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보다 좋은 우리 '상말' (53) 승승장구

[우리 말에 마음쓰기 534] ‘겉씨식물이 승승장구’, ‘승승장구를 거듭하여’ 다듬기

등록 2009.01.28 18:38수정 2009.01.28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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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겉씨식물이 승승장구하던 시기

.. 그렇기 때문에 겉씨식물이 승승장구하던 시기에 막강한 경쟁자인 속씨식물이 모습을 드러냈으며 ..  《자크 브로스/양영란 옮김-식물의 역사와 신화》(갈라파고스,2005) 31쪽


‘시기(時期)’는 ‘때’로 다듬고, ‘막강(莫强)한’은 ‘힘센’이나 ‘거친’이나 ‘대단한’으로 다듬습니다. ‘경쟁자(競爭者)’는 ‘겨루는 이’나 ‘맞서는 이’로 손질합니다.

 ┌ 승승장구(乘勝長驅) : 싸움에 이긴 형세를 타고 계속 몰아침
 │   - 승승장구의 기세 / 승승장구로 이기다 / 승승장구로 진격을 해 왔다
 │
 ├ 승승장구하던 시기에
 │→ 위세를 떨치던 때에
 │→ 판을 치던(잘 나가던/한창(인)) 때에
 │→ 힘있게 몰아치던 때에
 └ …

한 번 이기고 또 이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이기지 못하다가 한 번 이기면서 ‘이기는 맛이 이렇구나’ 하면서 비로소 느낌을 잡고 차근차근 제 길을 닦아 나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좀처럼 이기지 못하면서 이기는 맛을 못 느끼는 사람이 있는 한편, 이겨 보고도 이기는 흐름을 못 잇는 사람이 있으나, 거침없이 내달리듯 이기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런 사람을 두고, 네 글자 한자말로 ‘승승장구’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네 글자 한자말 ‘승승장구’를 뜯어 봅니다. ‘乘勝’은 “싸움에서 이기는 형세를 타는 일”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長驅’는 “말을 몰아서 쫓아감”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싸움에서 이기는 형세를 타고 + 말을 몰아서 쫓아가듯 이어나간다”는 소리입니다.

 ┌ 승승장구의 기세 → 거침없는 기세
 ├ 승승장구로 이기다 → 거침없이 이기다 / 몰아치며 이기다
 └ 승승장구로 진격을 해 왔다 → 거침없이 밀려 왔다


고개를 끄덕일 만한 말짜임입니다. 퍽 잘 지었다고 느낄 수 있는 말얼개입니다. 그렇지만, ‘승승장구’ 뜻과 쓰임새를 살펴볼수록 ‘거침없이’ 같은 토박이말이 자꾸자꾸 떠오릅니다. ‘기운차게’나 ‘기운좋게’ 같은 말을 넣어 보고 싶습니다. ‘쭉쭉’이나 ‘잇달아’를 넣어 보고 싶으며, 자리에 따라 ‘막힘없이’나 ‘가멸차게’ 같은 낱말이 제법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ㄴ. 당사자도 승승장구를 거듭하여


.. 당사자도 승승장구를 거듭하여 재작년인가에는 우리 아이들이 보는 수학 능력 시험의 국사 부분을 출제하기도 했다 ..  《이희진-식민사학과 한국고대사》(소나무,2008) 125쪽

‘당사자(當事者)’는 ‘그 사람’으로 다듬고, ‘재작년(再昨年)’은 ‘그러께’나 ‘지지난해’로 다듬습니다. “수학 능력 시험의 국사 부분(部分)”은 “수학 능력 시험에서 국사 쪽”으로 손보고, ‘출제(出題)하기도’는 ‘내기도’로 손봅니다.

 ┌ 승승장구를 거듭하여
 │
 │→ 떵떵거리기를 거듭하여
 │→ 잘나가기를 거듭하여
 │→ 거침없이 잘나가면서
 │→ 아주 잘나가면서
 └ …

우리 말은 무엇이고 우리 글은 어떤 모습인가를 자꾸만 되돌아보고 다시 생각하고 거듭 곱씹습니다. 사람들 말씀씀이를 살피면서, 우리가 보여주는 지금 모습이 우리 말 빛깔이라고 말해야 하나 걱정이 됩니다. 우리가 앞으로 어떤 말을 하고 어떤 글을 쓰게 될지 근심스럽습니다.

그러나 모자라도 우리 모습이고 아쉬워도 우리 얼굴입니다. 억지로 뜯어고칠 수 없고, 이쁘장하게 매만질 수 없습니다. 다만, 예쁘지 않으면서도 예쁘게 꾸밀 마음이 없습니다만, 수수하면서도 수수함을 안 느끼거나 수수함을 버리고 겉치레나 겉발림으로 나아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꼭 떵떵거릴 수 있는 말이어야 하지 않고, 잘나가는 글이어야 하지 않으며, 드러내어 뽐내거나 우쭐거리는 문화여야 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즐기고, 꾸밈없이 나누며, 조촐하게 갈고닦으면 넉넉하다고 느낍니다.

토박이말이라 하여 더 높지 않으나, 토박이말임에도 깎아내리거나 멀리해서는 안 된다고 느낍니다. 한자말이라 하여 더 낮지 않으나, 구태여 안 써도 되는 한자말에 발목이 잡히거나 끄달리면서 우리 나름대로 우리 넋과 얼을 못 키우는 얄궂은 모습은 없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제아무리 영어가 높다 하여 초등학교 아이들한테 영어를 가르치게 되었다 할지라도, 아이들한테는 우리 말을 먼저 똑똑히 올바르게 가르친 다음 영어를 가르쳐야 합니다. 제아무리 오늘날 누구나 영어를 잘해야 한다고 할지라도, 어떤 사람이건 우리 말과 글을 알맞춤하고 올바르며 어긋나지 않도록 가다듬어야 합니다. 토익 점수 만점을 받아도 우리 말법과 말씨와 말결을 모른다고 한다면 무슨 쓸모가 있을까요. 번역을 하건 통역을 하건, 나라밖 말은 잘해서 나라밖 사람이 들려주는 말은 잘 알아듣는다고 하지만, 나라안 사람한테 ‘자기가 잘 알아들은 말’을 엉터리로 알려주거나 어설피 들려주는 눈높이밖에 안 된다면 어찌하나요.

 ┌ 당사자도 승승장구를 거듭하여
 │
 │→ 그 사람도 하는 일마다 잘되어
 │→ 그분도 자기 앞길이 뻥뻥 뚫려서
 └ …

지식은 많이 얻지만, 지식을 다루는 마음결까지는 얻지 못하는 우리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행을 많이 다니지만, 여행길에 부대끼는 사람들 삶터까지는 들여다보지 못하는 우리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집집마다 자가용을 장만하여 자기가 바라는 데까지 쉽고 빠르게 오갈 수 있다고 하지만, 자가용으로 오가는 길목에서 누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놓치는 우리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러면서 우리 스스로 말을 잊거나 놓치고, 글을 잃거나 빼앗기는구나 싶어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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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상말 #우리말 #우리 말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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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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