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43)

[우리 말에 마음쓰기 742] '이어도가 어떤 존재였는지', '제 존재 자체' 다듬기

등록 2009.08.29 14:39수정 2009.08.29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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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읽기 - 글쓴이가 드리는 말
[우리 말에 마음쓰기] ['-의' 없애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적' 없애야 말 된다], 이 세 흐름에 따라서 쓰는 '우리 말 이야기'는,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있는 모습을 되돌아보면서 '우리 생각을 열'고 '우리 마음을 쏟'아, 우리 삶과 생각과 말을 한 동아리로 가다듬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한자라서 나쁘다'거나 '영어는 몰아내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우리 삶과 생각과 말을 어지럽히는 수많은 걸림돌이나 가시울타리 가운데에는 '얄궂은 한자'와 '군더더기 영어'가 꽤나 넓게 차지하고 있습니다. 쓸 만한 말이라면 한자이든 영어이든 가릴 까닭이 없고, '우리 말'이란 토박이말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쓸 만한지 쓸 만하지 않은지를 생각하지 않으면서 한자와 영어를 아무렇게나 쓰고 있습니다. 제대로 우리 말마디에 마음을 쓰면서 우리 말과 생각과 삶을 가꾸지 않습니다. [우리 말에 마음쓰기]라는 꼭지이름처럼, 아무쪼록 '우리 말에 마음을 쓰면'서 우리 생각과 삶에 마음을 쓰는 이야기로 이 연재기사를 읽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ㄱ. 이어도가 어떤 존재였는지

 

.. 전설이나 민요를 음미해 보면, 토박이들에게 이어도가 어떤 존재였는지 쉽게 알 수 있다 .. <섬에 홀려 필름에 미쳐>(김영갑,하날오름,1996) 196쪽

 

 "전설(傳說)이나 민요(民謠)를 음미(吟味)해 보면"은 "옛이야기나 옛노래를 곱십어 보면"이나 "옛이야기나 옛노래를 가만히 헤아리면"으로 다듬어 줍니다.

 

 ┌ 이어도가 어떤 존재였는지

 │

 │→ 이어도가 어떤 섬이었는지

 │→ 이어도가 어떤 곳이었는지

 │→ 이어도가 어떤 땅이었는지

 │→ 이어도가 어떤 데였는지

 │→ 이어도가 어떤 자리였는지

 └ …

 

 섬은 섬인데 여느 섬이 아니라는 뜻에서 "이어도가 어떤 존재였는지"처럼 적었구나 싶습니다. 그저 흔한 섬이 아니었다고 느끼고 있었기에 '섬'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존재'라고 말하고 싶었구나 싶습니다.

 

 그러면 '섬'이 아닌 '땅'이라 할 수 있을 텐데. 땅도 싫으면 '곳'이나 '데'라 하면 될 텐데. 이런 낱말도 내키지 않으면 '자리'라 하면 되는데.

 

 그렇지만,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니며 그도 아닙니다. 이런 낱말도 저런 낱말도 그런 낱말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로지 '존재'여야 한다는 말투가 되고 맙니다. 그예 '존재'라고 가리켜 주어야 남다르다고 생각하고 맙니다. 우리 말에는 아무런 빛깔도 냄새도 느낌도 담기지 않는 듯 여깁니다. 우리 말에는 아무런 느낌이나 넋이나 얼을 실어낼 수 없는 듯 헤아립니다.

 

ㄴ. 제 존재 자체가

 

.. "아까도 말했어요, 그거." "뭐든 확실하지 않은 건 참을 수가 없어." "그럼 역시, 제 존재 자체가 선배한테는 이해되지 않을 거예요. 왜냐면 전 평생 회색이었으니까." .. <PONG PONG (3)>(오자와 마리/서수진 옮김,대원씨아이,2009) 120쪽

 

 "확실(確實)하지 않은 건"은 "또렷하지 않으면"으로 다듬습니다. '역시(亦是)'는 '어쩔 수 없이'나 '아무리 생각해도'나 '어떻게 해도'나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로 손질하고, "이해(理解)되지 않을 거예요"는 "알 수 없을 테지요"나 "받아들일 수 없을 테지요"로 손질해 줍니다. '평생(平生)'은 '이제까지'나 '여태껏'으로 손보고, '회색(灰色)'은 '잿빛'으로 손봅니다.

 

 ┌ 제 존재 자체가

 │

 │→ 저라는 사람이

 │→ 저 같은 사람이

 │→ 저처럼 사는 사람이

 └ …

 

 남자로 태어나서 살아왔으나 스스로 남자이기보다는 여자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하는 한편, 남자 아닌 여자로 살아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거꾸로, 여자로 태어나서 살아왔으나 스스로 여자이기보다는 남자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가 하고 생각하는 가운데, 여자 아닌 남자로 살아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국이라고 하는 나라에서는 이 두 갈래 사람을 거의 안 받아들입니다. 학교에서 '다 다른 사람'을 옳게 가르치지 못하기도 하지만, 아이를 낳아 키우는 어버이부터 다 다른 사람을 다 다르게 받아들이게끔 이끌거나 가르치지 못합니다.

 

 ┌ 저처럼 남자를 좋아하는 사람이

 ├ 저같이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가

 └ …

 

 누군가는 얼굴이 예쁘장합니다. 누군가는 얼굴이 얽습니다. 예쁘고 안 예쁘고를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만, 얼굴만으로 사람을 따지거나 잴 수 없습니다. 살빛으로도 사람을 따지거나 잴 수 없으며, 마음밭만으로는, 또 키나 몸매만으로는, 또 가방끈이나 목소리만으로는 한 사람을 함부로 말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으니까요.

 

 ┌ 제 삶이

 ├ 제가 살아온 모습이

 ├ 제가 살아가는 모습이

 └ …

 

 나물로만 끼니를 잇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기를 즐겨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물과 고기 모두 즐겨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다 손사래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자전거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며, 자가용을 몰고자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비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눈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며 무지개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가운데 구름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더 좋거나 나은 삶이란 없습니다. 저마다 제가 태어난 자리에 알맞게 살아갈 뿐입니다. 힌두사람은 힌두사람대로 삽니다. 서양사람은 서양사람대로 삽니다. 한겨레는 한겨레대로 삽니다. 한겨레붙이도 고을마다 삶자락이 다르고, 한 고을이라 할지라도 집마다 삶결이 다릅니다. 한집에서도 식구마다 삶매무새가 다릅니다. 모두 똑같이 맞출 수 없고, 똑같이 맞아떨어지게끔 다그칠 수 없습니다.

 

 누구나 있는 그대로 살아가야 하며, 있는 그대로 살아가도록 북돋아야지 싶습니다. 있는 그대로 말하며, 있는 그대로 말하도록 이끌어야지 싶습니다. 있는 그대로 글을 쓰고, 있는 그대로 글을 쓰게끔 도와야지 싶습니다. 제 넋과 얼을 고이 담고 넉넉히 나누는 어깨동무로 나아가도록.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9.08.29 14:39ⓒ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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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한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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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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