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m' 예수상은 딜리시 해변 쪽으로 가면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조경국
해안도로를 따라 십여 분을 달리다보면 산길이 나타난다. 고불고불하고 경사가 급한 산길을 따라 다시 십여 분을 올라가니 예수상이 보인다. 예수상까지 가는 길은 계단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계단을 세어보니 730개쯤 된다. 예수상 가는 길에는 계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동판들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세워져 있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의 고난이 단계별로 새겨져 있는 동판이다. 이 동판들은 콘크리트 지붕으로 보호되고 있었고, 그림 위에는 설명이 쓰여 있다. 천주교 신자라면 숙연한 마음으로 옷깃을 여미면서 볼 만하겠다. 그림이 12개라던가. 몇 개인지 세다가 숫자를 놓쳤다.
오랜 세월 동안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은 동티모르는 국민의 98%가 가톨릭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동티모르에는 지역마다 크고 작은 성당이 있었다. 가장 큰 것은 딜리 시내에 있다. 우리가 묵었던 엘리자베스 호텔에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다.
동판의 마지막 그림은 당연히 예수의 부활을 주제로 했다. 그 그림을 지나쳐 예수상에 올라갔다 내려오니 두 자루의 촛불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거대한 예수상이 전신을 드러낸다. 그런데 참 슬프다. 예수는 초연한 모습으로 두 팔을 벌리고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버티고 서 있건만 그를 받치고 있는 단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세 개의 거대한 받침대가 있고 그 위에 지구 모양의 둥근 단이 있다. 둥근 단을 딛고 예수가 서 있다.
벽돌로 고르게 만든 바닥은 일부가 붕괴되어 있었고, 받침대에 붙은 타일은 일부가 떨어져나갔고 일부는 부서져 버렸다. 예수가 발을 딛고 서 있는 둥근 단의 페인트 빛깔은 원래의 색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퇴락해 버렸다. 아주 오랫동안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사람의 손길이 머무르지 않는 것들은 이상하게 세월보다 빠르게 삭아 내린다. 예수상이 바로 그랬다.
좀 더 세월이 흐르면 예수상이 그를 받치고 있는 단 아래로 푹 꺼져 버릴 것만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