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란 좋은 삶이며 앎이며 넋이며 빛

[헌책방 나들이 223] 서울 창전동 <글벗서점>

등록 2010.03.08 12:18수정 2010.03.08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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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헌책방마실 즐기기

책을 좋아할 뿐더러 즐겨읽고 있어도 헌책방은 아직 한 번도 찾아가 보지 않았다는 분이 꽤 됩니다. 집이나 일터 둘레 어디에 헌책방이 있는지를 살피지 못한 탓이기도 하고,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책을 읽으려면 도서관과 새책방과 헌책방을 함께 다녀 보라'고 일러 준 교사나 부모가 없는 탓이기도 합니다. 헌책방 정보를 얻거나 나눌 만한 자리가 거의 없는데다가, 어쩌다가 헌책방 이야기를 다루는 신문ㆍ잡지ㆍ방송 기사를 보면 하나같이 '사라져 가는 곳'이라거나 '추억 어린 곳'이라는 소리만 가득합니다.


'책을 읽는 곳'으로 헌책방을 바라보는 눈길을 담은 기사는 대단히 드뭅니다.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책을 찾는 곳'으로 헌책방을 마주하는 눈썰미를 보여주는 매체는 손가락으로 꼽기조차 힘듭니다. 없다고 할 만합니다. 출판비평이든 도서비평이든 하는 분들 가운데에도 도서관과 새책방과 헌책방을 알뜰히 다니며 책을 즐기는 참맛과 참멋을 널리 나누고자 힘쓰는 분은 몇 되지 않습니다.

제가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학교에서 '책방마실'을 듣거나 배운 적이란 없습니다. 새책방을 찾아가라는 소리부터 거의 못 들었습니다. 스스로 읽을 책을 스스로 다리품 팔아서 책방 책시렁을 뒤적이며 찾아 읽도록 가르치거나 이끄는 소리는 아예 못 들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하물며 헌책방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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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글벗서점> 앞은 널찍한 거님길이었는데, 버스중앙차선으로 바뀌며 거님길이 줄었습니다. 그러면서 버스정류장 바로 앞자리로 되었습니다. ⓒ 최종규


대학교에 다섯 학기 머무는 동안에도 헌책방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교사나 교수 스스로 헌책방을 즐겨 다니면서 반갑고 좋고 기쁜 책을 만난 적이 없다고 한다면 "책을 더 즐기고 싶으면 헌책방에 가 보아라. 헌책방이 이 둘레 어디어디에 있다." 하고 일러 줄 수 없습니다. 도서관 정보도 그렇고 책방 정보도 그렇고, 이 나라 학교에서 교사들이 갖춘 정보는 몹시 허술합니다.

헌책방마실을 즐긴 적 없는 분과 함께 헌책방마실을 합니다. 당신 둘레에서 헌책방을 이야기한 사람이 없었고, 당신이 하는 일이 책과 얽힌 일이지만 헌책방이 어떠한가를 들려준 사람이 없기 때문이겠지요.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헌책방마실이나 골목길마실이나 비슷할 수 있습니다. 제아무리 아파트가 많이 올라서고 온 나라가 재개발로 들썩들썩하고 있으나, 제 고향마을 인천뿐 아니라 부산이나 목포나 서울이나 골목은 곳곳에 넓게 남아 있습니다. 높고낮은 아파트와 빌라가 어지러이 뒤섞인 썰렁한 골목도 있으나, 햇볕에 빨래를 널어 말리는 그윽하고 포근한 골목도 있습니다. 우리는 자동차에서 내려 두 다리로 이십 분쯤만 거닐면 얼마든지 그윽하고 포근한 골목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서울에서도 교보문고에서 이십 분 거리를 걸어가면 헌책방을 만날 수 있습니다. 교보문고 앞에서 자전거를 타고 이십 분쯤 달리면 청계천이든 동묘이든 회기동과 이문동이든 청구역이든 혜화동이든 홍제동이든 자리한 헌책방을 만날 수 있고, 신촌 곳곳에 퍼져 있는 헌책방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광화문에서 시내버스를 잡아타고 신촌역과 홍대앞역 사이 창전동과 동교동을 가르는 큰길 한켠 버스정류장을 마주보고 있는 헌책방 <글벗서점>으로 찾아갑니다.

