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궂은 한자말 덜기 (65) 감동

[우리 말에 마음쓰기 578] ‘또 한 번 감동’, ‘똑같을 정도로 감동’ 다듬기

등록 2009.03.13 13:58수정 2009.03.13 13:58
0
원고료로 응원
ㄱ. 또 한 번 감동했습니다

.. 너무나 큰 차이에 또 한 번 감동했습니다 ..  《요시다 도시미찌/홍순명 옮김-잘 먹겠습니다》(그물코,2007) 37쪽


"너무나 큰 차이(差異)에"는 "너무나 크게 달라"나 "너무나 크게 달라서"로 다듬습니다.

 ┌ 감동(紺瞳) : 검푸른 눈동자
 ├ 감동(感動) : 크게 느끼어 마음이 움직임
 │   - 감동을 받다 / 감동을 자아내다 / 가슴이 터질 듯한 감동을 느끼다
 ├ 감동(監董) = 감동관
 ├ 감동(?動) : 이리저리 뒤흔듦
 │
 ├ 또 한 번 감동했습니다
 │→ 또 한 번 놀랐습니다
 │→ 또 한 번 가슴이 벅찼습니다
 │→ 또 한 번 기뻤습니다
 │→ 또 한 번 흐뭇했습니다
 └ …

검푸른 눈동자는 '검푸른 눈동자'일 뿐입니다. 이리저리 뒤흔들리는 일은 '뒤흔들리'는 일이고요. 이런 말을 한 낱말로 가리킨다고 하면서 억지로 한자를 붙여서 적어 본다 한들, 알아들을 사람도 없고 쓸 사람도 없습니다. 괜히 국어사전 부피만 늘리게 되면서 아까운 종이와 잉크만 버리고 만다고 느낍니다.

어떤 모습을 보거나 어떤 이야기를 들으며 '감동했다'는 말을 곧잘 쓰는 우리들입니다. 저도 '감동'이라는 말을 더러 씁니다. 그렇지만, '감동'이라고만 할 때에는 뚜렷하지 않다는 느낌, 제대로 짚어내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서 이 낱말을 안 쓸 때도 꽤 있습니다.

 ┌ 감동을 받다 → 가슴이 벅차다 / 가슴이 뛰다 / 가슴이 울렁거리다 /
 │   느낌을 받다 / 느낌을 받아 마음이 움직이다
 └ 감동을 자아내다 → 가슴찡함을 자아내다 / 가슴벅참을 자아내다


"그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았어"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영화를 보고 아주 좋았어"라든지 "그 영화를 보고 울었어"라든지 "그 영화를 보고 내 마음이 넉넉해졌어"라든지 "그 영화를 보는 동안 가슴이 벌렁벌렁했어"처럼, 자기가 어떤 대목에서 어떻게 느껴 움직였는가를 밝힐 때가 한결 낫지 않겠느냐고, 좀더 알맞지 않겠느냐고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쩌면, 사람이 느끼는 여러 가지를 한 낱말로 아울러 '감동'이라고 나타낼 수 있습니다. 우리들 모든 느낌은 '감동'으로 모두어진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느낌'이란 무엇일까요. 우리 말 '느낌-느끼다'는 무엇을 나타낼까요. 우리한테는 '감동'이라는 낱말이 없다면 아무런 느낌도 생각도 마음도 나타낼 수 없을는지요. 벅참, 뜀, 울렁거림, 움직임, 찡함, 짠함, 반가움, 좋음, 싫음, 뭉클함, 아름다움 들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어서는 안 될는지요.


→ 너무나 크게 달라 또 한 번 느꼈습니다. (이렇구나 하고)

'느끼다'라고 넣은 뒤 '무엇을 어떻게 왜 얼마나' 느꼈다고 적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감동'을 이야기한다고 할 때에도, "또 한 번 감동했습니다. (이렇구나 하고)"처럼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감동했다고? 무엇을 어떻게 왜 감동했니?" 하고 다시 묻지 않는가 떠올려 봅니다. 한자말 '감동'이 크게 여러 가지를 아우르는 낱말이라 한다면, 토박이말로는 '느낌'이 크게 여러 가지를 아우르는 낱말이 아니냐고 헤아려 봅니다.

 ┌ 가슴이 터질 듯한 감동을 느끼다
 │
 ├ 가슴이 터지도록 느끼다
 └ 가슴이 터질 듯하다

무엇인가를 '느끼는' 일이 '감동'이라 한다면, 국어사전 보기글에 보이듯이 "감동을 느끼다"처럼 적는 일은 겹말입니다. "느끼는 것을 느끼다" 꼴이 되니까요. 이리하여, 한자말 '감동'을 한자말이 아닌 듯 얼마든지 쓸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한편으로, 한자말 '감동'은 우리한테 군더더기와 같은 낱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ㄴ. 똑같을 정도로 감동했어

.. "나도 처음 먹었을 땐 똑같을 정도로 감동했어. 그냥 그렇다고." ..  《시무라 시호코/김현정 옮김-여자의 식탁 (1)》(대원씨아이,2008) 65쪽

"똑같을 정로(程度)로"는 "똑같을 만큼"이나 "똑같도록"이나 "똑같이"로 다듬어 줍니다.

 ┌ 똑같을 정도로 감동했어
 │
 │→ 똑같을 만큼 가슴이 뛰었어
 │→ 똑같이 놀랐어
 │→ 똑같이 놀라고 기뻤어
 └ …

이제까지 먹어 보지 못한 달콤하고 맛난 초콜릿 때문에 '감동'했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처음 느낀 그 맛은 대단하다고 느껴지기도 하고, 놀랍다고 느껴지기도 하며, 엄청났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맛있는 초콜릿이 있는지, 아니 초콜릿이 이렇게 맛날 수 있는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할 만합니다.

 ┌ 너와 똑같이 크게 놀랐어
 ├ 너와 똑같이 엄청 놀라고 좋았어
 ├ 너처럼 놀라고 기뻐했어
 └ …

예전에 먼저 맛본 아이는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맛을 즐깁니다. 뒤늦게 처음 맛본 아이는 크게 놀라며 방방 뜁니다. 예전에 맛본 아이는 그리 대수롭지 않은 듯 생각하다가도 새삼스레 그 맛이 남달랐음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건넵니다. "나도 처음 먹었을 땐 너와 똑같이 깜짝 놀랐어. 그냥 그렇다고." 하면서.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한자말 #한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2. 2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3. 3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4. 4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5. 5 "이러다 임오군란 일어나겠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 "이러다 임오군란 일어나겠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