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쓴 겹말 손질 (66) 스케일이 큰

[우리 말에 마음쓰기 672] '주장하기'와 '말하기'

등록 2009.06.17 10:51수정 2009.06.17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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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주장하듯 말했습니다

 

.. 그러자 어머니가 주장하듯 말했습니다 ..  《사티쉬 쿠마르/서계인 옮김-사티쉬 쿠마르》(한민사,1997) 13쪽

 

 내 뜻을 밝히는 일이 '주장'이라고 배웠습니다. 국민학교 때부터 이 말을 들었는데, 다른 이 생각을 귀담아듣지 않고 저 하고픈 말만 하는 이들한테 흔히 '주장'이 세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 주장(主張)

 │  (1) 자기의 의견이나 주의를 굳게 내세움

 │   - 정당한 주장 / 터무니없는 주장 /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다

 │

 ├ 어머니가 주장하듯 말했습니다

 │→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 어머니가 목소리를 높여 말했습니다

 │→ 어머니가 외치듯 말했습니다

 └ …

 

 그런데, 제 생각을 밝히는 일은 말 그대로 "제 생각 밝히기"가 아닐까요. "내 생각을 밝힌다"고 말해도 넉넉하지 않으랴 싶고, "내 뜻을 밝힌다"든지 "내 마음을 밝힌다"라 하여도 잘 어울립니다.

 

 ┌ 정당한 주장 → 올바른 생각

 ├ 터무니없는 주장 → 터무니없는 이야기

 └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다 → 제 말을 그럴싸하게 둘러대다

 

 우리한테는 '말'이 있고 '이야기'가 있습니다. '생각'과 '뜻'이 있습니다. '마음'하고 '느낌'이 있으며, '넋'과 '얼'이 있습니다.

 

 "자, 네 주장을 펼쳐 봐"라 할 수도 있지만, "자, 네 생각을 펼쳐 봐"라 하거나 "자, 네 이야기를 펼쳐 봐"라 하면 한결 낫습니다. "네 뜻을 펼쳐 보"라고 하거나, "네 마음을 펼쳐 보"라고 하여도 그지없이 알맞습니다.

 

 

ㄴ. 큰 스케일

 

..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기차로 또 한 번 갈아타서 도착한 드골 공항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큰 스케일을 가지고 있었다 ..  《백성현-당신에게 말을 걸다》(북하우스,2008) 241쪽

 

 '도착(到着)한'은 '다다른'이나 '닿은'으로 손질합니다. "스케일을 가지고 있었다"는 "스케일이었다"로 고쳐 줍니다.

 

 ┌ 스케일(scale)

 │  (1) 일이나 계획 따위의 틀이나 범위. '규모', '축척', '크기', '통'으로 순화

 │   - 스케일이 큰 계획 / 스케일이 작은 주옥같은 단편 소설

 │  (2) 인물의 도량

 │   - 스케일이 큰 인물

 │

 ├ 엄청나게 큰 스케일을 가지고 있었다

 │→ 엄청나게 컸다

 │→ 엄청나게 큰 곳이었다

 │→ 엄청나게 커서 놀랐다

 │→ 엄청나게 커서 입이 쩍 벌어졌다

 └ …

 

 국어사전에 영어 '스케일'이 버젓하게 실리면서 낱말뜻도 두 가지 실립니다. 그러나 첫 뜻은 고쳐써야 할 낱말로 풀이를 하고, 둘째 뜻은 '도량(度量)'과 같다고 적어 놓습니다. 다시 한 번 '도량'을 찾아봅니다. 모두 네 가지 뜻이 있다고 하는 한자말인데, 이 자리에서는 "사물을 너그럽게 용납하여 처리할 수 있는 넓은 마음과 깊은 생각"이구나 싶습니다. 그러니까 '스케일 (2)'은 "넓은 마음과 깊은 생각"으로 쓰이는 셈입니다.

 

 ┌ 스케일이 큰 계획 → 크기가 큰 계획 → 큰 계획

 └ 스케일이 작은 → 크기가 작은 / 작은

 

 오늘날 사람들 말씀씀이를 가만히 보면, 나 스스로 바로 이 자리에서 알맞게 말을 하는지, 아니면 엉터리로 말을 하는지 잘 살피지 못하고 있습니다. 둘레에서 알맞게 다스려 주는 사람도 없기는 하지만, 스스로 내 말투와 글투를 옳게 가다듬거나 추스르려는 마음을 품지 못합니다.

 

 스스로 국어사전을 살펴보는 일이 드물고, 여러 가지 책을 뒤적이면서 말을 익히지 못합니다. 글쓰기를 다루는 책이 제법 나오고는 있으나, 논술시험 틀거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더욱이, 겉보기로는 말끔하면서 솜씨 좋게 생각을 나타내는 듯한 길은 보여주지만, 정작 속알맹이가 알차도록 글쓰는 길은 밝히지 못하는 가운데 우리 삶을 담는 말이나 우리 얼을 담는 글을 다루지는 못합니다.

 

 그러니까, 겉으로 예쁘장하게 보이도록 하는 글치레에만 마음을 쓰거나 마음을 빼앗기는 셈입니다. 글줄 하나 야무지게 다루는 데에는 마음을 못 쓰는 셈입니다. 마음을 어디에 어느 만큼 써야 한결 나은가를 알아채지 못하는 셈이고, 글 하나에 무엇을 담거나 싣는지를 느끼지 못하는 셈입니다.

 

 ┌ 스케일이 큰 인물

 │

 │→ 마음그릇이 큰 사람

 │→ 통이 큰 사람

 │→ 그릇이 큰 사람

 │→ 마음이 넓은 사람

 │→ 마음이 바다 같은 사람

 │→ 마음이 하늘 같은 사람

 └ …

 

 먹고사는 데에 지나치게 매인 탓일까요. 돈셈 하는 데에만 너무 매달리는 탓일까요. 남 앞에 보이는 모습이 어떠할까는 근심하지만, 나 스스로 내 삶을 돌아보는 자리는 근심하지 않는 탓일까요. 남 눈이 바라보는 내 겉모습은 두려워해도, 내 눈으로 들여다보는 내 속모습은 두려워하지 않는 탓일까요.

 

 마음그릇 알차게 가꿀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밭 넉넉히 돌볼 수 있으면 반갑겠습니다. 마음바탕 알뜰히 추스를 수 있으면 기쁘겠습니다. 마음자리 아름다이 살찌울 수 있으면 고맙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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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7 10:51ⓒ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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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말 #중복표현 #우리말 #국어순화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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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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