보니 그녀는 다시 걷기로 마음먹었단다. 테이블 가득 차려진 음식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기 위해 둘러앉은 우리들. 이 식사를 마치면 그녀와 S씨, Y언니와 G언니는 다시 길 위에 오를 것이고 나와 J씨는 가방을 둘러메고 호텔을 찾아 움직일 것이다.

생각보다 거나한 한 상이 차려져 조금 걱정이 된다. 스페인 사람들은 아침을 아주 가볍게 먹는다는데, 이렇게 많이 준비했으니, 과연 먹을 수 있을까? 언니들에게도 너무 부담스러운 식사는 아닐까?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 언뜻 비치는 C가 묻는다.

“너희는 원래 아침에 이렇게 많이 먹니?”
“상황에 따라 다른데, 우리 집은 그래. 이렇게 밥에 국에 반찬들을 같이 먹는데, 여기선 만들기 어려우니까 샐러드로만 대신했어.”
“어…, 처음으로 먹어보는 한국식 아침이네. 너무 고마워. 근데 다는 못 먹겠다.”
“괜찮아. 그동안 함께 걸어줘서 정말 고마웠어. 물론 산티아고에서 다시 볼 거지만 말야.”

가슴 한구석이 먹먹한 아침식사 시간이었다. 생각해보니 재미있다. 매일 새벽같이 밥을 하시던 나의 어머니, 언제나 식구들이 다 먹고도 남을 정도로 밥을 지어놓으시던 그녀와 지금 내 모습이 너무나 똑같다.


“차라리 잠을 좀 더 주무시지 왜 그렇게 일찍 일어나셔서 고생을 하세요. 게다가 이렇게 많이 하면 남기만 하는데… 우리 집에 누구 손님 올 일도 없잖아요.”

항상 손 큰 어머니에게 투정부리던 나, 그런 내가 보고 배운 것, 익숙해져버린 것이 바로 어머니의 방식이었다. 떠나는 이들에게 푸지게 밥을 해서 먹이는 것,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행복해 하는 것, 어쩌면 매일 부엌에서 아침을 만드시는 어머니의 마음도 이와 조금은 닮아 있는 것일까?


‘부엔 카미노’를 나누며 함께 서로를 배웅하고, J씨와 나는 숙소를 나와 어제 인포 센터에서 정보를 얻었던 숙소를 찾아가기로 한다. 구 시가지에서 5분 남짓의 거리에 있는 별 하나짜리 호텔이 두 사람에 60유로,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가격이었지만 우선 짐을 풀어두고 싶었다.

나는 침대에 엎드려 잔뜩 챙겨놓은 로그로뇨 정보지들을 끌어안고 공부하듯 오늘 무엇을 할까 계획하고 있었다. 한 시간 남짓을 그렇게 씨름하다, 오늘은 조용히 보내자는 생각에 우선 도서관을 찾고 그 후 미사를 하러 가자고 정했다. J와 저녁식사를 같이 하기로 약속하고 각자 시간을 보낸 후 오후에 숙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a 책의 숲을 거닐다 로그로뇨 시내 도서관에서

책의 숲을 거닐다 로그로뇨 시내 도서관에서 ⓒ JH


스페인에 와서 처음 가 본 도서관은 한국에서 들르던 분위기와 닮고도 또 달랐다. 스페인어 책들이 빼곡한 책장들을 바라보며 정적을 즐겼다. 책장 사이에 덩그러니 자리한 낡았지만 푹신해 보이는 소파가 참 좋아보였다. 아무 책이나 골라서 털썩 자리잡고 앉아 읽다가 또 등 뒤로 드는 볕에 꾸벅꾸벅 졸기도 할 수 있는 그런 곳.

도서관에 컴퓨터들이 있어서, 직원에게 어떻게 쓸 수 있는지를 물었더니 회원증 같은 것이 필요하단다. 나는 딱히 그런 게 없는데 하며 곤란한 표정을 짓자 그쪽도 난감했는지 자리 하나를 내어주며 여기서 이용하라고 한다. 생장피드포르에서 출발하고 8일만에 컴퓨터에 앉아 소식을 적어 내려간다.

