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길에 올랐으나 기쁘지 않았다

[역사소설 소현세자 66] 세자와 함께 고국에 가고 싶었다

등록 2008.06.27 16:25수정 2008.06.27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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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산. 북한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 이정근


한반도의 등허리 백두대간 추가령에서 갈라진 고산준령이 서해바다를 향하여 뻗어 내린 산줄기가 있다. 백암산과 적근산을 거침없이 내달리던 백두산의 정기가 광덕과 백운을 제치고 호흡을 가다듬는 곳이 운악산이다. 조선 5악 중의 하나인 운악산에서 구름과 노닐던 백두산 정기에게 고민이 생겼다.

해는 서산에 기우는데 어느 길을 택해야 어둡기 전에 서해에 닿을 수 있을까? 산경론자들은 죽엽산으로 건너 뛴 백두산 정기가 도봉을 발판삼아 삼각산에 오르고 임진강변 장명산에서 일몰을 맞았다고 말한다. 이름 하여 한북정맥이다.


술사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운악산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튼 백두산 정기가 유명산을 지나 운길산에 닿으니 목이 말랐다. 능내리에 내려온 혼이 남한강 물을 마시고 원기 충전하여 예봉산을 거쳐 불암과 수락을 지나 사패산을 섬돌삼아 단숨에 삼각산에 올랐다는 것이다. 삼각산에서 밤을 맞은 백두산 정기가 잠자리를 찾아 내려온 곳이 오늘날 경복궁 자리라는 것이다.

백악산 아래에 나라의 터전을 마련한 조선의 건국자들은 동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는 백악산에 항상 마음 조렸다. 정(正)이 바로 서지 못하는 풍토. 장자승계가 이루어 지지 않은 왕통. 왕조 국가에서 장자는 법통이다. 법통이 바로 서지 못하면 피를 부른다. 이에 그 불길함을 극복하고자 태종 이방원이 창건한 궁이 창덕궁이다. 하지만 창덕궁은 이궁일 뿐, 법궁은 경복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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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산. 백악산 표지석. ⓒ 이정근


경복궁의 주산이 백악이라면 창덕궁과 창경궁을 아우르는 동궐의 주산은 응봉이다. 백악의 날카로움이 권위와 남성을 상징한다면 응봉의 부드러움은 음과 여성을 뜻한다.

성종 이후, 조선 왕들이 창덕궁을 법궁으로 사용하면서 궁궐에 치맛바람이 거셌다. 창덕궁 후원이 응봉과 맞닿아 있는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인조는 아직도 환자다. 침을 놓고 있던 이형익을 소원 조씨가 불러냈다.

"전하의 환우는 어떠한가?"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으면 후원 산책도 가능하실 것입니다."


"용태가 호전되었다니 이보다 더한 다행이 없겠구나. 허나, 머잖아 세자와 함께 사신이 들어온다. 사신이 돌아갈 때까지는 전하가 누어있어도 안되고 걸어 다녀서도 안 된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그럼 어떻게…?"
이형익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임금의 병세 수위를 조절하라

"이런 아둔한 사람을 봤나. 수위를 조절하란 말이닷."
날카로운 목소리가 후궁전을 흔들었다. 그날 밤, 희정당을 찾은 소원 조씨는 인조의 품속을 파고들었다.

"전하! 심양에 있는 세자가 대홍망룡의(大紅蟒龍衣)를 입었다 하옵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황제가 베푼 송별연에 참석한 세자가 국왕의 장복을 입었다 하옵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시오. 용장군이 입어라 하는 것을 세자가 거절했다 들었소."
"아니옵니다. 전하! 용골대의 강요를 한두 번 뿌리치다가 결국에는 입었다 합니다."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던 소원이 더 깊은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인조는 빈객이 올린 장계를 보고 세자의 의젓함에 흐뭇했었다. 그런데 소원의 얘기를 들으니 의구심이 들었다.

"세자 휘하에 있는 신득연이 거짓 치계를 올렸단 말인가?"

의심은 점점 확신으로 짙어지며 마음이 흔들렸다. 멀리 있는 빈객의 보고보다도 가까이 있는 소원의 말이 참인 것 같았다. 이 때 인조의 가슴에 머물던 소원의 손이 빨라지는 인조의 맥박을 감지했다. 그와 동시에 소원의 손이 아래로 움직여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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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정. 창덕궁 후원에는 군왕의 여흥을 위한 정자가 많이 있다. ⓒ 이정근


군주는 참언(讖言)과 직언을 가려들을 수 있는 소양을 갖추어야 하는데 인조에게는 그것이 부족했다. 선대왕들은 세자시절부터 대학연의를 공부했다. 대학연의는 역대 왕들이 탐독한 제왕학 교과서다. 인조는 반정으로 왕위에 올랐고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라는 미증유의 환란을 겪으며 대학연의를 접할 겨를이 없었다.

원손이 하직 인사를 드리러 희정당을 찾았다. 병석에 누어있던 인조가 자리에 앉으며 원손을 맞이했다.

"할바마마!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몸 성히 잘 다녀 오거라."
"병환에 계시는 할바마마를 두고 소손 혼자 아바마마를 만나러 가는 것이 송구할 따름입니다."

원손이 큰 절을 올렸다. 석철은 무엇 때문에 자신이 심양에 가는지 모른다. 그저 엄마가 거기에 있고 엄마가 있는 곳에 간다는 것이 좋을 뿐이다. 더욱이 자신이 도착하면 아버지 소현이 한성으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은 더더욱 몰랐다.

