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化)' 씻어내며 우리 말 살리기 (24) 기사화

[우리 말에 마음쓰기 464] '정형화'와 '답답한 틀', '고리타분한 껍데기'

등록 2008.10.31 10:43수정 2008.10.31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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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기사화하다

 

.. 말할 필요도 없이, 그가 어제 법정에서 행한 변론이 기사화한 것이다 ..  《G.라드브루흐/최종고 옮김-법과 예술》(열화당,1981) 18쪽

 

“말할 필요(必要)도 없이”는 “말할 것도 없이”나 “그러니까”로 다듬어 줍니다. “법정에서 행(行)한 변론”은 “법정에서 했던(보여준) 변론”으로 손질합니다.

 

 ┌ 기사화(記事化) : 어떤 사건, 사실 따위가 기사의 형태를 갖추게 됨

 │   - 기사화가 가능했다 / 이번 일이 기사화되면 / 기사화해서 일간지에 실렸다

 │

 ├ 기사화한 것이다

 │→ 기사가 되었다

 │→ 기사로 나왔다

 │→ 기사로 실렸다

 └ …

 

“기사로 나오다”라 하면 될 말을 꼭 “기사화되다”로 쓰는 사람이 있고, “기사로 쓰다”라 하면 그만인 말을 “기사화하다”로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쩌면 이 ‘-化’붙이 말을 쓰는 분들은 못 느끼고 있는지 몰라요. 그냥 듣던 대로, 예전부터 배운 대로, 그래서 자기가 쓰던 그대로 말할 뿐이라고 생각할 테지요.

 

 ┌ 기사화가 → 가능했다 기사로 쓸 수 있었다

 ├ 기사화되면 → 기사로 나오면 / 신문에 실리면

 └ 기사화해서 → 기사로 써서

 

어릴 적부터 듣고 배워서 쓰던 말이 깨끗하고 알맞고 곱고 살갑다면 걱정이 없습니다. 참 좋아요. 그렇지만 어릴 적부터 둘레에서 듣고 책으로 읽고 교사나 부모한테서 배운 말이 얄궂거나 비틀리거나 엉터리로 뒤죽박죽이 되어 있다면 어찌할까요. 이때에도 ‘예전부터 쓰던 말인데…’ 하면서 그대로 써도 좋을까요. 그냥저냥 말버릇으로 굳었다고 여기며 고치지 않아도 되나요. 자기한테 익숙한 말씨이니 건드리지 말라고, 토 달지 말라고 도리질을 치면 그만인가요.

 

말과 글만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우리 몸가짐, 마음가짐, 버릇 모두 올바르고 깨끗한 채로 한결같이 이어갈 수 있도록 늘 돌아보고 추스를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밥 한 그릇 옳게 먹는 일이 우리 몸도 살리지만, 우리 땅을 살리고 우리 땅에서 농사짓는 사람을 살립니다. 물건 하나 옳게 골라서 쓰는 일이 우리 삶을 가꾸는 한편으로, 옳게 일하며 땀흘리는 노동자한테 보람이 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도, 즐기는 온갖 놀이도 언제나 즐겁고 신나며 뿌듯하고 기쁨에 넘칠 수 있으려면, 우리 스스로 바라보아야 하는 곳이 지금과 같아서는 안 되고, 딱딱하게 굳어 가는 아쉬움과 모자람을 털면서 가다듬어야지 싶습니다.

