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쓰니 아름다운 '우리 말' (81) 새노래

[우리 말에 마음쓰기 688] '봄눈'과 '춘설'

등록 2009.07.05 10:30수정 2009.07.0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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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봄눈

 

.. 햇살 환한 아침에 눈이 옵니다. 춘설입니다. 눈은 봄 햇살 속을 나비처럼 팔랑대다가 채 땅에 닿기도 전에 공중에서 스러집니다. 쥐똥나무 울타리 너머로 개울이 보입니다. 개울가에 키 큰 풀들은 봄눈 속에서 부드러운 곡선을 만들며 휘어집니다 ..  《정상명-꽃짐》(이루,2009) 111쪽

 

 '설화(雪花)'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이 낱말이 곱고 예쁘다고 여기는 분이 있습니다. 소리마디가 곱고 예쁘다고 느끼는지 낱말뜻이 곱고 예쁘다고 느끼는지는 잘 모릅니다. 다만, '설화'란 '눈송이'나 '눈꽃'을 한자로 옮겨 적은 낱말일 뿐입니다.

 

 그러고 보면, 토박이말 '눈송이'나 '눈꽃' 또한 얼마든지 곱거나 예쁘다고 느낄 만합니다. 굳이 한자말이라고 해서 더 곱거나 예쁠 까닭이 없습니다. 흔하고 너르게 쓰는 말마디 '눈-눈발-눈꽃-눈길-눈밭-눈송이-눈싸움-눈구름'이라 하여 곱지 않다거나 예쁘지 않다 할 까닭이 없습니다.

 

 ┌ 봄눈 : 봄철에 오는 눈

 ├ 춘설(春雪) = 봄눈

 │   - 수차나 이른바 춘설이 번연히 내리며

 │

 ├ 춘설입니다 (x)

 └ 키 큰 풀들은 봄눈 속에서 (o)

 

 보기글을 들여다봅니다. 글쓴이는 처음에 "눈이 옵니다" 하고 말합니다. 그러다가 "춘설입니다" 하고 읊습니다. 다시금 "눈은 봄 햇살"에서 어찌어찌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다가는 "봄눈"이라고 욉니다.

 

 ― 눈이 오다 → 춘설 → 봄햇살 → 봄눈

 

 철은 봄이라지만 눈이 왔다고 합니다. 봄맞이 눈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봄보냄 눈이라고 해야 할까 싶은데, 곰곰이 헤아려 보면, 우리들은 봄을 봄이라 않고들 있습니다. 여름 또한 여름이라 않고들 있습니다. 으레 '춘하추동(春夏秋冬)'을 들먹입니다. '봄여름가을겨울'을 들먹이지 않습니다. 이러다 보니, 국어사전에 '춘하추동'은 실려도 '봄여름가을겨울'이 실리지는 않습니다.

 

 ┌ 춘계 / 춘화

 └ 봄철 / 봄꽃

 

 봄을 맞이한 철이니 '봄철'입니다. 봄에 피어나는 꽃이니 '봄꽃'입니다. 봄에 부는 바람이니 '봄바람'이며, 봄을 맞이해 잔치를 벌이니 '봄잔치'입니다. 이에 따라 여름에 내리쬐는 볕이면 '여름볕'이고, 가을에 비치는 햇살이면 '가을햇살'입니다. 겨울에 자라는 나무라 '겨울나무'이고, 봄에 입는 옷이기에 '봄옷'입니다. 여름이라 '여름마실'을 하고, 가을이니 '가을놀이'를 즐깁니다.

 

 ┌ 봄볕 / 봄햇살 / 봄나무 / 봄옷 / 봄잎 / 봄마실 / 봄놀이

 ├ 여름볕 / 여름햇살 / 여름나무 / 여름옷 / 여름잎 / 여름마실 / 여름놀이

 ├ 가을볕 / 가을햇살 / 가을나무 / 가을옷 / 가을잎 / 가을마실 / 가을놀이

 └ 겨울볕 / 겨울햇살 / 겨울나무 / 겨울옷 / 겨울잎 / 겨울마실 / 겨울놀이

 

 흐름을 읽는 말입니다. 아니, 흐름을 고스란히 살리는 말입니다. 흐름을 타는 말입니다. 아니, 흐름이 살며시 담기는 말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발자국 그대로 말입니다. 우리가 어깨동무하는 그대로 말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대로 말이며, 우리가 마음으로 품는 그대로 말입니다.

