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궂은 한자말 덜기 (82) 갹출

[우리 말에 마음쓰기 746] '갹출'과 '각출'과 '나누어 내기'

등록 2009.09.04 12:24수정 2009.09.04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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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갹출 : 지원금을 갹출

.. 액수는 얼마 되지 않지만 JOMAS는 과거에 UNHCR에 지원금을 갹출한 적이 있다. 우리 조직은 일본인 신부나 수녀의 활동을 원조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  《소노 아야코/오근영 옮김-왜 지구촌 곳곳을 돕는가》(리수,2009) 191쪽


'액수(額數)'는 '돈'으로 다듬고, '지원금(支援金)'은 "지원하는 돈"이나 "돕는 돈"이나 "도와주는 돈"으로 다듬으며, '과거(過去)'는 '지난날'이나 '예전'으로 다듬습니다. '조직(組織)'은 '모임'으로 손질하고, "일본인 신부나 수녀의 활동(活動)을"은 "일본 신부나 수녀가 하는 일을"로 손질하며, "원조(援助)하는 것이 목적(目的)이므로"는 "돕는 일을 하려고 만들었으므로"나 "돕는 일을 하고 있으므로"로 손질해 줍니다.

 ┌ 갹출(醵出) : 같은 목적을 위하여 여러 사람이 돈을 나누어 냄.
 │   '나누어 냄', '추렴', '추렴함'으로 순화
 │   - 행사 비용 갹출 / 의연금 갹출 / 모인 사람들이 갹출하여 구제 기금을 마련하였다
 ├ 각출(各出)
 │  (1) 각각 나옴
 │  (2) 각각 내놓음
 │   - 재벌 기업마다 수재 의연금의 각출을 약속하였다
 │
 ├ 지원금을 갹출한 적이
 │→ 지원금을 나누어 낸 적이
 │→ 도와줄 돈을 모아서 보낸 적이
 │→ 돈을 모아서 도와준 적이
 │→ 돈을 그러모아 보탠 적이
 └ …

'갹출'과 함께 "따로따로 내놓다"를 뜻하는 한자말 '각출(各出)'이 있습니다. 적잖은 분들은 '갹출'로 적어야 할 자리에 '각출'로 잘못 적곤 합니다. '갹' 소리가 나는 한자가 있느냐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이 많고, '각출'이라는 한자말을 썼다고 뜻이나 쓰임새에 어긋나지는 않는다고 여기는 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한자말 '각출'을 쓰는 분들은 하나같이 "돈을 여럿이 나누어 냄"을 나타내려고 합니다. 얼핏 보자면 뜻이나 쓰임새가 비슷할 테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뜻과 쓰임새가 사뭇 다르고, '갹출'로 적어야 할 자리에 '각출'을 넣어서는 알맞지 않습니다.

 ┌ 행사 비용 갹출 → 행사에 쓸 돈 나누어 냄
 ├ 의연금 갹출 → 의연금 나누어 냄 / 의연금 모아서 냄
 └ 모인 사람들이 갹출하여 → 모인 사람들이 나누어 내서

신문이나 방송에서 '우리 말 바로쓰기'를 하자고 이야기하면서 '갹출'과 '각출' 문제를 퍽 자주 다룹니다. 이 이야기를 살피면 하나같이 '각출'로 잘못 쓰지 말고 '갹출'로 올바르게 쓰자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맞기야 맞는 소리라고 느끼는 가운데, '갹'이든 '각'이든 헷갈려 하거나 어지러워 하지 말고, 처음부터 잘못 쓸 일이 없도록 말과 글을 가다듬으면 한결 낫지 않느냐고 느낍니다. "나누어 냄"이라 하고 "따로따로 내놓음"이라 하면 됩니다.

 ┌ 돈을 나누어 냈다
 └ 돈을 따로따로 내놓았다


그런데, '각출' 말뜻을 살피면 "각각 내놓음"으로 적혀 있고, 국어사전에 실린 보기글에는 "재벌 기업'마다' …… 각출을 약속하였다"로 나옵니다. '각각(各各)'은 '따로따로'나 '저마다'를 가리키는 한자말입니다. 그러니까, '-마다'를 붙이고 '각각'을 넣으면 겹말이 됩니다. '-마다'를 덜고 "재벌 기업들은"처럼 적든지, '각각'이든 '저마다/따로따로'를 덜든 해야 올바릅니다.

 ┌ 재벌 기업마다 수재 의연금의 각출을 약속하였다
 │
 │→ 재벌 기업마다 수재 의연금을 나누어 내기로 다짐하였다
 │→ 재벌 기업마다 수재 의연금을 나누어 내기로 하였다
 │→ 재벌 기업마다 수재 의연금을 내기로 하였다
 └ …

한자말 '지양'과 '지향'을 놓고도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습니다. 어느 자리에 '지양'을 써야 올바르고 어느 곳에 '지향'을 써야 알맞춤하다는 이야기가 숱하게 터져나옵니다. 한자말이든 영어이든 일본말이든, 써야 할 곳에 알맞춤하게 써야 할 노릇이고, 넣어야 할 자리에 올바르게 넣어야 합니다.

다만, '지양'과 '지향'이 아니라 '삼가다-꺼리다-멀리하다-안 하다-그만두다' 같은 말마디와 '바라다-나아가다-바라보다-뻗다-가다' 같은 말마디를 넣는다면, 뜻이나 쓰임새를 헷갈릴 일이 없습니다. 잘못 쓸 까닭이 없습니다. 어지럽거나 어수선할 일이 없습니다. 틀리거나 어긋날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아주 쉽고 깨끗하고 알맞게 말을 하고 글을 쓸 수 있지만, 우리 스스로 처음부터 쉬운 길을 버린 셈입니다. 깨끗한 길을 안 보는 셈입니다. 알맞게 뻗어 나갈 길하고는 등을 돌린 셈입니다.

 ┌ -를 도우려고 돈을 보탠 적이 있다
 ├ -를 돕자며 다 함께 돈을 모은 적이 있다
 ├ -에 돈을 보낸 적이 있다
 ├ -에 돈을 모아 보내며 도와준 적이 있다
 └ …

조금씩 마음을 나누면 되지만, 바로 이 '조금'을 나누지 못합니다. 하나하나 마음을 모두면 되지만, 무엇보다 우리 마음을 '하나'씩 모두지 못합니다.

널리 바라보지 못하는 우리들인 한편, 깊이 들여다보지 못하는 우리들입니다. 큰 곳을 둘러보지 못하는 우리들인 가운데, 작은 곳 또한 돌아보지 못하는 우리들입니다.

서로 손을 맞잡는 길로 나아가지 못하고, 함께 어깨동무를 하는 길로 이어가지 못합니다. 홀로 애쓰지도 못하고 여럿이 힘쓰지도 못합니다.

그래도, 아주 조용히 숨결을 잇는 말과 글이라고 느낍니다. 무거운 짐덩이에 눌려 있지만, 한 사람 목소리를 기다리며 한 사람 손길을 바라고 있는 말과 글이라고 느낍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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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말 #한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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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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