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74)

― '몸과 악기의 교감의 원리', '너의 아들의', '자신의 병의 원인 다듬기

등록 2009.03.31 17:56수정 2009.03.31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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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몸과 악기의 교감의 원리

 

.. 그리고 몸과 악기의 교감의 원리는 오직 아날로그의 방식으로만 가능하다 ..   《김훈-밥벌이의 지겨움》(생각의나무,2003) 19쪽

 

 '교감(交感)'이란 서로 어울리면서 주고받는 느낌입니다. 이 자리에서는 '만나는'이나 '어울리는'으로 풀어내면 한결 낫습니다. '가능(可能)하다'는 '할 수 있다'나 '될 수 있다'로 풀어냅니다.

 

 ┌ 몸과 악기의 교감의 원리

 │→ 몸과 악기가 어울리는 원리

 │→ 몸과 악기가 만나 움직이는 원리

 │

 ├ 아날로그의 방식으로만 가능하다

 │→ 아날로그 방식으로만 이루어진다

 └→ 아날로그로만 할 수 있다

 

 토씨 '-의'가 짧은 글 한 줄에 세 번 나옵니다. 세 번이나 '-의'를 쓸 만할까 모르겠습니다만, 이 글을 쓴 분으로서는 이렇게 쓸 만하다고 느꼈으리라 봅니다.

 

 앞에 나온 '-의 -의'는 '-가 -하는'으로 고쳐 줍니다. 뒤에 나온 '-의'는 덜어냅니다. 통째로 고쳐써 볼까요? 저라면, "그리고 몸과 악기는 오직 아날로그 방식으로만 어울릴 수 있다"쯤으로 적겠습니다.

 

 

ㄴ. 너의 아들의 학교 가는 눈동자

 

.. 그것도 아니라면, 너의 아들의 학교 가는 눈동자 속에 총알을 박아 보았나? ..  (아사녀) / 《신동엽-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창작과비평사,1979) 25쪽

 

 시를 쓰는 분들이 잘못 쓴 말을 바로잡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시라고 해서 '잘못 쓴 말 바로잡기'에서 벗어날 수는 없어요. 소설도 그렇고 신문기사도 그렇습니다. 교과서라고 벗어날 수 없으며 철학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부러 틀리게 쓸 수도 있다고 하나, 일부러가 아니라 '잘 몰라서' 잘못 쓰거나 틀리기도 하니까요.

 

 "눈동자 속에 총알을 박아"라 했는데, "눈동자에 총알을 박아"로 고쳐써야 알맞습니다. "네 팔 속에 총알을 박아"나 "네 머리 속에 총알을 박아"처럼 말하지 않고, "네 팔에 총알을 박아"나 "네 머리에 총알을 박아"처럼 말하는 우리들이거든요.

 

 ┌ 너의 아들의 학교 가는 눈동자

 │

 │→ 네 아들이 학교 가는 눈동자

 │→ 학교 가는 네 아들 눈동자

 └ …

 

 '내'와 '네'가 우리 말입니다. 그렇지만 글쓰는 분들은 '나의'와 '너의'를 참 즐겨써요. 그 뒤에 나오는 "아들의 학교 가는"이라는 말은 "나의 살던 고향"과 마찬가지로 잘못입니다. '-의'가 아닌 '-이/-가'를 넣어서 "아들이 학교 가는"이라고 적어야 옳아요.

 

 제아무리 성역과도 같은 시말이라고 해도 '-의'를 두 번이나 겹쳐서 잘못 쓴 이런 대목은 바로잡아 주어야 좋습니다. 그래야 시도 살고 말도 살 수 있어요.

 

 

ㄷ. 자신의 병의 원인

 

.. 그는 결국 자신의 병의 원인을 증명하는 일은 아무도 대신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  《전진성-삶은 계속되어야 한다》(휴머니스트,2008) 55쪽

 

 '결국(結局)'은 '끝내'나 '그예'로 다듬습니다. "원인(原因)을 증명(證明)하는"은 "까닭을 알아내는"이나 "까닭을 밝히는"으로 손질해 주고, "대신(代身)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은 "대신해 주지 않음을"이나 "맡아 주지 않음을"이나 "도와주지 않음을"이나 "나서 주지 않음을"로 손질합니다.

 

 ┌ 자신의 병의 원인을

 │

 │→ 자신한테 병이 왜 생겼는지를

 │→ 자기 병이 왜 생겼는지를

 │→ 자기 병이 무엇 때문인지를

 └ …

 

 이 자리에서는 '자신'을 '자기'로 바꾸어 주면, "자기 병 원인을"처럼 됩니다. 토씨 '-의'는 모두 떨어져나갑니다. '원인'을 움직씨 '생기다'로 풀어내 보면, "자기 병이 왜 생겼는지를"이나 "자기한테 병이 생긴 까닭을"처럼 되어, 이때에도 토씨 '-의'는 하나도 달라붙지 못합니다. 또는, "내가 왜 아프게 되었는지를"이나 "내 몸이 아프게 된 까닭을"로 고쳐써 보아도 잘 어울립니다.

 

 통째로 손질해 봅니다. "그는 마침내, 자기한테 병이 왜 생겨났는가를 밝히는 일은 아무도 도와줄 수 없음을 깨달았다"로. 또는, "그는 이제, 자기한테 생겨난 병이 무엇인가를 알아내는 일은 스스로 해야 함을 깨달았다"로.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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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31 17:56ⓒ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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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씨 ‘-의’ #-의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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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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