우와. 어떻게 내가 지나온 날들을 설명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140km를 걸었고, 각국의 멋진 친구들을 만났고, 스페인 음식을 잔뜩 먹었고, 스페인의 그림 같은 풍경을 스쳐갔고…, 매일 난 놀라온 순간을 만나. 하느님께서 정말 함께하시며 순례 길을 지켜주시는 것 같아. 그래, 다리며 발목이며 어깨는 지금도 아프지만, 괜찮아. 정말 단순한 삶이야. 5시나 6시쯤 깨어서 짐을 싸고 오늘 걸어야 할 길 위에 올라서지. 걷는 동안엔 간식들을 먹고, 7~8시간쯤 후엔 숙소에 도착해. 그리고 침대를 잡고, 샤워하고, 빨래를 해서 널어놓고 낮잠 자고 저녁 먹으러 가. 미사를 하고 숙소로 와서 다음날을 위해 잠들지. 이게 전부야. 이게 바로 내가 여기서 살아가는 방식이야.

꽤 긴 시간 소식을 전하는 글을 적어 올리고, 도서관을 나와 가까운 성당을 향했다. 평소 같으면 썰렁할 성당 주변이 사람들로 복작거렸다. 의자는 꽃으로 장식되어 있고 제대 앞 통로에는 양탄자가 깔려 있었다. 무슨 일일까? 궁금한 눈으로 의자에 앉아 이리저리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니 결혼하는구나! 혼배미사가 있었다. 왠지 지켜보고 싶어서 자리를 뜨지 않고 성당 뒷줄에 앉아 미사를 하고 성체를 받았다.

동화책에서 갓 튀어나온 것 같은 흰 드레스의 신부와 듬직한 신랑, 화려하게 치장하고 축하하러 온 하객들, 전통음악으로 축가를 부르는 사람들, 조용한 식장을 아장아장 뛰어다니며 꺄르르 웃음을 온 성당에 울리는 아기, 하느님 앞에서 영원한 인연을 약속하는 두 사람과 그들이 나누는 반지, 당신들의 용기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요? 당신들의 결심은, 당신들의 사랑은….

성당 안에서의 예식이 끝나고 하객들은 성당 바깥 주위를 에워싸고 폭죽과 쌀 봉지를 들고 신랑 신부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 역시 차마 자리를 뜨지 못하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긴 시간이 흘러 오늘의 주인공들이 나타나자 골목 저 끝에서 불을 당긴 폭죽은 굉음을 내며 타들어갔고, 사람들은 쌀을 한 줌씩 들어 하늘 위로 뿌리며 그들을 축하했다. 언젠가 TV광고에서 보았던 풍경, 마치 눈처럼 흩뿌리던 쌀알과 그 아래로 웃음 짓던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점심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숙소로 되돌아왔다. 오늘 아침 밥을 너무 많이 해 버려 남았던 것을 그릇에 담아 가져온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가방을 뒤져 그릇에 든 밥에 볶음밥 가루를 뿌리고 모셔뒀던 고추장 페이스트를 짜서 달걀 삶은 것과 함께 먹었다.

비행기 기내식에서 나왔던 플라스틱 숟가락, 포크, 나이프, 찻숟가락까지 싸그리몽땅 챙겨온 것은 여행 가운데 정말 잘 한 일 중 하나다. 숟가락은 내가 들고 포크는 J에게 건넸다. 우리는 호텔방 탁자에 조촐한 상을 차려 알아듣지 못하는 스페인 텔레비전을 배경음악 삼아 점심식사를 했다. 어느새 시계는 2시를 넘겨 도시는 시에스타로 잠들고, 게다가 오늘은 토요일, 상점도 구경할 곳들도 일찍 닫는 날이다.

식사를 마치고 J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나는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이름부터 닮았다. 나이도 한 살 차이이다. 머리를 질끈 묶고 동그란 안경을 쓴 얼굴은 항상 웃음이 가득했다. 가장 어렸지만 손재주가 좋아 주방을 맡아서 삼계탕부터 파스타까지 척척 해내는 모습이 좋았다. 게다가 곧 결혼을 하게 될 예비신부였다. 나보다 어린 친구였지만 몇 뼘은 키가 더 큰 어른 같았다.

