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버린 우리 말투 찾기 (18) 불의 행하기

[우리 말에 마음쓰기 654] 말놀이 ‘우아한 얘기가 난무’란?

등록 2009.05.30 10:22수정 2009.05.30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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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우아한 얘기가 난무

 

.. "식사하시다 말고 우아한 얘기가 난무하네요?" "이 녀석이 자꾸 까불잖아." ..  《김수정-아기공룡 둘리 (6)》(예원,1990) 8쪽

 

 '식사(食事)하시다'는 '밥먹다'나 '진지 드시다'로 다듬어 줍니다.

 

 ┌ 우아(優雅) : 고상하고 기품이 있으며 아름답다

 │   - 우아한 자태 / 우아한 차림새 / 백제의 미술은 우아하고 세련되었다

 ├ 난무(亂舞)

 │  (1) 엉킨 듯이 어지럽게 추는 춤

 │   - 나비들의 난무 / 백설(白雪)의 난무 / 무희들의 난무에 눈이 어지럽다

 │  (2) 함부로 나서서 마구 날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 금권의 난무 / 무책임한 보도 난무 / 증오와 폭력의 난무

 │

 ├ 우아한 얘기가 난무하네요?

 │→ 아름다운 얘기가 넘쳐나네요?

 │→ 고운 얘기가 쏟아지네요?

 │→ 어여쁜 얘기만 하시네요?

 └ …

 

 이 자리에서는 살며시 비꼬는 말투로 이야기를 합니다. 일부러 한자말을 빌어 "우아한 얘기가 난무"처럼 적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글 앞머리도 "밥먹다 말고"가 아닌 "식사하시다 말고"라 적었는지 모릅니다.

 

 일부러 이렇게 적었다면 그대로 두어야 합니다. 말놀이를 하려던 매무새였으니, 옳으니 그르니 따질 수 없습니다. 다만, 살며시 비꼬는 말투로 이야기할 생각이었다 하더라도, "밥먹다 말고 고운 얘기만 하시네요?"나 "진지 드시다 말고 훌륭한 말씀만 하시네요?"처럼 내 느낌과 생각을 펼쳐 보일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밥상머리에서 참으로 좋은 말씀만 하시네요?"라든지 "밥먹는 자리에서 아주 예쁜 말씀만 하시네요?"처럼 이야기해도 재미있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 어쩜 그렇게 고운 얘기만 하네요?

 └ 어쩌면 그리 훌륭한 말씀만 하네요?

 

 생각하기 나름이요 쓰기 나름입니다. 헤아리기 나름이요 펼쳐 보이기 나름입니다. 말놀이를 하며 비꼬자면, 한자말뿐 아니라 영어로도 할 수 있습니다. 뭐, 일본말이나 프랑스말로도 할 수 있을 테지요.

 

 그러나 한 번 더 돌아보아 주어야 합니다. 이 보기글은 아이들이 보는 만화책에 싣던 글이었으니까요. 아이들은 이런 만화글을 읽으며 저희도 저희 깜냥껏 말놀이를 즐길 테니까요. 아이들은 이와 같은 어른들 말씀씀이와 글씀씀이에 시나브로 물들고 저절로 길들고 알게 모르게 익숙해지니까요.

 

 우리 어른들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뇌까린 말마디였다 하여도, 아이들한테는 오래도록 스며들면서 생각을 주무르기도 합니다. 우리 어른들은 그저 가볍게 내뱉은 말마디였다 하지만, 아이들한테는 오래오래 파고들면서 마음자리를 어지럽히기도 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여느 사람보다 더 마음을 쏟아 글을 써야 합니다. 말을 하는 사람은 조용히 있는 사람보다 더 마음을 바쳐 말을 해야 합니다. 함부로 쓰는 글에는 '사람을 함부로 보는' 느낌이 담깁니다. 멋대로 외는 말에는 '사람을 멋대로 보는' 기운이 배어듭니다. 가벼운 말놀이이든, 무거운 말나눔이든, 우리는 한 줄 두 마디에도 사랑과 믿음을 어우러 놓아야 하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ㄴ. 불의를 행하지

 

.. 누구에게든지 불의를 행하지 맙시다. 남들이 당하는 불의라고 눈감아 버리지 맙시다 ..  《분도출판사 편집부 엮음-십자가의 길》(분도출판사,1981) 9쪽

 

 "남들이 당(當)하는"은 "남들이 겪는"이나 "남들이 부대끼는"으로 손질합니다.

 

 ┌ 불의(不義) : 의리, 도의, 정의 따위에 어긋남

 │   - 불의를 저지르다 / 불의에 항거하다 / 불의한 방법으로 재산을 쌓다

 ├ 행하다(行-) : 어떤 일을 실제로 해 나가다

 │   - 모험을 행하다 / 의식을 행하다 / 업무를 행하다

 │

 ├ 불의를 행하지 맙시다

 │→ 나쁜 짓을 하지 맙시다

 │→ 못된 짓을 하지 맙시다

 │→ 못살게 굴지 맙시다

 │→ 괴롭히지 맙시다

 └ …

 

 "불의를 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소리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이와 맞물려 "선의를 행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할까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불의-선의'일 테지요. '불의'에 맞선 '선의'요, '선의'와 맞서는 '불의'일 테지요.

 

 ┌ 불의를 행하다 → 나쁜 짓을 하다 / 못난 짓을 하다

 └ 선의를 행하다 → 착한 일을 하다 / 좋은 일을 하다

 

 나쁘다, 못나다, 짓궂다, 괘씸하다, 얄궂다, 뒤틀리다, 못되다 같은 낱말을 헤아려 봅니다. 이와 맞서는 좋다, 착하다, 훌륭하다, 반갑다, 고맙다, 어여쁘다, 즐겁다 같은 낱말을 곱씹어 봅니다.

 

 ┌ 이 나쁜 놈! (o)

 └ 이 불의를 행하는 자! (x)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착한 일을" 하라고 말하거나 "착한 사람"이 되라고 말합니다. 요사이는 이런 말을 안 하고 "돈 잘 벌어야 한다"나 "크게 이름을 날려야 한다"고만 말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선한 일을 행하는 인간이 되어라"처럼 말하는 어른은 없습니다. 있어도 아주 드뭅니다.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라" 하고 말하는 우리 어른들입니다. 아이들 앞에서 "불의를 행하는 자는 금물이다" 하고 말하는 어른이 있기는 있으리라 봅니다. 그렇지만 아이들 앞에서 "나쁜 짓은 하지 말아라" 하고 말하는 우리 어른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못된 짓을 하지 말아라" 하고 말하고, "못난 짓은 멀리하라" 하고 말하는 우리 어른들이 아니랴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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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30 10:22ⓒ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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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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