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마디 한자말 털기 (46) 심하다甚 3

[우리 말에 마음쓰기 429] '심하게 무너집니다', '심한 더위' 다듬기

등록 2008.09.22 11:25수정 2008.09.22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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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심하게 무너집니다

 

.. 착한 아이일수록 약에 깊이 빠져들고 심하게 무너집니다 ..  <미즈타니 오사무/김현희 옮김-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에이지21,2005) 58쪽

 

'선(善)한'이라 안 하고 '착한'이라 하니 반갑습니다. '심취(心醉)하고'라 하지 않으며 '깊이 빠져들고'라 적은 대목도 반갑습니다.

 

 ┌ 심하게 무너집니다

 │

 │→ 크게 무너집니다

 │→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집니다

 │→ 그대로 무너집니다

 │→ 하염없이 무너집니다

 └ …

 

우리 사회를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사회 얼거리나 교육 틀거리나 문화 짜임새나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사람들 마음을 억누르고 몸을 짓누르며 말을 밟아누릅니다. 느긋하게 거닐 거님길이 마련된 곳이 없고, 시골길은 아예 걸어다닐 수조차 없이 길섶이 없는 한편, 자전거길이라고 닦아 놓을 때는 거님길을 반으로 뚝 잘라서 돌만 새로 깔고 그칩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크도록 가르치는 학교가 아니라 시험성적 높이 뽑도록 서로 겨루도록 하는 학교입니다. 입시지옥인 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만, 교사와 부모와 학생 스스로 뜯어고치지 않습니다.

 

어쩌면, 사회 문제는 사회가 일으킨 문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쌓아서 이룬 문제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우리들 말과 글도 우리 스스로 어지럽히는 데다가, 우리 스스로 깎아내리는 데다가, 우리 스스로 무너뜨리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 스스로 좀더 나은 말을 쓰려는 마음이 없고, 우리 스스로 한결 아름다이 북돋우려는 생각이 없으며, 우리 나름대로 고이 돌보고 가꾸려는 넋이나 얼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마음놓고 뛰어놀 터전과 골목과 마당을 없애는 어른이기에, 아이들이 즐겁게 주고받으면서 마음닦이를 할 만한 말과 글을 가꾸지 못하는 어른이라고 느낍니다. 아이들이 싱그럽게 자라고 서로를 돕고 따뜻이 감싸도록 하는 학교 문화를 이루려고 하지 않는 어른이기에, 아이들이 말을 배우며 삶을 배우고 말을 익히며 이웃과 세상을 익히도록 이끌지 못하는 어른이라고 느낍니다.

 

ㄴ. 여름의 심한 더위

 

.. 여름의 심한 더위가 골짜기를 덮치기 전에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  <디오도러 크로버/김문해 옮김-마지막 인디언>(동서문화사,1982) 161쪽

 

"덮치기 전(前)에"는 "덮치기 앞서"로 다듬습니다. '영면(永眠)'이나 '운명(殞命)'이나 '별세(別世)' 같은 말을 쓰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라 적은 대목이 반갑습니다.

 

 ┌ 여름의 심한 더위가

 │

 │→ 여름날 모진 더위가

 │→ 여름날 끔찍한 더위가

 │→ 여름날 푹푹 찌는 더위가

 │→ 무더운 여름이

 │→ 여름 무더위가

 └ …

 

여름은 덥기 마련입니다만, 지나치게 덥다고 하면 "모진 더위"나 "끔찍한 더위"라고 할 만합니다. 이와 같은 모진 더위는 '무더위'라고도 합니다. 또는 "푹푹 찌는 더위"나 "숨막히는 더위"이곤 합니다. 너무 더우면 못살겠다고 느끼기도 하는데, "괴로운 무더위"나 "기나긴 무더위"나 '불볕더위'나 '불더위'로 가리켜 보아도 괜찮습니다.

 

ㄷ. 얼마나 심했는지

 

.. "오이와 씨가 화내실 거야." 하고 말했을 정도이니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이 가실 줄로 믿습니다 ..  <미우라 아야코/박기동 옮김-여인의 사연들>(부림출판사,1984) 21쪽

 

"말했을 정도(程度)이니"는 "말했으니"나 "말했던 만큼"으로 다듬습니다. "짐작(斟酌)이 가실"은 "헤아리실"이나 "생각해 보실"로 다듬어 줍니다.

 

 ┌ 얼마나 심했는지

 │

 │→ 얼마나 끔찍했는지

 │→ 얼마나 대단했는지

 └ …

 

글쓴이는 얼굴 반쪽이 도깨비처럼 보일 만큼 부어올랐다고 합니다. 몹쓸 병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모습이라 한다면, 보는 이들한테 '끔찍하다'고 느껴지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그리고, 얼굴 반쪽이 부어올랐으니, 아무리 몹쓸 병이라지만 '대단하게' 부어올랐군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8.09.22 11:25ⓒ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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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마디 한자말 #한자 #우리말 #우리 말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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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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