<글벗서점>에서 홍대앞역 쪽으로 가면 <우리동네헌책방>이 있고, 이곳에서 큰길로 신촌역 쪽으로 가면 <공씨책방>이 있으며, 골목을 구비구비 돌아 연세대 앞쪽으로 가면 <정은서점>이 있고, 큰길 건너 옛 기차길 있는 쪽 골목 안골로 들어서면 <숨어있는 책>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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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고루 쌓이고 꽂힌 책입니다. ⓒ 최종규


 (2) 그림책을 구경하며

지난날에는 사람들 발길이 잦은 큰길 한켠에 헌책방이 곧잘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이와 같은 헌책방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골목 안쪽으로 밀렸기 때문입니다. 헌책방 <글벗서점>은 큰길 한켠에 제법 널찍하게 자리하고 있을 뿐 아니라, 2층으로 넓히기까지 하며 책 갖춤새를 더욱 북돋우고 있습니다. 헌책방 일꾼은 꾸준하게 새 헌책을 장만하고, 헌책방 책손은 꾸준하게 새로운 헌책을 마주합니다.

우리 나라 그림책과 함께 쌓여 있는 나라밖 그림책을 찬찬히 둘러봅니다. 헌책방마실을 할 때면 으레 나라밖 책들을 찬찬히 헤아립니다. 여느 책방에서는 만날 수 없는 책이요, 아직 나라안에 옮겨지지 않은 책입니다. 나라안에 옮겨졌어도 나라밖에서 처음 나올 때 어느 모습이었고 느낌이었는가를 느끼도록 해 주는 책입니다. 출판사에서 자료로 갖추던 책일 때가 있고, 개인이 나라밖 나들이를 하다가 사들인 책일 때가 있으며, 나라 안에 있는 외국인학교 도서관에서 갖고 있다가 오래되어 내보낸 책일 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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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른 책탑을 차근차근 누비면서 반가운 책을 만납니다. ⓒ 최종규


<岡島秀治(글),吉谷昭憲(그림)-おとしぶみ>(福音館書店,1987)는 '거위벌레'라는 벌레 한 마리가 알을 어디에 낳고, 이렇게 낳은 알이 어떻게 애벌레로 자란 다음에 어른벌레로 거듭나는가를 그림으로 차근차근 보여줍니다. 숲에서 돌돌 말린 나뭇잎 한 장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면, 이 돌돌 말린 나뭇잎 한 장은 바로 거위벌레라는 벌레가 알을 낳고 바지런히 말면서 나뭇가지 높은 곳에서 바닥으로 똑 떨어뜨린 녀석이라고 하는군요.

일본에서는 이러한 짜임새를 사진으로 잘 담아낸 책이 꽤 많은데, 애써 그림으로 차근차근 담아낸 책 또한 꽤 많습니다. 잎줄기 하나하나 꼼꼼하게 그리고, 벌레 모습 구석구석 낱낱이 그립니다. 워낙 작아서 잘 안 보일 만한 벌레 한살이를 그림책으로 훌륭히 보여줍니다.

<こうや すすむ(글ㆍ그림)-どんぐり>(福音館書店,1983)는 숲에서 자라는 참나무가 맺은 도토리를 어떠한 짐승들이 어떻게 즐겨먹거나 갈무리하는가를 부드러운 그림결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도토리 가운데 땅에 뿌리를 내려 줄기를 올리고 새로운 참나무로 자라는 열매 하나는 어떠한 모양새로 자라나는가를 함께 보여줍니다. 참 재미있고 좋은 그림책이구나 싶습니다. 일본 어린이들은 이토록 재미있고 좋은 그림책을 보며 자랄 수 있구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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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위벌레가 어떻게 입을 잘라서 돌돌 마는가를 그림으로 낱낱이 보여줍니다. ⓒ 최종규


곰곰이 헤아려 보면 아직 우리 나라에는 이러한 그림책이 없습니다. 우리 겨레는 소나무를 높이 우러르거나 섬긴다고 하지만, 정작 소나무 한살이를 다룬 그림책이나 솔방울 쓰임새를 차근차근 보여주는 그림책이든 사진책이든 제대로 나와 있지 않습니다. 아이한테도 어른한테도 도움이 될 만한 책은 다섯손가락으로 꼽기조차 힘듭니다.

