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383)

― '육백만 불의 사나이가 된 듯했다' 다듬기

등록 2010.02.10 12:17수정 2010.02.10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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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백만 불의 사나이

 

.. 보통 때라면 아무 생각 없이 어깨를 마구 밀쳐대는 사람들에 거의 미칠 지경이었을 텐데 말이다. 덕분에 난 하루 종일 육백만 불의 사나이가 된 듯했다 ..  <스콧 버거슨/주윤정 옮김-맥시멈 코리아>(자작나무,1999) 33쪽

 

"보통(普通) 때라면"은 그대로 두어도 되나, "여느 때라면"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미칠 지경(地境)이었을"은 "미칠 노릇이었을"로 다듬고, '덕분(德分)에'는 '그래서'나 '이리하여'로 다듬어 줍니다. "하루 종일(終日)"은 "하루 내내"로 손질해 봅니다.

 

 ┌ 불(弗) = 달러

 │

 ├ 육백만 불의 사나이

 │→ 육백만 달러 사나이

 │→ 육백만 달러짜리 사나이

 │→ 육백만 달러 값을 하는 사나이

 └ …

 

'달러($)'를 옮겨적을 때 '弗'을 넣기도 합니다. 지난날 우리 지식사회에서 한문만을 쓴 탓이라 할 수 있고, 이런 기호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일본에서 들여왔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은 '弗'은 거의 안 쓰고(우리 사회에서 안 쓰기로 서로 다짐을 했습니다) '$'를 쓰고 있습니다(그렇지만 한자쓰기를 좋아하는 분들하고 생각이 짧은 분들은 아직도 '弗'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끼리만 쓰는 기호라 한다면 '弗'을 쓸 수도 있으나 다른 여러 나라 사람과 주고받을 말을 생각한다면 '$'로 적어야 알맞습니다.

 

그런데 '弗'를 처음 따붙여 쓴 사람이 누구였고 어느 나라였을까요. 한자를 따서 붙인 이 기호는 얼마나 쓸 만했을까요. 공식 기호로는 '$'를 쓰자고 했고, 또 '서반아(西班牙)'나 '구라파(歐羅巴)'가 아닌 '스페인/에스파냐'와 '유럽'으로 써야 한다 했으며, '화란(和蘭)'이 아닌 '네덜란드'요, 인니(印尼)'가 아닌 '인도네시아'로 써야 한다 했는데, 어이하여 '弗'이라는 기호는 수그러들지 않을까요. 그러나, 곰곰이 헤아려 보면 아직도 '서반아'이니 '구라파'이니 '화란'이니 '인니' 하는 낱말들이 떠돌고 있습니다. 고지식하게 이 낱말을 붙잡는 글쟁이와 지식인이 제법 있습니다.

 

'弗'을 찾아내어 쓴 일본사람(또는 중국사람)은 제 겨레가 쓰는 글이 한자였기 때문에 이 같은 기호를 쓴다 할 수 있습니다. 이들 겨레는 저희한테 가장 알맞거나 좋다 여길 만한 기호를 찾은 셈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쓰는 기호가 있다 하더라도 제 나라 여느 사람들 삶과 생각과 마음에 걸맞는 말이나 기호를 찾으려고 애쓰면서 '弗'을 내놓았습니다. 그렇지만 참 안타까운 노릇인데, 우리 겨레 글쟁이와 지식인은 우리 겨레 여느 사람들 삶을 깊이 돌아보거나 헤아리면서 우리 겨레 여느 사람들이 즐겁고 신나고 흐뭇하게 주고받을 만한 말마디와 글줄을 우리 슬기를 빛내어 새롭게 엮어내는 데에는 젬병입니다.

 

 ┌ 육백만 달러가 나가는 사나이

 ├ 육백만 달러를 들인 사나이

 ├ 육백만 달러짜리 몸뚱이인 사나이

 ├ 육백만 달러를 들여 새로 태어난 사나이

 └ …

 

텔레비전 연속극으로 나오기도 한 "육백만 불의 사나이"라는 이름입니다. 저 또한 어릴 적에 이 연속극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그때에는 이렇게 붙은 이름을 궁금하게 여기지 않았고 오래도록 입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한참 들고 나서 옛 연속극을 어떤 자리에서 뜻하지 않게 다시 보다가 "육백만 불의 사나이"란 다름아닌 '거의 죽을 뻔한 일을 겪은 사나이 하나를 되살려내느라 육백만 달러에 이르는 돈을 들여 온몸을 뜯어고쳤기' 때문에 붙은 줄을 새삼스레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육백만 불의 사나이"란 "육백만 달러 돈을 들여서 새 목숨을 얻은 사나이"라는 소리이며, 우리가 이 연속극에 붙인 말마디 "육백만 불의 사나이"는 주인공인 사내하고 육백만 달러가 어떻게 얽혀 있는가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시금 '弗'과 '달러'를 생각해 봅니다. 기호이자 한자인 '弗'은 일본사람이 처음 썼고, 우리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 써야 했기 때문에 이제부터라도 이런 기호나 한자는 안 써야 올바르다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목소리가 드높았어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弗'을 버젓이 쓰는 손길과 몸짓을 퍽 손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만히 따져 본다면, 일본사람이 빚었든 미국사람이 빚었든 중국사람이 빚었든 쓸 만하면 써야겠지요. 오늘날 우리가 쓰는 사진기는 거의 모두 일본에서 만들었으나 아주 뛰어날 뿐더러 이 사진기를 따라갈 만한 다른 물건이 없어 이 사진기를 쓴다 할 수 있습니다. 꼭 일본 것이라 해서 안 쓸 까닭이 없습니다. 굳이 일본말이나 일본 한자말을 꺼려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 그러나 때와 곳에 따라서, 그리고 쓸모와 흐름에 따라서, 또한 넋과 얼을 헤아리면서, 몇 가지 말마디는 아예 우리 삶터와 마음밭에서 털어내거나 쫓아낼 수 있습니다. 이러면서 우리 나름대로 쓸 말마디를 우리 슬기를 빛내며 지을 수 있습니다. '$'를 갈음할 만한 '弗'을 찾아내는 그 땀방울과 손길처럼,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한테 가장 알맞고 어울리는 말마디나 글줄을 찾아내거나 캐내거나 일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라도 우리 힘과 슬기와 땀과 품을 모두 그러모아서 우리 삶터와 마음밭에 알맞춤한 낱말과 말투를 가꾸어야겠지요.

 

거듭 말씀드리자면, '달러'라고만 쓰느냐 '불'이나 '弗'이나 '불(弗)'이라고 써도 되느냐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넋을 어떠한 말로 보듬으려 하며, 우리 얼을 어떠한 글로 북돋우려 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우리 삶을 어떠한 말마디로 가꾸고, 우리 마음밭을 어떠한 글줄로 일구려 하느냐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언제쯤 우리 말을 우리 스스로 빛낼 길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입니다. 우리는 어느 곳에서 우리 글을 우리 손으로 뽐낼 자리를 살필 수 있겠느냐 하는 근심입니다. '이대로도 좋다'로 그칠는지 '더 나은 길이 있으리라 믿으며 다 함께 힘을 모아 찾자'로 새로워질는지 하는 끌탕입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02.10 12:17 ⓒ 2010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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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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