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 더럽히는 우리 삶 (42) 오리엔테이션

[우리 말에 마음쓰기 377] '덤핑'과 '덤-싸구려-헐값' 사이에서

등록 2008.07.19 15:04수정 2008.07.19 15:04
0
원고료로 응원

ㄱ. 덤핑(dumping)

 

.. 이제, 우리 사진인들은 더 이상 덤핑인생을 살지 말아야 한다 ..  《이명동-사진은 사진이어야 한다》(사진예술사,1999) 391쪽

 

'더 이상(以上)'은 '더는'으로 다듬고, "인생(人生)을 살지 말아야"는 "살지 말아야"나 "삶을 꾸리지"로 다듬어 줍니다.

 

 ┌ 덤핑(dumping)

 │   (1) 채산을 무시한 싼 가격으로 상품을 파는 일

 │     ‘헐값 판매’, ‘헐값 팔기’, ‘막 팔기’로 순화

 │    - 덤핑 판매 / 그 업체는 재고가 많이 쌓여 물건을 덤핑으로 넘겼다

 │   (2) 국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하여 국내 판매 가격이나 생산비보다 싼

 │       가격으로 상품을 수출하는 일.

 │    - 덤핑 판정을 받다 / 외국으로 수출하던 자동차가 덤핑 혐의를 받고 있다

 │

 ├ 덤핑인생을 살지 말아야 한다

 │→ 싸구려 삶을 살지 말아야 한다

 │→ 싸구려로(헐값으로) 살지 말아야 한다

 │→ 값싸게 살지 말아야 한다

 │→ 덤처럼 살지 말아야 한다

 └ …

 

끼워 주는 선물처럼 살고 싶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덤처럼 얹어지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모두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제 입에 풀칠하기 힘겹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 제 길을 못 걷고 이리 끼워지고 저리 휘둘리게 됩니다. 제 몸값을 있는 그대로 받지 못하는 가운데 자꾸자꾸 제 몸값을 깎다가, 어느새 싸구려로 이리 팔리고 저리 팔리게 됩니다.

 

 ┌ 덤핑 판매 → 헐값 팔기

 ├ 물건을 덤핑으로 넘겼다 → 물건을 싸구려로 넘겼다

 └ 덤핑 판정을 받다 → 너무 싸게 팔았다는 소리를 듣다

 

그러나, 아무리 제 삶이 힘겹다고 하여도, 제 밥벌이 때문에 제 몸값을 마구 깎아서 돈벌이를 하게 되면, 자기 뒤를 잇는 사람들은 고스란히 괴로움을 물려받습니다. 싸워서 모두가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어야지, 지금 내 밥그릇 때문에 비정규직으로 이웃 일꾼이 쫓겨나거나 밀려날 때 팔짱을 끼고 있다면, 이 몫은 고스란히 자기한테나, 또는 자기 딸아들한테나 이어집니다.

 

받아야 할 값을 제대로 받지 않고 싸게만 팔면, 이웃 가게도 똑같이 더 싸게 팔려고 나설 수밖에 없고, 이렇게 되면 어느 누구도 못 살고 모두 다 죽게 됩니다.

 

 ┌ 덤핑인생

 │

 │→ 싸구려 삶

 │→ 헐값 삶

 │→ 마구잡이 삶

 │→ 막 굴리는 삶

 └ …

 

자기 삶을 사랑하는 가운데 이웃 삶을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일을 아끼는 가운데 이웃 일을 아껴야 합니다. 자기 몸을 돌보는 가운데 이웃 몸을 돌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따로따로가 아닙니다. 한 동아리 한 마을 한 나라 한 삶입니다.

 

 

ㄴ. 오리엔테이션(orientation)

 

.. 캠프 개회식 및 오리엔테이션 ..  《고래가 숨쉬는 도서관》 2006년 여름호 27쪽

 

잠깐 대학교에 몸담았을 때, '새터'라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나중에 이 이름이 가리키는 행사를 알았는데, '새내기 새로 배움터'라는 이름으로 이제 막 대학교에 들어온 후배들한테 학교에서 지내는 여러 가지를 알려주는 자리였습니다. 처음에는 'OT(오리엔테이션을 줄인 말)'라는 말을 흔히들 썼다가 '새터'라는 말로 금세 옮겨 갔고, 나중에는 다시 '오티'로 돌아갔지 싶어요. 참 잘 지은 말이며, 많은 이들이 좋은 이름이라며 반겨 했지만, 학생회가 바뀌고 새로 들어오는 학생도 나날이 바뀌는 가운데, 예전에 쓰던 좋은 이름도 어느 결엔가 사라지더군요.

 

 ┌ 오리엔테이션(orientation) : 신입 사원이나 신입생 등 새로운 환경에 놓인

 │   사람들에 대한 환경 적응을 위한 교육. '안내', '안내 교육', '예비

 │   교육'으로 순화

 │   -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는 학교나 학업 과정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가

 │

 └ 새내기 새로 배움터 / 배움마당

 

'새내기 새로 배움터'라는 말이 좀 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새터'로 줄여서 씁니다. '새로 배움터'라고도 할 수 있고 '배움마당'처럼 써 볼 수 있습니다. 어떤 행사를 치르는 쪽에서 이것저것 알릴 것들만 이야기한다면 '알림마당'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어느 말을 쓰든, 또 어떤 새말을 빚어내어 쓰든, 우리 삶에 곧바로 와닿을 수 있는 쉬운 우리 말로 써야 좋습니다.

 

"캠프 개회식 및 오리엔테이션"은 초등학교 아이들이 함께할 수 있는 '독서캠프'에서 벌이는 맨 첫 시간 이름이라고 합니다. 뭐, 요새는 '영어캠프'니 무슨 캠프니 하여 '캠프'를 서양말로 여기는 아이들도 얼마 없을지 모르겠어요. 그러니 '오리엔테이션'이라는 말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는지 모르고, 나중에는 '오티'라고 줄여 말하는 버릇까지 들일 수 있으며, 이 아이들이 대학교에 들어간다고 해도, 또는 어떤 회사에 들어간다고 해도 똑같은 말만 되풀이할는지 모릅니다.

 

다른 자리라면 모르겠지만, 아이들한테 책다운 책 하나 읽히려는 마음에서 벌이는 ‘책읽기 잔치(독서캠프)’라 한다면, 이런 잔치판, 어우러짐판, 놀이마당에서 쓰는 말은 차근차근 헤아리고 살피고 보듬고 토닥거리고 돌아보아야지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2008.07.19 15:04ⓒ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영어 #우리말 #우리 말 #외국어 #서양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2. 2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3. 3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4. 4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5. 5 "이러다 임오군란 일어나겠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 "이러다 임오군란 일어나겠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