그러고 보면 소나무 그림책만 없지는 않습니다. 잣나무며 참나무며 버드나무며 미루나무며 능금나무며 포도나무 그림책이 없습니다. 참새 그림책이 있습니까. 비둘기 한살이를 다룬 그림책이 있습니까. 지렁이 삶을 보여주는 그림책이 있는가요. 기러기이든 갈매기이든 까치이든 옳게 다루는 그림책이란 없습니다. 제비 그림책은 나온 적이 있으나 까치며 까마귀이며 뭇새이며, 그림책 하나로 꾸밈없이 담아낸 적이 없다고 느낍니다.

다문 민들레 그림책이라든지 갈치 그림책이라든지 오징어 그림책 하나 제대로 마련한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곁에서 늘 보고 자주 보고 쉽게 마주하는 목숨붙이들 삶자락을 오래오래 바라보고 어깨동무하면서 펼쳐 보이는 그림책이란 없다고 느낍니다. 더 깊이 헤아린다면,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보는 그림책도 없으나, 어른이 보는 인문책으로도 없습니다.

우리들은 어린이책에서든 어른책에서든 우리 둘레 수수한 삶자락 이야기를 담아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가난하지만 즐겁게 살아가는 골목동네 이웃 삶터를 책으로 담아낸 적이 있습니까. 골목동네를 다룰 때에는 으레 예쁘장한 서울 몇몇 골목길이라든지 재개발을 코앞에 둔 다 쓰러져 간다는 골목동네를 어두컴컴하게 다룰 뿐입니다.

<엘리자베스 링(글),캐티 리(그림)/정창훈(옮김)-왕나비의 긴 여행>(한솔교육,2002)이라는 그림책을 봅니다. 나비 그림책은 권혁도 님이 살뜰히 그려내어 한 번 나온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권혁도 님 <날아라, 호랑나비야>(길벗어린이,2004)를 빼고는 호랑나비이든 모시나비이든 노랑나비이든 배추흰나비이든 제비나비이든 한삶이를 옳게 그려내어 선보인 책이란 없구나 싶습니다.

훌륭히 잘 그려낸 나라밖 책이기에 기쁘게 우리 말로 옮길 수 있습니다만, 이 나라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요, 해마다 숱한 그림쟁이가 새로 태어나고 있으며, 어린이책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퍽 많은데, 이러한 대목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어린이책을 쓰고 동화를 쓰고 문학을 한다는 사람 또한 참 많으나, 우리 둘레를 살뜰히 굽어살피는 분이란 참으로 드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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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 오려지고 뜯어진 책. 우리 나라 책쟁이들은 1980년대 끝무렵까지 이렇게 책 도둑질을 일삼으면서 책을 만들곤 했습니다. ⓒ 최종규


'Europa Verlag Anstalt'라는 곳에서 1973년에 펴낸 스무 권짜리 책을 일본말로 옮긴 <世界の民族>(平凡社,1978) 1권을 만납니다. 고작 1권 하나뿐이요, 이 책은 곳곳이 뜯기거나 오려져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고 찬찬히 넘기니, 우리 나라 어느 출판사에서 이 책에 실린 사진을 오려내어 '다른 책을 만드는 데 쓰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 끝무렵까지 '일본책 도둑질'이 참 많았습니다. 이 책은 우리네 책마을이 저질렀던 도둑질을 남김없이 보여줍니다. 우리로서는 아프리카 깊은 마을을 찾아가 사진을 찍을 겨를이나 재주가 없었다 할 터이고, 유럽이든 미국이든 남미이든 바지런히 돌아다니면서 사진 몇 장 마련할 말미나 솜씨가 없었다 할 터이니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었겠지요. 책 만드는 데에는 돈을 들이기 힘들거나 어려웠다고 했으니, 아니 책 만드는 일에 돈을 쏟을 마음이 처음부터 없었다고 했으니 마땅한 노릇입니다.