알고 보니 그녀의 부모님들도 음식점을 하신단다. 나는 우리 어머니께서도 식당을 하신다는 얘기를 하며 그녀에게 느꼈던 친근함을 전했다. 이야기는 술술 풀려나가 어느새 생각지도 않았던 속이야기를 늘어놓게 되었다. 묵묵하게 내 이야기를 듣는 그녀의 얼굴을 통해, 깊은 공감 혹은 뭔지 알 것 같다는 끄덕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9월 결혼을 앞두고 순례길에 올랐다고 했다. 결혼과 학업을 사이에 두고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앞에 두고 불안한 마음인 J는, 과연 이 길에서 어떤 답을 만날까? 에스테야에서 그녀를 처음 만나고 3일째, 우리는 스페인 중소도시의 한 가운데 침대 두 개가 비좁게 놓인 별 하나짜리 호텔방을 나눠 쓰며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해는 뉘엿뉘엿 걸음을 옮기고, 우리는 각자 시에스타가 끝난 도시를 둘러보고 저녁을 같이 먹기 위해 만나기로 했다. J는 내일 버스를 타고 로그로뇨에서 약 60km를 떨어진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 - 우리끼리 닭 두 마리 성당이라고 부르는 곳 -에서 Y언니와 S씨와 합류하기로 했다.

나는 그 때까지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버스를 탈 것인지, 계속 걸을 것인지를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버스를 타게 되든, 걷게 되든, 둘이서 오붓하게 저녁을 할 기회는 앞으로도 흔치 않은지라 우리는 로그로뇨 시내로 나와 괜찮은 식당을 찾기로 했다.

a 로그로뇨에서 첨탑이 높게 올라선 구도시를 뒤로하고

로그로뇨에서 첨탑이 높게 올라선 구도시를 뒤로하고 ⓒ JH


토요일 저녁, 스페인 내에서도 관광지로 유명한 이 작은 도시에는 결혼 피로연 무리며 가족끼리 나온 사람들, 티셔츠를 맞춰 입고 행렬하는 사람들 등으로 가득 찼다. 우리는 거리 이곳저곳을 배회했지만 마땅한 식당 하나를 찾지 못했다.

한 시간 정도를 구경 반 수색 반 겸하다 지쳐 10유로에 메뉴를 한다는 조용한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가게를 지키던 중년의 아저씨는 익숙하지 않은 손놀림으로 테이블을 정돈하고 식기를 놓고, 메뉴를 주문 받았고, J와 나는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죠’ 하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했다.

어수선한 떠들썩함으로 가득 찬 도시에 어둠이 내린다. 통금 없는 첫 밤, 마음만 먹는다면 이 소란스러움에 동참할 수도 있었을 것을…, 나는 지레 겁을 집어먹고 숙소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아마 지영씨도 같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는 이제 깨어나는 스페인의 밤을 뒤로 하고 안전한 보금자리로 돌아왔다.

일주일 내내 구멍가게 같은 상점 하나가 전부, 볼 것도 없는 마을만 지나쳐오며 ‘역시 대도시에 살던 사람은 어쩔 수 없나보다’ 하며 큰 도시가 나오기만을 기다렸고, 사람들이 북적대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넘치는 물건들로 보기만 해도 풍성한 마음이 드는 쇼핑센터를 거닐고 싶었다. 무엇보다 도시의 익명성을 그리워했다.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인사를 건네지 않아도 되고 서로를 공기처럼, 없는 사람처럼 신경 쓰지 않고 지나칠 수 있는 시간이 그리웠다.

그렇게 기대해왔던 대도시에서의 하루 휴식은 막상 닥치고 보니 별게 아니었다. 오히려 불안했다. 이 커다란 도시, 넘치는 사람들, 살 것과 볼 것과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은 도리어 아무것도 할 수 없게끔 만들었다. 잠시 잊고 있었던, 너무나 익숙했던 배회감, 부유감 만이 나를 휘감았다.

내게는 너무나 많은 식당, 너무나 많은 숙소, 너무나 많은 볼거리, 너무나 많은 사람들…. 넘치는 모든 것들이 지금 내게는 오히려 혼란스럽기만 했다. 동네에서 유일한 허름한 식당, 그리고 순례자들로 바글바글한 숙소, 시들시들한 양파와 과자봉지 위로 먼지가 소복히 앉아있을 법한 어두침침한 상점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J와 함께 버스를 탈 것이냐, 홀로 다시 길 위에 오를 것이냐. 오늘 하루 계속되는 선택의 마지막 갈림길이었다.
#산티아고가는길 #스페인 #도보여행 #성지순례 #카미노데산티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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