"할마마마도 강녕히 계십시오."

곁에 있던 소원 조씨에게도 큰 절을 올렸다. 석철은 중전이 무엇이고 후궁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그저 할바마마와 늘 같이 있고 내인들이 할마마마라 부르라 하기에 부를 뿐이다.

"잘 다녀오십시오. 원손!"

소원이 눈을 내리깔며 화답했다. 이러한 할머니에 의해 석철이 죽을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아바마마! 다녀오겠습니다."

인평대군이 인조에게 큰 절을 올렸다.

"원손을 모시고 잘 다녀오도록 하라."

원손 석철은 다섯 살이고 인평대군은 스무 살 성인이다. 장가도 들었다. 사적으로는 숙질간이지만 종통으로는 원손의 신하가 된다. 원손은 왕위 계승 서열 2위가 되기 때문이다. 명나라 건국초기. 주원장의 아들 의문태자가 병사하자 황태자의 아들 혜제가 황태손에 책봉되어 건문제로 등극했다. 이러한 예법을 따르는 조선은 원손이 아직 책봉되지 않았지만 그에 준하는 예우를 법통으로 생각했다.

하직 인사를 마친 원손 일행이 북행길에 올랐다. 말을 탄 숙위군 별감이 앞장서고 원손이 탄 가마가 따랐다. 뒤이어 인평대군의 가마가 따르고 익위사 관원과 내인들은 걸었다. 일행 30여명은 심양을 향하여 길을 재촉했다. 원손이 심양으로 떠난 이튿날. 직강 조한영이 상소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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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정축하성 이후에도 조선 사대부들은 남한산성과 강화도를 최후의 보루로 생각했다. ⓒ 이정근



"원손이 이미 길을 떠났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국경을 벗어나기 전까지는 그래도 잘 대처할 수 있는 방도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군신 모두가 강화에 들어가 대장을 선발한 다음 그 대장들로 하여금 남한산성과 강화도에 주둔케 성세를 삼으소서. 그러면 적이 다시 오더라도 우리가 어찌 저들만 못하겠습니까.

쳐들어오는 군사가 적으면 우리를 해치지 못할 것이고 크게 군사를 일으키자면 아마도 명나라가 배후를 도모하지나 않을까 두려워한 나머지 저들이 필시 진퇴유곡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면 항우가 태공과 여후를 돌려보낸 것처럼 강화를 요청할 것이니 빈궁과 대군도 돌아올 수 있고 치욕도 설욕할 수 있으며 원수도 갚게 되어 나라를 중흥한 업적이 선왕보다도 빛나게 될 것입니다."-<인조실록>

꿈이 있으면 희망이 있다고 했다. 희망은 오늘의 절망을 극복할 수 있는 자양분이다. 허나, 허망한 꿈은 낙망을 가져올 뿐이다. 심양으로 떠난 석철은 꿈에도 그리운 엄마를 만나볼 꿈이 있다. 가는 도중 불의의 사고를 당하여 무산될 수도 있으나 가능성이 있는 꿈이다. 그래서 꿈을 안고 가벼운 마음으로 북행길에 올랐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일전을 불사하자.’고 생각하고 있었다. 조선 사대부들은 아직도 명나라의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세자와 함께 고국에 가고 싶었다

정월이 지났으나 아직도 매서운 바람이 옷깃을 스치는 이른 아침. 세자관 관원들이 부산하다. 50여명의 일행이 먼 길을 떠나야 하니 이것저것 챙길 것이 많다. 황제가 내려준 선물은 물론 대 식구가 먹고 써야할 식량과 일용잡화를 챙겨야 하는 것이 급선무다. 수레에 쌀가마를 싣는 노복들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세자가 귀국 한다니 자신들이 고국에 돌아가는 것보다 기뻤다.

세자를 호종하여 고국에 돌아가는 관원들도 덩달아 신바람이 났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부모형제와 처자를 만날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일행에 포함되지 않은 관원들은 시무룩했다. 그렇다고 내색할 수 도 없다. 대군과 빈궁을 모시고 세자관을 지켜야 할 막중한 임무가 있지 않은가. 가지 못하는 관원들은 세자를 호종하여 고국에 돌아가는 관원들에게 부모님과 처자에게 보내는 안부 서찰을 부탁했다.

"빈궁! 다녀오리다."

다른 사람들에겐 평범하게 들렸으나 강빈의 귀에는 떨리는 느낌으로 들렸다. 강빈이 세자를 바라보았다. 강빈의 눈이 이슬에 젖어서 일까? 세자의 눈망울도 젖어 있는 것만 같았다. 소현은 강빈을 동반하고 싶었다. 하지만 혼자가야 한다. 빈궁을 혼자 두고 떠나는 것이 가슴 아팠지만 그 보다 더한 슬픔은 자기 자신의 일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 진한 아픔으로 다가왔다.

"강건히 잘 다녀오십시오."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썼으나 강빈의 눈가에는 이슬이 맺혔다. '나도 가고 싶다'는 말이 목울대를 넘어왔으나 입 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정말 가고 싶었다. 낯선 이국땅에서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하늘같은 지아비가 있었기 때문이다. 소현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소현 #강빈 #원손 #대학연의 #세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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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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