그런데 우리한테 돈이 없던 지난날에는 일본책 도둑질이고, 우리한테 돈이 있는 오늘날에는 '일본책 번역'입니다. 이제 우리한테 돈이 꽤 많은 형편이라 한다면, 이 돈으로 우리 눈길과 눈썰미와 눈높이와 눈결을 살리고 살찌우는 '우리 책 만들기'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책 하나 새로 일구는 품은 안 들이고 손쉽게 돈 조금 바쳐서 일본책 번역을 하는 틀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돈이 없던 지난날에는 그렇다 치더라도, 돈이 있는 오늘날은 달라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생각해 보면 돈이 없던 지난날에는 돈이 없는 대로 우리 책을 만들었어야 했고, 돈이 있는 오늘날에는 돈이 있는 대로 우리 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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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내로라 하는 산 백 곳을 보여주는 두툼한 사진책 하나. ⓒ 최종규


<家政畵報 엮음-決定版 自然の心, 名峰百景>(世界文化社,1980)은 일본에서 손꼽히는 산 백 가지를 사진과 이야기로 보여주는 큼직한 책입니다. 이 책에 실린 훌륭한 산 사진은 우리 나라 사진쟁이도 거뜬히 보여주는 사진입니다. 다만, 우리 나라 사진쟁이와 책쟁이는 "자연을 담은 마음, 아름다운 우리 산 백 곳"과 같은 책을 여밀 마음 그릇이 못 됩니다.

일본 사진책을 보며 우리 사진마을과 책마을이 더없이 슬프다고 새삼스레 느끼며, 훌륭하고 알찬 일본 사진마을과 책마을을 가슴 쓰리게 느낍니다. 책 뒤쪽에는 '산악명저'라고 해서, 일본에서 옛날 옛적부터 나온 좋은 책들을 하나씩 들어서 보여주기도 합니다. 책이름에 '결정판'이라는 말까지 붙어 있더니, 이렇게 엮어야 비로소 산을 말하는 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구나 싶습니다.

 (3) 예전 수필책을 읽으며 배우는 삶

만화책 <스즈키 유미코/김수경 옮김-미녀는 못 말려 (1∼5)>(서울문화사,2005)하고 <노자키 후미코/이유자 옮김-신이 주신 선물>(서울문화사,2000∼2001) 1권부터 9권까지 봅니다. <미녀는 못 말려>는 다섯 권 짝이 맞으나, <신이 주신 선물>은 9권까지만 보입니다. 이를 어쩌나 하고 망설이다가, 짝이 다 없는 아홉 권이라 할지라도 <신이 주신 선물>은 판이 끊어진 지 오래된 만큼, 이렇게 아홉 권이라도 있으면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하며 집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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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신이 주신 선물> 5권 겉그림. ⓒ 최종규

..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 이렇게 저녁 준비 안 해도 되고, 하룻밤 자는 거 가지고." "싫어요!! 내 집은 여기야. 겨우 출발했는데. 노조미랑 같이 사는 생활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노력하는 중인데. 단 하루도 싫어." "유메! 지금부터 그렇게 무리할 필요없어. 출산휴가도 금방 끝이고." "무리 안 하면 애 젖도 못 준단 말야! 당신은 한밤중에 일어나 주지도 않고. 일어난다고 해도 젖이 안 나오니, 내가 안 하면 누가 하겠어. 우리 애랑 난 여기서 노력할 거야." ..  (1권 82∼84쪽)

만화책 <신이 주신 선물>을 넘기면서 생각합니다. 이 만화가 처음 옮겨진 2000년에 틀림없이 만화가게에서 이 만화를 보았지 싶으나, 그때에는 아이키우기를 깊이 살피거나 느끼지 못하던 때였고, 아이키우기를 알뜰히 보여주는 만화라 할지라도 이 만화를 알아보지 못했겠다고. 옆지기와 함께 아이키우기를 하는 몸이 되고 보니, 이제서야 이 만화가 내 눈에 들어온다고.

