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없애야 말 된다 (214) 강제적

― ‘강제적으로 적립하게’, ‘강제적으로 연행되어’ 다듬기

등록 2009.05.30 18:04수정 2009.05.30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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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강제적으로 적립하게

 

.. 중기협의 이런 지침이 법적 효력을 가지는 것은 물론 아니어서 당사자가 원치 않는다면 이를 강제할 수 없고, 당사자가 원치 않는데도 강제적으로 적립하게 하는 것은 근로기준법 제29조의 강제저금금지조항을 어기는 것이다 ..  《외국인 이주노동자 인권백서》(다산글방,2001) 33쪽

 

 "법적(-的) 효력(效力)을 가지는 것은 물론(勿論) 아니어서"은 "법 효력이 있지는 않아서"나 "법으로 효력이 있지는 않아서"나 "법으로 얽어맬 수는 없어서"나 "법으로 막을 수 없어서"쯤으로 다듬어 봅니다. "당사자(當事者)가 원(願)치 않는다면"은 "스스로 바라지 않는다면"이나 "자기가 바라지 않는다면"으로 손질하고, '강제(强制)할'은 '억지로 시킬'이나 '어찌할'로 손질하며, "어기는 것이다"는 "어기는 셈이다"로 손질해 줍니다.

 

 ┌ 강제적(强制的) : 권력이나 위력으로 남의 자유의사를 억눌러 원하지 않는

 │    일을 억지로 시키는

 │   - 강제적 제재 효과 / 양자 간의 합의는 강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 강제(强制) : 권력이나 위력(威力)으로 남의 자유의사를 억눌러 원하지

 │    않는 일을 억지로 시킴

 │   - 강제 노동 / 강제 노역 / 강제 동원 / 강제 모병 / 강제로 일을 시키다

 │

 ├ 강제적으로 적립하게 하는 것

 │→ 강제로 적립하게 하는 일

 │→ 억지로 돈을 넣게 하는 일

 │→ 싫다는데도 돈을 넣게 하는 일

 │→ 싫어도 돈을 넣게 하는 일

 │→ 안 하겠대도 돈을 넣게 하는 일

 └ …

 

 보기글을 보니 앞쪽에는 '강제할'이라 적었고, 바로 뒤에는 '강제적으로'라 적었습니다. 왜 이렇게 한쪽에서는 '-적'을 붙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적'을 붙이지 않을까요. 이렇게 적어도 되고 저렇게 적어도 되는 셈일까요.

 

 ┌ 강제적 제재 효과 → 억지로 누른 보람 / 힘으로 누른 보람 / 억누른 보람

 └ 강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 억지로 이루어졌다

 

 지난날 일본제국주의는 우리 나라를 잡아먹은 다음 '강제동원'과 '강제징용'과 '강제부역'을 일삼았습니다. 우리가 바라지 않았으나 힘으로 내리누르면서 들볶고 괴롭혔습니다.

 

 학교를 다니며 역사를 배우는 동안 '강제'라는 말을 숱하게 들었습니다. 이 낱말을 들을 때마다 '참 몹쓸 짓을 시켰구나' 하고 생각하는 한편, '강제'란 어떤 매무새를 가리키는지 궁금하곤 했습니다.

 

 나중에 국어사전을 뒤적이며 뜻을 헤아리니, "억지로 시킴"이 '강제'입니다. 이 말뜻을 찾아보고 나서야 비로소, 왜 '강제동원'이나 '강제징용'이라 하는지 깨닫습니다. "억지로 끌어내어 시키는 일", "억지로 붙잡아 부려먹는 노릇"이라는 소리였거든요.

 

 그때나 이제나 마찬가지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처음부터 역사든 문학이든 사회든 정치이든, 한결 환하게 뜻과 느낌이 드러날 낱말을 골라서 가르치고 배울 수 있다면, 역사고 문학이고 사회고 정치이고 좀더 싱그러우면서 넉넉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손쉬운 말이 더 넉넉하다고는 따로 말할 수 없을는지 모르나, 손쉽지 않은 말이 더 넉넉하리라고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일부러 어렵게 쓰는 낱말과 구태여 어렵게 비트는 말결이 한결 넉넉하거나 따뜻하다고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 강제 노동 → 억지로 시키는 일

 ├ 강제 노역 → 억지로 시키는 일 / 억지로 부려먹는 일

 ├ 강제 동원 → 억지로 끌어들이기 / 억지로 끌어내기

 ├ 강제 모병 → 억지로 모은 군인 / 억지로 군인 모으기

 └ 강제로 일을 시키다 → 억지로 일을 시키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만, 이런 말투를 털어내고 저런 말투를 쓰자고 하는 일을 억지로 소매를 붙잡아 끌어당기며 시킬 수 없습니다. 억지로 외워서 쓰게 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녹아들어야 하고, 스스로 깨달아야 하며, 스스로 움직여야 합니다.

