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쓰니 아름다운 '우리 말' (96) 나눔잔치

[우리 말에 마음쓰기 846] '바자-바자회'란 어떤 장터일까

등록 2010.01.26 14:33수정 2010.01.26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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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자와 나눔잔치

.. 당신이 사는 동네나 학교에서도 여기저기 바자가 열리겠지요. 바자는 서로 필요없는 물건을 교환하면서 쓰레기를 줄이며 가계도 절약하는 생활의 지혜입니다 ..  <혼마 마야코/환경운동연합 환경교육센터 옮김-환경가계부>(시금치,2004) 136쪽


'필요(必要)없는'은 '안 쓰는'이나 '묵히고 있는'으로 다듬고, '교환(交換)하면서'는 '바꾸면서'나 '나누면서'로 다듬습니다. "가계(家計)도 절약(節約)하는"은 "살림도 아끼는"이나 "살림돈도 줄이는"으로 손질하고, "생활(生活)의 지혜(智慧)입니다"는 "살아가는 슬기입니다"나 "좋은 일입니다"나 "슬기롭고 좋은 만남터입니다"로 손질해 봅니다.

 ┌ 바자(bazar/bazaar) : 공공 또는 사회사업의 자금을 모으기 위하여 벌이는 시장
 │   '자선장', '자선 장터', '자선 특매장', '특매장'으로 순화
 │   - 불우한 이웃을 돕기 위해 부인회에서 바자를 열었다
 │
 ├ 바자가 열리겠지요
 │→ 나눔잔치가 열리겠지요
 │→ 나눔마당이 열리겠지요
 │→ 나눔장터가 열리겠지요
 │→ 나눔한마당이 열리겠지요
 └ …

어릴 적에 어머니 손을 잡고 '동네 바자회'에 따라가던 일이 떠오릅니다. 서로들 넉넉한 삶은 아니었을 텐데 이런 잔치를 열면 저마다 내놓는 물건이 꽤 많았고, 서로서로 바꾸어 가는 물건이 퍽 많았습니다. 옷이건 그릇이건 책꽂이이건 책이건 사람들 손을 돌고 돌면서 새로 쓰이고 다시 쓰이는 모습을 익히 보면서 자랐습니다.

새 물건을 장만하면 내가 처음 쓰는 물건이라는 느낌이 배면서 한결 애틋합니다. 헌 물건을 마련하면 이 물건을 처음 건사하던 사람은 어떻게 갈무리하거나 다루어 왔는가를 돌아보면서 나는 앞으로 어떻게 건사하거나 갈무리해야겠다고 돌아보면서 더욱 반갑습니다. 새 물건이든 헌 물건이든, 이 물건 하나를 마주하는 매무새는 늘 새로우면서 즐겁습니다. 새로울 때에는 새로운 대로 좋고, 손때 탔을 때에는 손때 탄 대로 좋습니다.

그런데, 어머니 손을 잡고 따라가던 북적북적 '바자회'라는 곳에서 쓰던 '바자회'라는 이름은 참 어려웠습니다. 이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바지'를 많이 내놓아서 '바지회'인가 하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같거나 비슷한 말은 아니지만 '바겐세일'이라는 말도 퍽 어려웠습니다. 그냥 '싸게 판다'고 하거나 '에누리'를 해 준다고 하면 될 텐데, 어른들은 꼭 이렇게 우리 아이들한테는 알쏭달쏭한 말로 큼직하게 이름을 붙이며 내세우기를 즐겼습니다. 이런 이름이라야 뭔가가 되거나 대단한 듯 여겼습니다.


 ┌ 작은나눔잔치 / 나눔작은잔치
 └ 큰나눔잔치 / 나눔큰잔치

우리한테는 틀림없이 '잔치'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크면 큰잔치이고 작으면 작은잔치입니다. 동네에서 하면 동네잔치요 나라에서 하면 나라잔치입니다. 그러나, 어른들, 거의 지식인이라 할 만한 어른들하고 공무원이라 하는 어른들은 '축전(祝典)'이니 '제전(祭典)'이니 '축제(祝祭)'이니만을 읊었습니다. 그러다가 '축제'는 일본말이니 '축전'으로 고쳐써야 한다고들 했는데, 우리 말 '잔치'를 사랑하거나 아끼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은 아예 영어로 탈바꿈하면서 '페스티벌(festival)'이니 '비엔날레(biennale)'이니 '파티(party)'이니 '쇼(show)'이니를 아무렇지 않게 읊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우리 이웃하고 우리 나름대로 즐기는 마당이라 하지만, 우리 넋을 담고 우리 뜻을 실어 우리 말을 빛내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 사랑잔치 / 사랑나눔 / 사랑나눔잔치 / 사랑나눔장터
 ├ 두레잔치 / 두레장터
 ├ 아나바다 잔치 / 아나바다 장터
 ├ 다시쓰기 장터 / 바꿔쓰기 장터
 └ …

한때 '아나바다'라는 낱말이 떠돈 적 있습니다.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쓴다는 뜻으로 한글 첫글자를 따서 지은 낱말입니다. 어찌 보면 말장난이지만, 달리 보면 우리 깜냥을 빛낸 좋은 낱말입니다.

국어사전에는 이 낱말이 안 실립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인지 모르는데, 첫 글자를 죽 딴 낱말을 국어사전에 싣기는 어렵겠지요. 그러나, 또다른 눈길로 헤아린다면 이 같은 낱말을 외려 더 즐겁게 국어사전에 실어 놓고 한결 신나게 우리 마음과 삶을 나눌 수 있으리라 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아껴쓰다-나눠쓰다-바꿔쓰다-다시쓰다'를 아예 한 낱말로 삼을 수 있습니다.

 ┌ 아껴쓰기 ← 절약
 ├ 나눠쓰기 ← 자선
 ├ 바꿔쓰기 ← 교환
 ├ 다시쓰기 / 되쓰기 ← 재생
 ├ 되살려쓰기 ← 재활용
 └ …

우리는 '아끼다'라고만 해도 되고 '나누다'와 '바꾸다'라고만 해도 됩니다. 이렇게만 해도 얼마든지 절약과 자선과 교환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다만, 이대로 '아끼다-나누다-바꾸다'도 좋으나, 새로운 물건과 문명이 넘치는 오늘날 터전에서는 뜻을 좀더 또렷하게 나누거나 가르면서 새롭게 나타낼 만한 낱말을 지어내기도 해야 합니다. '다시쓰기'와 함께 '새로쓰기' 같은 낱말을 얼마든지 새로 지을 수 있습니다. '되쓰기'와 함께 '살려쓰기' 같은 낱말을 넉넉히 지어 볼 수 있습니다.

이러면서 '아나바다 장터'뿐 아니라 '살려쓰기 장터'나 '새로쓰기 장터' 같은 이름을 붙이면 잘 어울립니다. '새두레장터'라든지 '새나눔장터'라 할 수 있습니다. '살려쓰는 두레마당'이라든지 '되살리는 나눔마당'이라 해 볼 수 있습니다. '이웃사랑 나눔장터'나 '마을사랑 마을장터'처럼 이름을 붙여도 되겠지요.

생각날개를 힘차게 펼치면 됩니다. 생각조각을 알맞게 맞추면 됩니다. 생각틀을 슬기롭게 짜면 됩니다. 우리는 우리 땅 우리 이웃 우리 마을 우리 넋 우리 말을 싱그럽고 예쁘게 사랑하는 삶을 찾아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살려쓰기 #토박이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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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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