.. '헤이마 바보. 자기 일밖에 모르고. 이럴 때 당신이 도와줬으면 했는데. 이럴 때…. 이럴 때? 그렇구나. 지금이 헤이마의 '이럴 때'이구나. 힘든 건 나만이 아냐. 싸워서 힘든 건 나만이 아냐 ..  (3권 85∼87쪽)

제가 집에서 오래도록 함께 지내며 아이키우기를 여러모로 거든다고 할지라도, 아직 거들기일 뿐, 함께 키우기라고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이 일도 하고 저 일도 하며 이런 살림 저린 치닥거리를 져내야 하니 아이키우기를 오롯이 돌아본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몸이며 마음이며 많이 아픈 옆지기는 하루 내내 '힘들다고 느낄 이럴 때'일 텐데, 옆지기가 느끼는 '이럴 때'를 제대로 깨닫거나 받아들여 따스히 어루만지지 못하는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 또한 '이럴 때'라는 생각을 하면서.

수필책 <임옥인-지하수>(성바오로출판사,1973)를 봅니다. 헌책방마실을 하며 수필책을 눈여겨본 지는 너덧 해쯤 되었지 싶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좋아하는 분들 책만 살펴보았으나, 요 너덧 해 사이에는 제가 안 좋아하거나 제가 하나도 모르거나 제가 눈길을 두지 않던 분들 수필책까지 하나하나 챙겨 읽고 있습니다. 천주교 견진까지 받았기에 성바오로출판사 책을 눈여겨보지 않습니다. 대한기독교서회 책이든 분도출판사 책이든 성바오로출판사(바오로딸) 책이든, 제 어설픈 마음밭을 살뜰히 일구도록 고맙게 도와주거나 이끌어 주는 책이라면 흐뭇하게 집어들어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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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옥인 님 수필책. ⓒ 최종규

.. 세상에 서글픈 것들이 많이 있지만, 나는 잔치의 뒷풍경처럼 서글프고 어수선한 것도 드물 것이라고 자주 생각하고 있다. 말하자면 사람 사는 형편이, 아니 인간 일생이 그러한 것인지 모른다 … 하지만 잔치마다 일마다에 아니, 하루 종일 세 끼의 식사 후엔 설겆이라는 중요한 작업이 있다 ..  (19, 20쪽)

수필책을 찾아 읽을 때, 남자가 쓴 글보다 여자가 쓴 글을 좀더 눈여겨봅니다. 남자가 쓴 글은 살림살이하고 동떨어진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퍽 많고, 여자가 쓴 글은 살림살이하고 맞닿은 살가운 이야기가 꽤 많습니다. 꼭 그렇지는 않으나, 머리로만 쓴 글이 많은 남자들 수필보다는 온몸으로 부대낀 글이 많은 여자들 수필이 제 마음에도 반가이 스며듭니다.

수필에서까지 이론과 지식과 당위와 사상을 펼치면 더없이 따분하고 딱딱하다고 느낍니다. 수필을 비롯한 모든 문학과 학문과 책에서 땀과 품과 피와 살을 느끼도록 해 줄 때에 그야말로 재미있고 알차고 벅차며 뜻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설거지, 빨래, 밥하기, 아이보기, 청소, 바느질 같은 살림살이 이야기를 다루는 수필책이 반갑고 고맙습니다. 설거지부터 바느질까지를 한 번도 다루지 않는 수필책이라 한다면 멋도 맛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싶어 서운하고 아쉽습니다.

