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320)

― '삶의 자리', '삶의 자세', '진정한 삶의 시인' 다듬기

등록 2009.07.04 14:59수정 2009.07.04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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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삶의 자리

 

.. 피난짐을 내려놓은 그들은 산허리에 막을 치고 삶의 자리를 만들었다 ..  《이범선-전쟁과 배나무》(관동출판사,1975) 46쪽

 

 '삶' 뒤에 토씨 '-의' 붙이는 일이 잦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워낙 쓸 만하니까 이렇게 쓰고 있을까요. 얼결에 버릇이 되었을까요. 그냥저냥 쓰는 말일까요.

 

 잠을 잘 자리를 이야기할 때면 '잠자리'라 하지 '잠의 자리'라 하지 않습니다. 앉거나 누워서 쉴 자리를 이야기할 때면 '쉼터'나 '쉴 자리'라 하지 '쉼의 자리'나 '쉼의 터'라 하지 않습니다.

 

 ┌ 삶의 자리를 만들었다

 │

 │→ 살아갈 자리를 만들었다

 │→ 삶터를 만들었다

 │→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 …

 

 보기글에서는 '삶'이나 '자리' 가운데 한 가지 낱말만 살리면 어떨까 싶습니다. '삶'을 살리면 '삶터'로 다듬고, '자리'를 살리면 '살아갈 자리'로 다듬습니다.

 

 뜻을 살피면서 '보금자리'로 다듬어도 잘 어울립니다. 살아갈 곳, 살아갈 터, 살아갈 터전이니, 이러한 모습 그대로 말을 하고 글을 씁니다. 이러한 느낌과 이야기 그대로 생각을 나누고 마음을 주고받습니다.

 

 

ㄴ. 삶의 자세

 

.. 어머니는 무척이나 성실하고 근면했으며 절약이 몸에 밴 분이었다. 그 삶의 자세는 어느 누구도 따를 수 없을 정도였다 ..  《이숙의-이 여자, 이숙의》(삼인,2007) 25쪽

 

 "성실(誠實)하고 근면(勤勉)했으며"는 '부지런하고'나 '바지런하고'로 다듬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참되고 부지런하고"로 다듬어도 괜찮습니다. "절약(節約)이 몸에 밴"은 "아껴쓰기가 몸에 밴"이나 "알뜰살뜰 살아가는"으로 풀어내 봅니다. "따를 수 없을 정도(程度)였다"는 "따를 수 없었다"로 손질합니다.

 

 ┌ 그 삶의 자세는

 │

 │→ 살아가시는 모습은

 │→ 살아가는 매무새는

 │→ 삶 매무새는

 │→ 삶본새는

 └ …

 

 참되게 살아가는 분이 곁에 있으면 참된 모습을 보고 배웁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히 배울 수 있지만 한두 가지 모습만 배울 수 있습니다. 알뜰살뜰 살아가는 분이 둘레에 있으면 알뜰살뜰한 모습을 보고 배웁니다. 빈틈없이 구석구석 배울 수 있지만 몇 가지 모습만 배울 수 있어요. 올곧게 살아가는 분이 가까이 있으면 올곧은 모습을 보고 배웁니다. 비록 그분과 똑같이 살아가지는 못한다고 해도 우리 삶은 차츰차츰 한 가지 두 가지 새로워지고 거듭납니다.

 

 삶을 배우고 생각을 배우며 말을 배웁니다. 삶을 가다듬고 생각을 가다듬으며 말을 가다듬습니다. 삶을 갈고닦고 생각을 갈고닦으며 말을 갈고닦습니다. 차츰차츰 북돋우는 삶이요, 차근차근 일구는 생각이며, 하나둘 보듬는 말입니다.

 

ㄷ. 진정한 삶의 시인

 

.. 민숙이는 잡지나 신문에 이름이 나는 시인은 아닐지언정, '인간 본성을 옹호하는 바위 같은' 진정한 삶의 시인이 된 것 같다 ..  《장영희-문학의 숲을 거닐다》(샘터사,2005) 148쪽

 

 "인간(人間) 본성(本性)"은 "사람됨"이나 "사람다움"으로 다듬고, '옹호(擁護)하는'은 '지키는'으로 다듬습니다. '진정(眞正)한'은 '참된'이나 '참다운'으로 손질하고, "시인이 된 것 같다"는 "시인이 된 듯하다"나 "시인이 되었구나 싶다"로 손질해 줍니다.

 

 ┌ 진정한 삶의 시인이

 │

 │→ 참된 삶을 아는 시인이

 │→ 참된 삶을 깨달은 시인이

 │→ 참된 삶을 가꾸는 시인이

 │→ 참된 삶을 다스리는 시인이

 └ …

 

 삶을 모르는 시인이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글쎄, 있을까 궁금하지만, 틀림없이 삶을 모르는 시인이 있으리라 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삶을 제대로 알거나 옳게 깨우치는 시인이 틀림없이 있을 테지요.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볼 줄 아는 시인만큼,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볼 줄 모르는 시인이 있다고 느낍니다. 사람을 꾸밈없이 사랑할 줄 아는 시인만큼, 사람을 믿지 못하며 짓누르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시인이 있으리라 봅니다.

 

 ┌ 참되이 살 줄 아는 시인이

 ├ 참다이 살아가는 시인이

 └ …

 

 저마다 살아가는 매무새대로 시를 쓰고 사람을 만난다고 느낍니다. 누구나 내딛는 발자국대로 사랑을 노래하고 일을 한다고 느낍니다. 언제라도 어울리는 몸짓 그대로 말을 하고 자연을 부대낀다고 느낍니다.

 

 참되이 살 줄 안다면 참되이 살아가는 마음결과 몸결이 고스란히 시에 담기도록 할 테고, 참되이 살 줄 모른다면 참되이 살아가지 못하는 마음결과 몸결이 낱낱이 시에 담기도록 할 테지요. 아름다이 살 줄 안다면 아름다이 살아가는 마음가짐과 몸가짐이 한 올 두 올 시에 담기도록 할 테며, 아름다이 살아갈 줄 모른다면 아름다이 살아가지 못하는 마음가짐이며 몸가짐이며 차곡차곡 시에 담기고 말 테지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9.07.04 14:59ⓒ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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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씨 ‘-의’ #-의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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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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