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75)

'비탄의 색을 일소하는 듯한 고양감' 다듬기

등록 2009.04.02 17:07수정 2009.04.02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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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탄의 색

 

.. 화려하게 재현되는 주제. 모든 비탄의 색을 일소하는 듯한 고양감 .. <노다메 칸타빌레 (20)>(니노미야 토모코/서수진 옮김, 대원씨아이, 2008) 179쪽

 

'화려(華麗)하게'는 '아름답게'나 '곱게'로 다듬고, '재현(再現)되는'은 '다시 태어나는'이나 '선보이는'으로 다듬습니다. '색(色)'은 '빛'이나 '빛깔'로 손보고, '일소(一掃)되는'은 '털어내는'이나 '씻어내는'이나 '쓸어내는'으로 손봅니다. '고양감(高揚感)'은 '북돋움'으로 손질해 줍니다.

 

 ┌ 비탄(悲歎) : 몹시 슬퍼하면서 탄식함

 │   - 비탄에 빠지다 / 비탄에 잠기다 / 그녀에게 가져다 줄 충격과 비탄이

 │

 ├ 모든 비탄의 색을

 │→ 모든 슬픔에 잠긴 빛깔을

 │→ 모든 슬픔에 젖은 빛을

 │→ 모든 슬픈 빛깔을

 │→ 모든 슬픈 빛을

 └ …

 

몹시 슬퍼하면서 탄식을 한다는 '비탄'인데, 이 뜻풀이에 나오는 '탄식(歎息)'을 국어사전에서 다시 찾아보면 "한탄하여 한숨을 쉼"을 가리킨다고 나옵니다. 거듭 '한탄(恨歎)'을 찾아봅니다. "원통하거나 뉘우치는 일이 있을 때 한숨을 쉬며 탄식함"을 뜻한다고 합니다. 비탄이 탄식이 되고 탄식이 한탄이 되며 한탄이 다시 탄식이 됩니다. 요리조리 돌아가는 낱말풀이인데, 이런 낱말풀이를 보면서 말뜻과 말느낌을 제대로 헤아리기란 어렵습니다.

 

 ┌ 비탄 → 슬퍼서 한숨

 ├ 탄식 → 가슴이 시려 한숨

 └ 한탄 → 사무치는 아픔으로 한숨

 

그렇지만 국어사전을 뒤적여 말뜻을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닌 한자말을 이모저모 다른 듯 여기고 있을 뿐입니다. 올바르게 쓰지 못하면서 좀더 매끄럽고 수월하게 자기 뜻을 나타내지 못하고, 이러는 동안 우리 말투를 잃습니다. 우리 말투를 잃는 줄 모르면서 우리 얼을 놓칩니다. 우리 얼을 놓치다가눈 우리 삶하고 동떨어지고, 우리 삶하고 동떨어지는 가운데 우리 이웃을 못 봅니다.

 

 ┌ 비탄에 빠지다 → 슬픔에 빠지다 / 슬픔에 빠져 한숨을 쉬다

 └ 비탄에 잠기다 → 슬픔에 잠기다 / 슬픔에 잠겨 한숨을 쉬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우리 말과 글을 모두 잃어 슬픔에 잠겨 한숨을 쉬던 때는 그리 오래된 옛날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과 글을 잃다가 겨우 찾기는 했어도, 제대로 된 우리 말과 우리 글을 쓰면서 흐뭇하고 넉넉하다고 할 만한 때는 아직 맞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국말에 눌리다가 일본말에 눌렸고, 일본말에 눌리다가 미국말에 눌리고 있거든요.

 

한자 가운데에는 우리 삶에 녹아든 우리 말도 있으나, 아직 우리 삶에 녹아들지 않았거나 우리 삶에 녹아들기 어려운 바깥말이 꽤 많습니다. 미국말도 마찬가지이고 일본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말 가운데에는 우리 말로 스며들어 뿌리내린 말도 꽤 있어요. 미국말도 그렇고요.

 

그러나 우리가 예부터 써 왔고 지금도 쓰고 앞으로도 쓸 만한 토박이말이 있는 가운데 섣불리 들여오는 바깥말은 '우리 말'이라 할 수 없고, '들온말'이라 할 수도 없습니다. 이제는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잘 모르는 바보가 되고 말아, 오래도록 우리 어버이와 할매 할배가 쓰던 토박이말을 잊는데다가, '토박이말이라 하여도 사람들이 거의 모르는 말'이 꽤 늘었습니다. 이러니 어느 자리에 어느 낱말을 고르고, 이 낱말과 저 낱말은 쓰임새가 어찌 나뉘며 느낌과 뜻은 어느 만큼 갈리는지를 찬찬히 톺아볼 줄 아는 눈썰미를 바라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이제는 우리 손으로 우리 새말을 빚어내지 않습니다. 우리 손은 오로지 바깥말을 받아들입니다. 우리들 새 물질문명을 가리키는 자리에 토박이말을 쓰지 않고 바깥말만 쓰려 합니다. 버스는 버스이고 택시는 택시이지만, 우리는 꼭 이렇게밖에 이런 탈거리 이름을 붙여야 했을까요. 청량음료나 주스 같은 마실거리는 왜 이렇게만 이름을 붙여애 했을까요. 우리한테 자동차 같은 물건이 없었다 하지만, 새로 받아들여 쓰는 자리에서 우리 스스로 우리 새말을 빚을 생각은 어이하여 안 하고 말았을까요.

 

곰곰이 돌아보면 우리 앞사람들 탓이지만, 앞사람들이 알뜰살뜰 알맞는 낱말을 새롭게 빚어내지 못했다면, 뒷사람인 우리들이 빚어내야 합니다. 우리들마저 제대로 된 토박이말을 빚어내지 못하면, 우리 뒷사람이라도 할 수 있도록 올바르게 가르치고 넉넉하게 이끌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지금 어떠합니까. 우리들 몫을 제대로 하고 있습니까. 앞사람들을 수구보수라고 손가락질하거나 나무라는 우리들은 얼마나 수구와 보수가 아니면서 우리 삶을 가다듬고 있습니까. 우리 스스로 우리 넋을 얼마나 평화와 통일에 걸맞게 추스르고 있습니까. 우리 손으로 우리 몸과 마음을 얼마나 사랑과 믿음에 따라 자유와 평등으로 나아가도록 매만지고 있습니까.

 

 ┌ 슬픈한숨

 ├ 시린한숨

 ├ 아픈한숨

 ├ 깊은한숨

 └ …

 

한숨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슬퍼서 내쉬는 한숨이라면 '슬픈한숨'입니다. 가슴 시리도록 나오는 한숨이라면 '시린한숨'입니다. 몸이며 마음이 아파 내뱉게 되는 한숨은 '아픈한숨'입니다. 속이 다치고 쓰려서 후유 하고 깊게 내쉬는 한숨은 '깊은한숨'입니다.

 

한숨을 가리키는 다 다른 낱말이 있어야 하면, 우리는 우리 깜냥껏 우리 생각을 펼쳐서 하나하나 헤아려야지요. 우리 어른뿐 아니라 푸름이들도 손쉽게 받아들이면서 쓸 만한 낱말을, 어린이들도 어려움없이 받아들이면서 쓸 만한 낱말을 빚어야지요. 그예 비탄이니 탄식이니 한탄이니 하는 바깥말만 들여온다고 모든 말썽거리가 풀리지 않습니다. 모자란 우리 말이 넉넉해지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와 우리 이웃 모두한테 즐겁고 포근하게 느껴질 말이 되지 않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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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2 17:07ⓒ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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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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