.. 단순함은 치졸이 아니라 완성이요, 통일이요, 조화이다. 나는 나 나름대로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예술의 극치는 세련이며 세련의 극치는 평범이다. 평범이란 뭐냐? 자연스러움이다." ..  (22∼23쪽)

몹시 이름난 분 수필책이라고 하더라도 잘 안 팔리곤 합니다. 이름이 덜 알려진 분이나 안 알려진 분 수필책이라 하면 웬만해서는 안 팔립니다. 이리하여 이런저런 수필책은 금세 판이 끊어집니다. 헌책방에서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곤 합니다. 임옥인 님 수필책 <지하수>를 헌책방에서라도 찾아보기란 대단히 힘들겠지요. 이분 이 책을 갖춘 도서관이 우리 나라에 몇 군데나 될까요. 아니, 한 군데라도 이분 수필책을 갖추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곰곰이 따진다면, 이제 우리 나라에도 '수필책 전문 도서관'이라든지 '시집 전문 도서관'이라든지 '그림책 전문 도서관'이라든지 '사진책 전문 도서관'이 큰도시에 하나씩은 있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광역시와 도에 한 군데씩은 전문 도서관을 마련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전문 도서관을 마련하고 사람을 들이는 데에는 큰돈이 들지 않습니다. 지역문화와 겨레문화를 북돋우는 길에 도서관 마련하기가 없다면, 새 건물 올려세우는 도서관 마련하기가 아니라 동네 한복판이나 귀퉁이에 있는 조촐한 건물을 얻어서 조금 손질하여 가꾸는 도서관 마련하기가 없다면 모두 부질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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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에서 일본책을 퍽 값싸게 만날 수 있습니다. 엔도 슈사쿠 님 <침묵>을 일본책으로 만나서 한글판과 견주어 읽을 수 있습니다. ⓒ 최종규

.. 내 동창 선배가 나를 보자마자 인사도 채 치르기 전에 "일본인은 드라이해서 못 쓰겠어. 서구인의 물질문명의 뒤만 보고 주먹을 부르쥐고 뜀박질하다 보니, 본래 갖고 있던 의리나 인정도 상실했단 말야! 하지만 당신네들은……." 하고 개탄하는데, 첨엔 기이한 느낌이 들었지만, 심리학 교수인 그는 뭔가 물질에 뒤진 정신적인 기반을 염려하는 성 싶어, 나도 거기엔 전혀 동감이었다.

어디 부족한 구석 없이 건설해 놓은 표면은 고층건물과 네온사인과 상품과 교통질서와 기계의 활용 등, 그 모든 것은 합리적인 생활상이었다. 아직은 길을 파헤치고 진흙탕의 뒷골목과 판자집과 궁상을 면치 못하는 농촌과 부족한 교실과 무질서한 시장과 교통지옥과 설비 미비의 국내 정경을 눈아프게 느끼고 있는 한 여행자의 눈에 과연 앞섰다, 완전하다, 부럽다는 감정이 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건설과 질서 속에서 그 건설의 주인, 질서의 주인인 인간은 빛을 잃고 맛을 잃어서, 위에서 언급한 나의 동창 선배의 개탄이 실상임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 영토 내의 생활은 역시 일본적이기를 바라는 것은 오히려 여행자의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川端康成의 문학이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소이는 그 일본인의 특이한 감각과 생활의 표현에 있었던 것이다. 구태어 스케일의 방대함과 사상의 심오를 따지기 전에 세계의 눈길은 일본인만이 지닌 체취를 택했던 것은 우리에게도 직접적인 시사가 되리라고 믿는 것이다 … 길과 고층건물은 시간과 노력과 자금을 걸면 우리도 가능하다. 또 이미 눈부시게 건설했다. 그러나 이 자연조건과 이미 빽빽한 연륜의 수목들은 돈으로는 살 수가 없다 … 문화에 뒤질 수는 없다. 그러나 돌 하나에라도 우리는 우리의 얼이 스민 문화를 창조해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개성의 상실은 모든 것의 상실이라는 걸 더욱 뼈저리게 느낀다 ..  (32∼34쪽)