 

 스스로 애쓰지 않으면서 옳고 바르게 살 수 없습니다. 스스로 힘쓰지 않는데 삶이 아름다워질 수 없습니다. 스스로 마음을 바쳐야 생각과 삶과 말이 바르고 아름답게 거듭납니다. 스스로 땀을 흘리고 품을 들여야 넋과 매무새와 슬기가 빛이 납니다.

 

 그러고 보면, 아이들한테 가르친다는 영어 또한, 학교에서 억지로 가르치려 한대서 가르쳐지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가르치고, 어린이집 꼬맹이한테 가르친대야 가르쳐지겠습니까. 초등학교에 '잉글리쉬 존'을 만들고 어마어마한 돈을 퍼부어 동네마다 '잉글리쉬 타운'을 뚝딱뚝딱 지어 본대야 영어가 우리 삶으로 스며들까요. 외려 어설픈 겉치레와 겉멋만 나돌게 됩니다. 쓰잘데기없는 데에서 영어가 튀어나오고, 어줍잖은 말잔치만 늘고 맙니다.

 

 배운 이들은 세미나니 포럼이니 콜로키움이니 하고 말씀하십니다만, 이런저런 '이야기마당'이 어떻게 다를까요. 다르기나 할까요. 왜 이렇게 바깥말만 잔뜩 끌어당겨서 억지로 쓰려고 하나요.

 

 스스로한테 말굴레를 씌우고, 스스로한테 이름굴레를 채우며, 스스로한테 권력이라는 굴레에 갇히게 합니다. 우리는 굴레가 아닌 사랑을 즐길 노릇이고, 따스함을 펼칠 노릇이며, 믿음을 심을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을 홀가분하게 놓아 주면서, 생각과 말을 고루 홀가분하게 놓아 줄 수 있기를 꿈꾸어 봅니다.

 

ㄴ. 강제적으로 연행되어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 때에도 도공이나 학자, 기술자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많은 조선인이 강제적으로 연행되어 갔다 ..  《강재언,김동훈/하우봉,홍성덕 옮김-재일 한국ㆍ조선인―역사와 전망》(소화,2005) 22쪽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侵略) 때에도"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으로 쳐들어왔을 때에도"로 다듬고, "일반(一般) 백성(百姓)"은 "여느 사람들"로 다듬습니다. '연행(連行)되어'는 '붙들려'나 '붙잡혀'나 '사로잡혀'로 손질합니다.

 

 ┌ 강제적으로 연행되어

 │

 │→ 억지로 붙들려

 │→ 우격다짐으로 붙잡혀

 │→ 가기 싫어도 이끌려

 │→ 뜻하지 않게 사로잡혀

 └ …

 

 한자말 '연행' 뜻풀이는 "강제로 끌고 가다"입니다. 그렇다면, "강제적으로 연행되어"라 적으면 겹말이 되고 맙니다. 아무래도 글쓴이 또는 옮긴이는 '강제적'과 '연행'이 뜻이 겹치는 줄을 깨닫지 못했으리라 봅니다. 그리고, 한국말을 쓰는 우리들 가운데에도 두 낱말을 나란히 쓰는 일은 올바르지 않은 줄 깨닫지 못하리라 봅니다.

 

 ┌ 강제로 잡혀 갔다

 └ 연행되어 갔다

 

 '강제'라는 한자말을 쓰고 싶다면 "강제로 잡혀 갔다"로 적어 줍니다. '연행'이라는 한자말을 넣고 싶다면 "연행되어 갔다"로 적어 줍니다. 그런데, 일본이 조선으로 쳐들어와 조선사람을 '연행해' 갔다고 하면 좀 안 어울립니다. 차라리 두 가지 낱말 모두 털어내고 "억지로 붙잡혀 갔다"라든지 "우격다짐으로 붙잡아 갔다"처럼 고쳐쓸 때가 한결 낫지 않으랴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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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30 18:04ⓒ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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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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