 

 ┌ 수차나 이른바 춘설이 번연히 내리며

 │

 │→ 여러 차례나 이른바 봄눈이 갑자기 내리며

 │→ 여러 날이나 이른바 봄눈이 난데없이 내리며

 └ …

 

 우리 말은 나날이 발돋움하면서 아름답고 튼튼하게 뿌리내릴 수 있습니다. 우리 말은 날마다 더러움에 찌들고 뒤틀리면서 뒷걸음치거나 엉터리가 되어 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 하기 나름이고, 우리 살기 나름입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꾸리는 삶이 아름다울 때 우리 말은 시나브로 아름다움이라는 옷을 입고, 우리가 오늘내일 일구는 삶이 어지럽고 뒤숭숭할 때 우리 말은 차츰차츰 꾀죄죄함이라는 옷을 걸칩니다.

 

 내 얼굴일 뿐 아니라 내 넋인 말입니다. 내 모습일 뿐 아니라 내 마음밭인 말입니다. 내 넋을 그럴싸하게 겉바르고 싶다면 내 말 또한 그럴싸하게 겉바르게 되고, 내 모습을 유행에 따라 겉꾸미고 싶다면 내 말 또한 내 뿌리를 잃고 어지럽고 떠돌며 겉꾸미고 맙니다.

 

 

ㄴ. 새노래

 

 새로 나오는 노래를 듣고, 예전에 나온 노래를 듣습니다. 테이프에 담긴 예전 노래를 듣고, 인터넷으로 새로운 노래를 듣습니다. 예전 또는 옛날에 나온 노래라 하여 '헌노래'라 하는 일이란 없습니다. 그저 '옛노래'일 뿐입니다. 새로 나오는 노래는 '새노래'입니다.

 

 ┌ 새노래 : 새로 지은 노래

 │   <재미있는 새노래가 하나 나왔어 / 새노래도 좀 들어 볼까>

 ├ 옛노래 : 예전에 지은 노래

 │   <옛노래라서 모르겠구나 / 옛노래도 새노래처럼 괜찮지 않니>

 │

 ├ 신곡(新曲) : 새로 지은 곡

 │   - 신곡을 내다 / 신곡을 발표하다

 └ 구곡(舊曲) : 예전부터 있는 음악의 곡조

 

 국어사전을 뒤적이면 '신곡'이라는 낱말이 하나 실려 있습니다. 그러나 '새노래'라는 낱말은 실려 있지 않습니다. 예전에 나온 노래라 하는 '옛노래'는 실려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구곡'이라는 낱말은 실려 있습니다.

 

 그나마 '헌책'이라는 낱말은 하나 실려 있습니다. 그래도 '옛책'이라는 낱말은 안 실립니다. 어쩌면 마땅한 노릇일 텐데, '새책'이라는 낱말 또한 안 실립니다. 이 또한 마땅한 노릇일는지 모르나, '신간(新刊)'과 '구간(舊刊)'이라는 낱말은 버젓이 실립니다.

 

 ┌ 새책 / 새노래 / 새마음 / 새일 / 새사람 / 새길

 └ 헌책(옛책) / 옛노래 / 옛마음 / 옛일 / 옛사람 / 옛길

 

 우리는 왜 우리 넋에 따라 우리 말을 새롭게 빚어내지 못하는가 궁금합니다. 아니, 우리한테 있는 우리 넋이란 우리 힘과 슬기로 우리 말마디를 빚어내는 데에는 하나도 없는지 궁금합니다.

 

 국어학자들은 머리가 굳어서 새 낱말을 새 생각으로 빚어내지 못한다 한다면, 바로 우리들부터, 아니 우리 스스로 우리 깜냥껏 우리 삶을 담아낼 우리 낱말을 알뜰살뜰 일구어 내면 넉넉하지 않으랴 싶습니다. 어떤 지식 있는 사람한테 맡길 말이 아니라, 이 땅에서 하루하루 힘차게 살아가는 우리 스스로 맡을 노릇이 아니랴 싶습니다.

 

 새노래를 즐기고 새책을 읽으며 새마음으로 다독이는 가운데 새일을 찾고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한편, 꿋꿋하게 새길을 걷는 우리 새삶이라면 더없이 아름답지 않을까 싶습니다. 옛노래 또한 기쁘게 즐기고 옛책 또한 고맙게 읽으며 옛마음, 또는 첫마음을 알차게 보듬는 가운데 옛일을 고이 되새기며 옛사람 얼을 되살피는 한편, 옛길이 어떠한 대목에서 좋고 궂었는지를 짚을 수 있으면 그지없이 훌륭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새말 / 새뜻 / 새얼 / 새님 / 새터

 └ 옛말 / 옛뜻 / 옛얼 / 옛님 / 옛터

 

 새말을 일구는 몫은 우리한테 있습니다. 옛말을 지키는 몫도 우리한테 있습니다. 새뜻을 가꾸는 사람은 바로 우리입니다. 옛뜻을 북돋우는 사람 또한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새로우면서 처음 그대로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9.07.05 10:30ⓒ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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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쓰기 #토박이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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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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