1960∼70년대를 살던 느낌을 담은 수필책 하나에서 일본과 한국이 걸어온 길을 읽습니다. 우리 나라는 지난날 일본이 걸었던 '돈으로만 하는 일'에 얽매여 있습니다. '마음으로 하는 일'에는 조금도 다가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임옥인 님은 일본이라는 나라가 1960년대부터 진작에 개성이든 마음이든 사랑이든 잃고 있음을 걱정하고 안쓰러워 했는데, 우리 또한 개성이나 마음이나 사랑이나 모조리 잃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들이 잃거나 버린 개성이나 마음이나 사랑을 안타까워 하거나 애닲아 하는 목소리는 듣기 어렵습니다.

"요즘(1960∼70년대) 대학생들에게 귀가 따갑게 독서를 권장한다는 일은 오히려 새삼스럽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독서의 저력 없이 다른 무슨 중요한 것을 논할 수 있을까(129쪽)."

같은 글월을 읽으면서는 피식 웃습니다. 1960∼70년대에 대학생이었던 이라면 2010년대에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겠군요. 1940∼50년대에 태어난 분들이요, 오늘날 우리 터전에서 기성세대라 하는 분들입니다. 이분들이 대학생 때에 '그토록 책을 안 읽었다'고 하는 이야기이니, 이분들이 기성세대가 되어 요즈음 젊은이를 두고 '책 좀 읽어, 이것들아!' 하고 소리를 높인들 제 발에 오줌누기가 아니겠느냐 싶습니다. 앞으로 쉰 해가 더 흐른 2060년이 된다면 그무렵 기성세대가 될 오늘날 젊은이들은 그무렵 젊은이한테 '이 녀석들아, 책 좀 읽으라구!' 하고 나무랄는지 모르겠습니다.

 (4) 이야기가 깃든 책 하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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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책 하나는 우리한테 추억이 되기도 하고 이야기가 되기도 합니다. ⓒ 최종규

.. 한이 있는 사람이 글을 쓰고 싶어 하고, 또 실재 그러했던 것을 입증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 쓰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필연성, 즉 진실성이, 마음을 다하는 진지함이 풍기지 않는다면, 생명이 없는 글이 되고 말 것이니까. '마음에도 없는 소리'라고 느껴진다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마음을 다하는 곳에, 기적조차 일어나는 게 아닐까! 마음없이 말하고 마음없이 쓰면, 한낱 허수아비와 같은 것이 되고 말 것이다 … 문장력이란 단순한 기교적인 문제가 아니다. 좀더 정신적인 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 마음을 가두고 남을 용납하지도 못하는 달팽이와 같은 마음으로, 사물을 제대로 보고 느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남의 슬픔이 내 슬픔이 되고, 남의 아픔이 내 아픔이 되는 따스한 심정이 없이는 아름다운 문장은 탄생할 수 없는 노릇이다 .. (199, 203, 205, 207∼208쪽)

좋은 삶을 바라보거나 껴안는 매무새란 예나 이제나 다르지 않습니다. 좋은 글을 엮는 매무새란 예나 이제나 틀리지 않습니다. 좋은 길은 예나 이제나 좋은 길입니다. 좋은 책은 예나 이제나 좋은 책입니다. 좋은 길을 좋은 길이라고 느끼거나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좋은 책을 좋은 책이라고 여기거나 헤아리지 못할 뿐입니다.

수많은 책에 둘러싸인 오늘날이 되었으나, 이토록 수많은 책이 신나게 쏟아지는 흐름을 제대로 붙잡을 말미를 마련하지 못하는 오늘날이기도 합니다. 후다닥 읽어치울 수 있는 책이 아니고, 후다닥 살아내고 죽으면 될 삶이 아닌데요.

좋은 책이 참말 꾸준하게 많이 나오는 오늘날이 되었으나, 우리 스스로 너무 바쁘고 힘든 나머지 좋은 알맹이를 좋은 알맹이 그대로 받아먹으며 곰삭일 겨를을 내지 못하는 오늘날이기도 합니다. 재빨리 읽어내고 나서 덮어 둘 책이 아니며, 백 살도 살기 어려운 우리 목숨을 재빨리 흘려보내어도 괜찮을 삶이 아닌데요.

