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우리와 사농바치들이 걸었던 숲길의 비밀

[걷고 싶은 길 2] 최고령 삼나무 숲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등록 2009.05.22 09:51수정 2009.05.22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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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은 일상에서 찌든 사람들을 치료하는 특효약입니다. 더욱이 숲길 체험은  메마른 감성을 충전시켜 주기도 하지요. 특히 삼나무와 가시나무, 참나무가 서식하고 있는 숲길 체험은 '더불어 사는 삶'을 배우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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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리아 숲길 ⓒ 김강임

스코리아 숲길 ⓒ 김강임

스코리아 길, 숲의 신록과 조화 이뤄

 

 5월 17일 오후 12시 30분, '치유와 명상의 숲' 정자에서 먹었던 김밥과 커피는 꿀맛이었습니다. 다시 운동화 끈을 질끈 동여맸습니다. '월든' 숲에서 사려니오름까지는 8.5km 정도, 무엇보다 길을 걸으려면 발이 편해야 합니다. 

 

 '월든' 숲 정자에서 오른쪽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500m 정도 되는 붉은 스코리아 길과 신록의 조화는 환상이었습니다. 사려니 숲길은 대부분 임도 폭이 3-4m 정도, 숲길 치고는 꽤나 넓은 길이었습니다. '사각사각' 소리 나는 스코리아 길(송이길)은 발바닥에 부드러운 충격을 주더군요.  

 

 스코리아 길 오른쪽에는 쭉쭉 뻗은 삼나무 숲, 그 아래 오밀조밀 피어있는 양지꽃이 숲길을 열었습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잔디밭길 역시 흙과 푸른 잔디와의 조화에 빠질 수 없었습니다. 

 

 소나무 숲에서는 '까악-까악' 까마귀가 울어댔습니다. 잔디 길과 송이석 길이 반복되는 1.5km 숲길, 그 왼쪽에는 서어나무 숲이 빼꼭이 들어 서 있었습니다. 서어나무 아래 식생하는 산딸나무와 때죽나무, 윤노리나무는 5월의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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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향기 ⓒ 김강임

숲속의 향기 ⓒ 김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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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의 암반욕 ⓒ 김강임

계곡의 암반욕 ⓒ 김강임

 

테우리와 사농바치들이 걸었던 숲길의 신비

 

 7km 이상을 걸었던 사람들에게 고통의 한숨소리도 나올 법한데, 삼삼오오 짝을 지어 걷는 사람들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습니다. 유년시절 소풍가는 길이 이렇게 즐거웠던가요. 그 설렘은 늘 길을 걸을 때마다 기억되어 집니다.

 

 사려니 숲길에는 노루와 제주족제비, 오소리 등이 서식하고 있으며, 참매와 소쩍새, 박새와 휘파람새 등이 서식한다 합니다. 때문에 사려니 숲길은 아득한 옛날 테우리(목동)들과 사농바치(사냥꾼)들이 이 길을 걸었다고 합니다.

 

 '월든'에서 4.5km 정도 걸었을까요? 온몸에 땀이 후줄근했습니다. 서어나무 숲과 난대림 전시림 사이에는 계곡이 있었습니다. 계곡을 가득 메운 크고 작은 바위는 어린이들의 놀이터였습니다. 벌써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물장구를 치는 나그네들의 모습은 벌써 여름입니다.

 

 이 계곡의 바위는 암반욕을 하기에 충분하다고 합니다. 따뜻한 바위에 드러누우면 몸속에 독소와 노폐물을 배출시켜 혈류를 좋게 하는 치유력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양말을 벗고 암반욕을 즐기고 사람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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숯을 구웠다는 숯가마터 ⓒ 김강임

숯을 구웠다는 숯가마터 ⓒ 김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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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재배 터 ⓒ 김강임

버섯재배 터 ⓒ 김강임

 더불어 숲, 화전민들이 살았던 흔적

 

 암반욕에서 다시 1km. 19C 전후 화전민이 살았던 흔적이 있는 숲 가마터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1930년경 축요식 형태로 축조된 숯 가마터는 길이가 2.3m, 넓이가 2.3m로 2개의 숲 가마터가 있었습니다. 숯 가마터에 얼굴을 들이 댔더니 가마터 안은 캄캄했습니다. 그리고 그 안은 황토 흙이었습니다.

 

 숯의 원료는 참나무와 서어나무 가시나무로, 사려니 숲속에 식생하는 나무들이 곧 숯의 원료가 되는 셈이죠. 예전에는 땔감으로 사용했던 숯이 현대에 이르러 습도 조절은 물론,해독작용과 항균작용의 치료적 효과를 내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숯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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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나무 전시림 ⓒ 김강임

삼나무 전시림 ⓒ 김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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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전민이 살았다는 흔적의 돌담 ⓒ 김강임

화전민이 살았다는 흔적의 돌담 ⓒ 김강임

 사려니 숲 절정은 최고령 삼나무 970m 산책로

 

 숯 가마터에서 시작된 숲길은 1km 정도의 자갈길과 시멘트로 포장된 길입니다. 전시림이라는 푯말을 따라 들어가니 제주도 최고령 삼나무 지대가 펼쳐졌습니다. 삼나무 전시림입니다. 이 전시림은 970m의 산책로가 개설 돼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이 산책로를 맨발로 걸었습니다. 숲의 정기를 직접 받고 싶어서였지요. 1930년도 인공적으로 조성되었다는 삼나무 나이는 물론 고령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팔을 벌리고 안아 보았으나 안을 수 없더군요. 따라서 삼나무 키는 고개를 쳐들어 하늘을 봐도 그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고목에서 느끼는 듬직함이 마음을 풍요롭게 합니다.

