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64)

― ‘무명의 성찰’, ‘무명의 사람’, ‘무명의 버나드 쇼’ 다듬기

등록 2008.06.26 19:20수정 2008.06.26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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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무명의 구체적이고 살아 있는 성찰

 

..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자기네 신앙을 생활화하고 해방시키는 열쇠를 가지고 생각을 하는 무수한 그리스도 신자 공동체들의 땅속에 묻혀 있는 무명(無名)의 구체적이고 살아 있는 성찰인 것이다 .. <해방신학 입문>(레오나르도 보프/김수복 옮김, 한마당, 1987) 26쪽

 

“자기네 신앙(信仰)을 생활(生活)하고”는 “자기네 믿음으로 살아가고”나 “자기네 믿음을 삶에 펼치고”쯤 되겠군요. ‘무수(無數)한’은 ‘숱한’이나 ‘셀 수 없는’이나 ‘셀 수 없이 많은’으로 고칩니다.

 

 ┌ 무명(無名)

 │  (1) 이름이 없거나 이름을 모름

 │   - 자유의 제단 앞에 몸을 바친 무수한 무명의 의인들의 거룩한 피

 │  (2)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음

 │   - 무명 가수 / 무명의 작곡가

 │

 ├ 무명(無名)의 구체적이고 살아 있는 성찰

 │→ 이름없는 이들이 온몸으로 부대낀 살아 있는 깨달음

 │→ 백성들이 온몸으로 부대낀 살아 있는 깨달음

 └ …

 

보기글에 나온 “구체적이고 살아 있는 성찰”이란 무슨 소리일까 헤아려 봅니다. 좋은 생각, 살가운 믿음, 훌륭한 깨달음이라면, 누구나 그때그때 느끼고 받아들이면서 함께 껴안을 수 있도록 손쉽게 풀어내어 이야기해야지 싶은데요. 이렇게 말하면 어찌 알아들을까요.

 

‘무명’은 으레 토씨 ‘-의’를 뒤에 덧답니다. “무명의 의인들-무명의 작곡가”처럼 쓰이는데, “이름없는 의인들-안 알려진 작곡가”처럼 (1)와 (2)을 나누어서 다듬으면 됩니다. ‘안 알려진’ 말고 ‘덜 알려진-잘 모르는-새내기’란 말을 넣어도 괜찮아요.

 

ㄴ. 무명의 사람들이

 

.. 수많은 무명의 사람들이 가슴속에 품어 온 독립에 대한 의지가 하나로 합류한 민중운동이었다 ..  <한국사입문>(가지무라 히데키(梶村秀樹)/이현무 옮김, 백산서당, 1985) 121쪽

 

“독립에 대(對)한 의지(意志)”라면 “독립을 바라는 마음”일 테지요. “하나로 합류(合流)된”은 겹말입니다. “하나로 모인”이나 “하나로 뭉친”으로 손질합니다.

 

 ┌ 수많은 무명의 사람들

 │

 │→ 이름없는 수많은 사람들

 │→ 수많은 보통사람들

 │→ 수많은 백성들

 └ …

 

이 자리에서는 말뜻 그대로 ‘이름없는’으로 고쳐쓸 수 있습니다. 한편, ‘영웅과 같은 지도자’와 맞서는 뜻으로 쓴 ‘이름없는 수많은 사람들’이라면 “이름없는 사람들”처럼 적기보다는 “여느 사람들”이나 “백성들”로 고쳐 주면 한결 나아요. 생각해 보셔요. 우리들 여느 사람이나 백성은 ‘이름이 없지’ 않잖아요. 영웅처럼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며, 자기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리지 않았을’ 뿐이에요. 자칫, 우리 스스로 깔보거나 얕잡을 수 있는 ‘이름없는’입니다. 세상 온갖 풀과 나무와 새와 짐승이 ‘이름없는’ 님들이 아닌 만큼, 우리들 사람을 가리킬 때에도 ‘이름없는’이라는 말을 함부로 잘못 쓰지 않도록 마음을 기울여 주면 고맙겠습니다.

 

ㄷ. 무명의 버나드 쇼

 

.. 같은 해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한 무명의 버나드 쇼는 에이블링을 자세히 관찰한 후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렸다 .. <말의 귀환>(김정란, 개마고원, 2001) 168쪽

 

“정식(正式)으로 문단(文壇)에 데뷔(debut)한”은 “문단에 고개를 내민”이나 “첫 작품을 내놓은”이나 “비로소 첫선을 보인”쯤으로 손질합니다. “자세(仔細)히 관찰(觀察)한 후(後)”는 “찬찬히 살핀 뒤”나 “꼼꼼히 헤아린 뒤”로 다듬고, “평가(評價)를 내렸다”는 “말을 했다”나 “말했다”로 다듬습니다.

 

 ┌ 무명의 버나드 쇼

 │

 │→ 풋내기 버나드 쇼

 │→ 새내기 버나드 쇼

 │→ 아직 덜 알려진 버나드 쇼

 │→ 아직 이름이 안 난 버나드 쇼

 └ …

 

이제 막 작품 하나 내놓은 사람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습니다. 때에 따라서 반짝이는 별이 되기도 하지만, 아직은 ‘이름이 덜 알려진’ 사람입니다. 이름이 덜 알려진 사람, 또는 이제 막 작품을 내놓은 사람은 ‘새내기’입니다. 새내기이면서 조금 서툴다면 ‘풋내기’라 할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2008.06.26 19:20ⓒ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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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씨 ‘-의’ #우리말 #우리 말 #-의 #무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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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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