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탉 치어 죽이면 달걀 값도 계산하라?

[동티모르 여행기①] 수도 딜리에 도착

등록 2008.10.23 14:43수정 2008.11.27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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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볕 때문에 병아리들과 함께 그늘로 피한 암탉. 동티모르에선 닭, 돼지, 개 등 대부분 가축을 풀어놓고 키운다.
햇볕 때문에 병아리들과 함께 그늘로 피한 암탉. 동티모르에선 닭, 돼지, 개 등 대부분 가축을 풀어놓고 키운다.오마이뉴스 조경국

 잠시 촬영을 위해 손 위에 올려놓은 병아리. 동티모르의 닭들은 조금 크기가 작을 뿐 우리나라 토종닭과 생김새가 비슷하다.
잠시 촬영을 위해 손 위에 올려놓은 병아리. 동티모르의 닭들은 조금 크기가 작을 뿐 우리나라 토종닭과 생김새가 비슷하다.조경국

동티모르에서 자동차로 도로를 달리다 보면 온갖 동물들이 길을 건너느라 분주하다. 개, 고양이는 말할 것도 없고 물소·말·염소·돼지·닭들까지도 겁없이 길을 건넌다. 혼자만 건너는 것이 아니라 새끼들까지 달고 간다.

자동차가 경적을 울리면 깜짝 놀란 동물들, 오던 길을 되돌아가기도 하고 가던 길을 서둘러 가기도 한다. 개 한 마리가 길 한가운데 길게 드러누웠다가 경적을 울리자 귀찮다는 듯이 천천히 일어나 어슬렁거리면서 비킨 적도 있다.


동티모르에서 겁없이 길을 건너던 암탉이 차에 치여 죽이면 어떻게 될까? 암탉이 앞으로 낳을 달걀까지 계산해서 배상을 해야 한단다. 누군가는 억지스러운 주장이라고 했지만 그게 맞는 계산법이 아닐까? 암탉은 지속적으로 알을 낳을 가능성이 높지 않은가.

이런 경우 우리나라는 어떻게 변상을 하나 궁금해졌다. 생각을 굴리다가 혼자 웃고 말았다. 우리나라에서 알을 낳는 암탉은 죄다 양계장에 있지 않나. 양계장에 갇혀서 세상 구경은커녕 계사를 벗어나지 못한 채 일생을 마치는 것이 우리나라 암탉의 일생이 아닌가 말이다.

 새끼들에게 젖을 주고 있는 어미 돼지. 닭들과 마찬가지로 돼지들도 자유로운 것은 마찬가지. 아무데서나 먹고 자고 젖을 준다.
새끼들에게 젖을 주고 있는 어미 돼지. 닭들과 마찬가지로 돼지들도 자유로운 것은 마찬가지. 아무데서나 먹고 자고 젖을 준다.조경국


 "나 니 엄마 아니라니까~" 어미개의 색이 강아지와 완전히 다르다. 다른 개가 낳은 새끼를 거둬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동티모르에선 젖을 물리고 있는 동물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어린 시절 시골 모습을 보는 듯.
"나 니 엄마 아니라니까~" 어미개의 색이 강아지와 완전히 다르다. 다른 개가 낳은 새끼를 거둬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동티모르에선 젖을 물리고 있는 동물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어린 시절 시골 모습을 보는 듯.조경국

동티모르 암탉과 우리나라 암탉, 뭐가 다를까

우리나라에서 암탉이 제가 낳은 병아리들을 이끌고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를 건널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런 면에서 보면 동티모르의 암탉은 행복하다고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제가 낳은 새끼를 제가 건사하면서 어디든 돌아다닐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암탉이 낳은 달걀, 당연히 유정란이다.