 

말 한 마디라고 대수롭게 여기면서 대충대충 쓰자는 마음이라거나, 오랫동안 길들어서 못 바꾸겠다고 뇌까리는 생각이라면, 일도 놀이도 우리 사회 흐름과 온갖 운동(시민운동, 정치-사회-문화 운동)도 올바른 쪽으로 나아가기 어렵다고 느낍니다. 말 한 마디이기 때문에 더 마음을 두고, 글 한 줄이기 때문에 더 눈길을 두면서 곱씹고 되뇌고 보듬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ㄴ. 정형화되다

 

.. ‘우리말 바루기’의 특징은 널리 사용하는, 살아 있는 예문에 있다. 정형화된 것은 피했다 ..  《중앙일보 어문연구소-한국어가 있다 (1)》(커뮤니케이션북스,2005) 머리말

 

“‘우리말 바루기’의 특징(特徵)은 …에 있다”는 “‘우리말 바루기’는 …를 하고 있다”라고 다듬어 줍니다. 말은 ‘한다’고 하지, ‘사용(使用)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예문(例文)’은 ‘보기글’로 고쳐씁니다. ‘피(避)했다’는 ‘꺼리다’나 ‘멀리하다’로 풀면 되는데, 이 자리에서는 ‘안 쓰다’나 ‘삼가다’나 ‘안 싣다’로 손질하면 한결 잘 어울립니다.

 

 ┌ 정형화 : x

 ├ 정형(定型) : 일정한 형식이나 틀

 │   - 시조의 정형 / 정형을 벗어나다

 │

 ├ 정형화된 것은 피했다

 │→ 틀에 박힌 글은 쓰지 않았다

 │→ 판에 박힌 말은 안 썼다

 │→ 뻔한 보기글은 삼갔다

 │→ 딱딱하고 굳은 보기글은 안 실었다

 │→ 고리타분한 보기글은 버렸다

 │→ 틀에 박히지 않으려고 했다

 └ …

 

보기글을 읽으면서, 또 보기글이 실린 책을 읽으면서, ‘어문연구소’에서 일하는 분들이 말하는 “정형화된 것은 피했다”는 말이 외려 ‘정형화’되어 있지 않느냐고, 이런 말투야말로 너무 딱딱하고 굳어 있으며 고리타분하지 않느냐고 느낍니다. 여느 사람들이 널리 쓰는 살아 있는 말을 못 썼다고 느낍니다. 우리 둘레 사람들이 손쉽게 주고받는 말과 동떨어져 있다고 느낍니다. 싱싱함, 시원함, 손쉬움, 말끔함, 애틋함, 살가움, 넉넉함, 알뜰살뜰함, 환함, 맑음 들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 시조의 정형 → 시조 틀 / 시조를 쓰는 틀

 └ 정형을 벗어나다 → 틀을 벗어나다 / 짜여진 틀을 벗어나다

 

우리 말을 올바르게 쓰자는 이야기를 펼치든 다른 일을 하든, 지식이 아닌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느낍니다. 가르침이 아닌 어우름으로, 베풂이 아닌 함께함으로 가다듬고 추슬러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틀에 박히지 않고자, 앞선 이들이 했던 틀을 따르지 않고자, 이참에는 무언가 새롭게 느껴지는 틀을 마련하고자, 여러모로 애쓰는 일은 반갑습니다. 그러나, 앞선 틀이든 새로운 틀이든, 틀 하나에 어떤 알맹이를 담느냐에 조금 더 마음을 쏟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틀거리는 새로워도 알맹이가 허전하면 어찌합니까. 틀거리는 남다르나 속살은 엉성궂다면 어찌하지요. 틀거리는 확 달라졌어도 줄거리는 예전 그대로라면 겉치레가 아니랴 싶어요.

 

새로움도 좋고 거듭남도 좋은데, 이에 앞서 얼마나 구슬땀을 흘리느냐가 좀더 크며, 구슬땀 흘리기보다 누구와 어디에서 어깨동무를 하느냐가 좀더 큽니다. 아이들도 함께 즐길 수 있게끔, 지식이 적고 학교도 다니지 못한 이들 또한 함께 나누게끔, 지식 많은 이들과 학교 오래 다닌 이들이 더더욱 애쓰고 힘쓰고 마음써야 한다고 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8.10.31 10:43ⓒ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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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한자 #우리말 #우리 말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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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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