 

 삼나무 숲 전시림에는 금새우란과  둥글레, 으름난초 등이 서식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산책로를 걸으며 '무리한 숲 개방으로 숲속의 보물들이 모두 털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사려니 숲속은 지천에 깔린 것이 다 보물이니 말입니다.

 

 제주 최고령 삼나무 숲,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만 걸을 수 있다
 

 사려니술길을 걸었던 어느 지인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소중한 것은 감추어 잘 보존하고 싶잖습니까? 사려니 숲길은 소문 안 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라고요.

 

 아마 그 분은  이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은 보물, 즉 사려니 숲이 훼손될까봐 걱정하는 눈치였습니다.

 

 제주 최고령 삼나무 숲 산책로를 걸으니 유유자적이란 말이 생각나더군요.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는 곳이 바로 사려니 숲, 삼나무 숲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난대림 연구소 해설사에 따르면 '삼나무 숯 지대에서는 예전에 화전민들이 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집터의 흔적과 돌담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이 전시림은 국립산림과학원 난대림연구소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그동안 일반인들에게 통제된 지역입니다. 따라서 5월 31일 이후 전시림 탐방은 난대림 연구소에 문의를 해야 탐방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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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난 서식처 ⓒ 김강임

새우난 서식처 ⓒ 김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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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배고픈 다리라 일컫는 '세월' ⓒ 김강임

일명 배고픈 다리라 일컫는 '세월' ⓒ 김강임

유유자적 숲길, 생태공간으로 태어나길...

 

 '월든'에서 삼나무 전시림까지는 6.5km, 그 길은 비밀의 숲길이었습니다.

 

 붉은 스코리아 길을 걸으니 가슴이 설레더군요. 거무죽죽한 자갈길을 밟으니 마음이 홀가분해지더군요. 서어나무 숲길은 명상의 시간이었습니다. 암반욕 계곡에서는 여유를 부렸고 삼나무 우거진 전시림 산책로에서는 숲의 신비에 빠질 수 있었습니다. 유유자적의 길이었습니다.

 

 제주시 비자림로 사려니 숲 들머리에서부터 난대림 연구소 전시림 삼나무 숲길까지는 13km 정도. 남은 2km는 사려니 오름의 숲길입니다.  옛날 테우리(목동)와 사농바치(사냥꾼)들이 걸었다는 사려니 숲길은 그동안 걷는 사람들이 적어서  신비스런 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이 길은 '사랑의 마음을 심어주는 생태공간'으로 활용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자연을 사랑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자만이 걸을 수 있습니다. 사려니 숲길은 '더불어 숲'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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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나무 전시림 ⓒ 김강임

삼나무 전시림 ⓒ 김강임

사려니 숲길은 제주시 봉개동 절물오름 남쪽 비자림로에 물찻오름을 지나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사려니 오름까지 이어지는 약 15km 숲길을 말한다. 해발고도 500-600m에 위치하고 있는 사려니 숲길은 완만한 평탄지형으로 주변에는 물찻오름, 말찻오름, 마은이오름, 거린오름, 사려니오름 등과 천미천계곡, 서중천 계곡이 분포하고 있다.

 

 온대산지인 사려니 숲길에는 졸참나무 서어나무, 산딸나무, 때죽나무, 단풍나무 등이 자생하고 있으며 산림녹화 사업의 일환으로 삼나무 편백나무 등이 식재되어 있다.

 

 최근 숲 가꾸기 사업 임산물 사업, 산불예방 등의 공익적 관리의 필요성과 숲길을 이용한 산림치유, 산림건강, 자연학습활동에 대한 욕구가 증가하면서 임도의 공익적 다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사려니 숲길이 조성되었다.

 

 사려니 숲길은 사람들에게 산림문화를 체험하게 하고 건강을 증진하고 숲의 가치를 알리며 탄소흡수 원인 나무심기를 통해 자연사랑의 마음을 심어주는 생태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사려니 숲길 안내 표지판에서-

덧붙이는 글 |  2009년 5월 17일, 사려니 숲길 길트기가 시작됐습니다. 사려니 숲길은 제주시 비자림로 사려니 숲 들머리에서부터 사려니오름까지 이어지는 임도로 15km로 숲길이 장관이었습니다. <피톤치드 방출하는 숲에 강 놀게>와 <더불어 사는 숲, 제주도 최고령 삼나무>, <사려니 오름> 등을 연재합니다. 

2009.05.22 09:51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2009년 5월 17일, 사려니 숲길 길트기가 시작됐습니다. 사려니 숲길은 제주시 비자림로 사려니 숲 들머리에서부터 사려니오름까지 이어지는 임도로 15km로 숲길이 장관이었습니다. <피톤치드 방출하는 숲에 강 놀게>와 <더불어 사는 숲, 제주도 최고령 삼나무>, <사려니 오름> 등을 연재합니다. 

#사려니 #제주 #걷기여행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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