지난 5일부터 15일까지 10박11일간 동티모르를 여행했다. 이 여행에는 조경국 기자가 사진기자로 동행했다. 여행은 즐거운 것이나 동티모르를 돌아다니는 동안 마음은 내내 무거웠다. 열악한 도로 사정과 툭하면 끊기는 전기는 부차적인 이유다. 동티모르 사람들의 밝은 표정과 대비되는 암울한 현실이 자꾸만 마음에 무거운 추를 달게 했던 것이다.

일정은 10박 11일이었으나 동티모르의 수도 딜리까지 가는 직항로가 없기 때문에 발리를 경유해서 오고가느라 3일을 까먹었다. 동티모르에서 8박을 했다. 주로 딜리에 있었으나 동쪽 끄트머리의 뚜뚜알라와 남쪽의 수아이, 서쪽의 리퀴사에도 다녀왔다. 뚜뚜알라 가는 길에는 상록수부대가 주둔했다는 로스팔로스에 들러서 그 흔적을 확인하기도 했다.


렌트한 차량으로 이동을 하면서 여행을 다녔기 때문에 주마간산이 아닌 주차간산(走車看山)이 될 수밖에 없었다. 차량이 없다면 동티모르에서는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만 보고 온 것은 아니다. 가급적이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것 역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을 터. 여행자의 눈에 비친 것들은 아무리 동티모르에 관한 기초지식을 습득했다 하더라도 인상비평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로고스리소시스의 전흥수 고문과 EPC의 장근호 이사가 동티모르를 여행하는 동안 안내를 해주었다. 덕분에 동티모르의 구석구석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지면을 빌어서 감사드린다.

 이단옆차기(?)를 날리는 수탉. 동티모르 사람들은 투계를 즐긴다. 동티모르에서 묶여 있는 가축은 거의 수탉이 유일한데, 투계를 위해 '특별관리'하기 때문이다. 장터에 가면 수탉을 들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단옆차기(?)를 날리는 수탉. 동티모르 사람들은 투계를 즐긴다. 동티모르에서 묶여 있는 가축은 거의 수탉이 유일한데, 투계를 위해 '특별관리'하기 때문이다. 장터에 가면 수탉을 들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조경국

 동티모르 사람들에게 투계는 인기있는 오락거리다. 투계를 하기 위해 상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수탉의 발목에 도망가지 못하도록 줄을 묶어둔 것이 보인다.
동티모르 사람들에게 투계는 인기있는 오락거리다. 투계를 하기 위해 상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수탉의 발목에 도망가지 못하도록 줄을 묶어둔 것이 보인다. 조경국

태권도 전수받은 닭, 이단 옆차기를 날리다

암탉 이야기로 시작한 글, 닭 이야기로 이어가고자 한다. 동티모르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닭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나 어렸을 때, 수탉들은 새벽에 통이 트는 것을 알린다고 했는데 이 나라의 수탉들은 시간 개념이 없는지 내킬 때마다 울어 젖힌다.

동티모르에서는 닭싸움이 유명하다고 했으나, 본격적으로 닭싸움이 열리는 곳은 결국 가지 못했다. 진짜로 닭싸움이 열리고 있는 것인지조차 확인하지 못했다. 딜리 시내의 시장에서 닭싸움이 열리는 곳을 찾았으나 없었다. 대신 이른 아침에 일어나 난민촌을 찾아가다가 수탉 두 마리가 싸우는 것을 봤다.

난민촌 텐트 앞에서 웃옷을 벗어젖힌 두 남자가 수탉 한 마리씩을 껴안고 있다가 싸움을 붙인 것이다. 지나가던 우리가 카메라를 들이대자 두 남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닭싸움을 시켰다. 두 마리, 윤기가 흐르는 목덜미 털을 곧추세우면서 아주 맹렬하게 싸움을 해댔다.

어쭈, 이 녀석이 이단 옆차기까지. 혹시 상록수부대가 주둔할 때 녀석들에게 태권도를 전수한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기세가 대단했다.

