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교육적 환경
.. 가장 중요한 교육적 환경은 사람입니다. 사랑과 정성은 최고의 전문성입니다. 부모와 교사,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충만한 삶의 경험은 최상의 교육과정입니다 .. <코뿔소, 쇠뜨기가 뭐야>(잉걸,2003) 10쪽
'중요(重要)한'은 그대로 둘 수 있으나, '큰'으로 다듬어 보아도 괜찮습니다. "사랑과 정성(精誠)"이라 했는데, "사랑과 믿음"이나 "사랑과 땀방울"로 손질해 줍니다. "충만(充滿)한 삶의 경험(經驗)은"은 "넉넉한 삶을 겪을 수 있으면"으로 손봅니다. "최고(最高)의 전문성"은 "가장 빼어난 전문성"으로 고치고, "최상(最上)의 교육과정"은 "가장 훌륭한 교육과정"으로 고쳐 줍니다.
┌ 가장 중요한 교육적 환경은 사람입니다
│
│→ 가장 중요한 교육 환경은 사람입니다
│→ 가장 중요한 교육 터전은 사람입니다
│→ 가장 큰 배움터는 사람입니다
│→ 사람이 가장 큰 배움터입니다
│→ 사람보다 큰 배움터는 없습니다
└ …
아이들을 잘 가르치려고 마음을 기울이는 분들이 하나둘 늘어납니다. 생각해 보면, 오늘날과 같은 교육 얼거리를 갖추지 못했던 지난날에도 어른들은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학교라는 곳이 없었으나, 집과 마을에서 서로서로 스승이 되고 동무가 되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가르치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란 늘 이어져 온 일입니다만, 학교 문을 연 뒤로는 어른들 스스로 가르치는 몫을 교사한테만 떠맡기다 보니까, 자꾸만 엇나가게 되었습니다. 학교가 제도권이 되고, 돈 잘 버는 자격증 따는 곳처럼 나뒹굽니다. 초중고등학교는 대학교 보내는 징검다리 노릇만 합니다.
자연스럽게 가르치고 배우면서 자연스러운 한 사람으로 우뚝 서도록 이끌어야 할 텐데, 자연스럽지 못하게 가르치니까, 지식만 우격다짐으로 쑤셔넣으니까 탈이 나고 말썽이 생깁니다.
자연스럽게 가르치는 삶이라면, 쓰는 말과 글이 자연스럽습니다. 자연스럽게 배우는 삶이라면, 듣고 익히는 말과 글이 자연스럽습니다. 부모 스스로 부모다움을 잃거나 버렸고, 교사 스스로 교사다움을 찾지 않거나 등돌리는 가운데, 아이들은 아이다움과 사람다움을 익히지 못하고 맙니다. 아이들이 받아들일 말과 글이 엉망이 되고 뒤죽박죽이 되어 버립니다.
ㄴ. 장난감이 반드시 교육적일 필요
.. 그러나 모든 장난감이 반드시 교육적일 필요는 없고, 매번 먹는 식사가 건강에 좋은 음식이어야 할 필요도 없다 .. <악셀 담믈러/이미옥 옮김-부모가 사주고 싶은 것 아이가 갖고 싶은 것>(에코리브르,2003) 262쪽
'필요(必要)'는 '까닭'으로 손보고, "매(每)번 먹는 식사(食事)"는 "날마다 먹는 밥"으로 손봅니다. '건강(健康)'은 '몸'으로 손질합니다. '음식(飮食)'은 그대로 두어도 되고, '밥'이나 '먹을거리'로 다듬어도 됩니다.
┌ 교육적일 필요는
│
│→ 교육에 도움이 되어야 하지는
│→ 무언가를 가르쳐야 하지는
│→ 교육에 써야 하지는
│→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어야 하지는
└ …
놀라고 하는 장난감입니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무엇을 배울 수 있거나 어디에 도움이 된다고 해야만 사 주거나 만들어 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서로 즐거우니까 아이들은 놀이를 합니다. 놀이를 하면 어느 힘살이 발돋움하고 뭐에 좋다고 하는 이야기는 부질없습니다.
배고픔을 달래면서 살아갈 힘을 주는 밥입니다. 서로서로 생각과 뜻과 마음을 나누는 말이요 글입니다. 사랑으로 어울리는 사람이고, 믿음으로 껴안는 이웃입니다.
ㄷ. 과연 교육적인 걸까
.. 처음부터 그런 물건을 갖고 올 수 있는 사람에 한해서 해야 했으며 만약 그런 사람의 숫자가 적다고 해서 사서까지 갖고 오도록 하는 것이 과연 교육적인 걸까 .. <김미순-여교사일기>(주간시민출판국,1978) 30쪽
"사람에 한(限)해서"는 "사람한테만"이나 "몇 사람한테만"이나 "사람들만 못박아서"로 다듬습니다. "그런 사람의 숫자가 적다고 해서"는 "그런 사람이 적다고 해서"로 손질합니다. "오도록 하는 것이"는 "오도록 한다고"나 "오도록 하는 일이"로 손보고, '과연(果然)'은 '참으로'로 손봅니다.
┌ 과연 교육적인 걸까
│
│→ 참으로 교육일까
│→ 참말로 교육에 도움이 될까
│→ 참말로 올바른 길일까
└ …
늘 가르치는 자리에 있는 교사입니다. 늘 가르치는 자리에 있기에 아이들한테 훌륭한 마음밥을 꾸준히 나누어 주기도 하지만, 늘 가르치는 자리에 있다는 마음을 잊고 대충대충 날짜만 채우며 달삯을 타 가기도 합니다.
"참 가르침일까?" 하는 물음, "참 올바른 길인가?" 하는 되새김, "참 즐겁게 배울까?" 하는 돌아봄, 이 세 가지를 잘 간직해야지 싶습니다.
교사로서 교사다움이 무엇인가를 곱씹는 매무새를 잃지 않아야, 교사로 서 있으면서 아이들한테 들려주는 말을 한결같이 추스르거나 다독일 수 있습니다. 올곧으며 살가운 말, 아름다우면서 알맞춤한 글을 펼치자면, 스스로 '교사는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를 되묻고 거듭 깨달아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9.12.31 18:43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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