동티모르에서 본 닭싸움은 이것이 전부였다. 대신 닭들은 엄청나게 많이 봤다. 딜리 시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집에서 닭을 키우는 것 같았다. 돌아다니다 보면 병아리를 주렁주렁 매달고 모이를 찾아다니는 암탉을 많이 볼 수 있다. 뚜뚜알라 가는 길에는 호젓한 산길에서 수탉과 단둘이 데이트 중인 암탉도 봤다.

 투계를 위해 수탉을 장터에 들고 나온 남자.
투계를 위해 수탉을 장터에 들고 나온 남자. 조경국

시장에 가면 발목을 묶인 채 무료하게 목청을 돋워 울거나 하릴없이 왔다 갔다 하는 수탉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팔려고 내놓은 것 같기는 한데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그렇다고 닭싸움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간 다음에 닭싸움을 하는 건가?

아, 그러고 보니 아이뚜뚜의 시장에서 본 광경이 떠오른다. 열 살 남짓한 아이가 제법 큼직한 돌을 들고 닭대가리를 후려치고 있었다.

하지만 겨냥을 잘못했는지 빗나갔다. 그러자 옆에 서있던 아버지처럼 보이는 남자가 발로 닭을 사정없이 걷어찼다. 닭이 푹 쓰러지자 남자는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아이를 보더니 자루 안에 닭을 쑤셔 넣었다. 아마도 이 닭은 식용이었나 보다.

닭은 많이 봤으나 닭장은 못 봤다. 제멋대로 여기저기 쏘다니면서 알아서 먹고 사는 게 이 나라 닭들의 생존법인 것 같았다. 모이를 주는 것도 못 봤으니까.

그렇다고 주인이 없다고 생각하면 절대로 안 된다. 하다못해 산에서 자생적으로 자라는 커피나무 하나까지도 임자가 따로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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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 행사에 모인 동티모르 사람들. 오랜 기간동안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동티모르는 국민들의 98%가 가톨릭 교회에 나간다.
가톨릭 행사에 모인 동티모르 사람들. 오랜 기간동안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동티모르는 국민들의 98%가 가톨릭 교회에 나간다.조경국

동티모르는 1524년부터 1975년 독립할 때까지 포르투갈 식민지였다. 독립을 하자마자 인도네시아의 침공을 받아 인도네시아에 강제로 편입되었다가 2002년에 독립했다. 독립한 뒤 내전으로 10만 명이 넘는 난민이 발생했고, 우리나라에서는 1999년 평화유지군을 파견하기도 했다.

현재 세계 44개국에서 파견된 유엔경찰 3천여 명과 호주 뉴질랜드 연합군 1천여 명이 주둔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6명의 경찰이 파견된 상황이라고.

면적은 1만4609㎢로 우리나라의 강원도만한 크기이며 인구는 100만 명(2007년 통계)이 조금 넘는다. 기후는 열대와 아열대 기후의 중간 정도, 1년 내내 무더운 날씨가 계속된다. 건기(5월~10월)와 우기(11월~4월)로 나뉘어져 있는데 10월은 건기의 끝 무렵이라 무척 후텁지근하다.

주 생산품은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커피. 100% 유기농이다. 산길을 달리다 보면 길옆에 서 있는 커피나무들을 볼 수 있다. 산에서 자생적으로 자라기 때문에 원조 그대로라고 한다. 티모르 커피의 40%를 스타벅스에서 사들이고 있다고.

석유와 천연가스 등의 지하자원이 상당히 많이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주로 사용하는 언어는 테툼어. 인도네시아어도 사용하고 있다. 영어를 인구의 20% 정도가 사용한다는 자료를 봤는데 실제로 영어 사용자는 별로 많지 않았다.

종교는 국민의 98%가 가톨릭. 1인당 GNP는 440달러 정도. 아시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라고 한다.

현재 대통령은 라모스 호르따이며, 사나나 구스마오 총리가 실질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0월 5일부터 15일까지 10박 11일동안 동티모르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덧붙이는 글 지난 10월 5일부터 15일까지 10박 11일동안 동티모르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동티모르 #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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