상명국민학교를 다녔던 이○○ 님이 쓰던 <1학년 겨울방학 공부>(1977), <3학년 사회 배움책>(1979), <5학년 사회 배움책>(1981), <6학년 자연 배움책>(1982). <6학년 산수 배움책>(1982)을 구경합니다. <권녕대,최기철 감수-새 교과서에 의한 중학 과학 실험(그림 중심)>(문화각,1965)이라는 낡은 교재 한 권을 함께 구경합니다. 우리 발자취가 담긴 묵은 책을 스스럼없이 만지작거려 봅니다. 돈 몇 푼이 있으면 그리 비싸지 않게 사들일 수 있는 재미난 옛 자료를 마음껏 구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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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책이 새로 나오고 판이 끊어지고 묻히다가는 되읽힙니다. ⓒ 최종규


헌책방이라는 곳에서 추억을 찾으려 한다면 아마 이러한 책을 놓고 추억을 찾는다고 하겠지요. 그런데 이런 묵은 교재붙이들이 헌책방에 나오려면 어떤 흐름을 거쳐야 할까요. 누군가 이 묵은 교재들을 서른 해이든 마흔 해이든 쉰 해이든 집구석에 쟁여 놓고 있어야겠지요. 헌책방에서 이 묵은 교재들을 거두어들인 다음에도 '사 가는 사람이 없이' 오래도록 남아 있어야 할 테고요.

그러나 우리들은 묵은 교재를 서른 해나 쉰 해 동안 집구석에 쟁여 놓지 않습니다. 한 해가 채 되지 않아 끈으로 묶어 재활용 쓰레기로 내다 버립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추억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삶에 이야기를 남기지 않습니다.

헌책방이라는 곳에서 우리가 어리거나 젊은 나날에 마주했던 숱한 '이야기 깃든 책'을 만나고 싶어 한다면, 우리 스스로 우리 삶터에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터전에서 우리 이야기를 지켜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이야기를 살뜰히 보듬어야 하고, 우리 손으로 우리 이야기를 건사해야 합니다. 집에서 식구들과 툭탁거리는 이야기를 알뜰히 보듬고, 이웃이나 동무하고 오순도순 지내는 이야기를 살뜰히 어루만져야 합니다.

모든 푸근하고 따스한 이야기는 우리 가슴 속에 깃들어 있습니다. 모든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이야기는 우리 마음밭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가슴을 읽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을 느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이웃 가슴을 부둥켜안아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나서서 우리 동무 마음을 얼싸안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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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 좋은 넋 좋은 앎 좋은 빛을 누구나 널리 나누어 가질 수 있도록 헌책방마실을 즐기기를 꿈꿉니다. ⓒ 최종규


책이란 바로 내 삶이며 네 삶입니다. 헌책이든 새책이든 모두 같은 책이면서 우리 삶이 깃든 이야기꾸러미입니다. 지식을 담은 꾸러미가 아닌 이야기를 담은 꾸러미인 책입니다. 책 하나가 헌책방을 돌고 돌며 숱한 세월을 고이 담아내고 있다면, 바로 이 책 하나는 지식이라는 설익은 껍데기를 내려놓고 삶이라는 무르익은 알맹이를 감싸고 있다는 뜻입니다.

헌책방을 바지런히 즐겨찾든 헌책방을 아직 한 번도 찾아나서지 못했든, 헌책방에서는 책 하나를 만날 수 있으면 됩니다. 헌책방에서 책 하나를 만나면서 이 책 하나에 뭇사람 땀과 품과 피와 살이 두루 스미어 있음을 느낄 수 있으면 됩니다. 책마다 살아숨쉬는 꿈이 서려 있음을 읽고, 책마다 싱그러운 숨결이 배어 있음을 보면 됩니다. 처음으로 헌책방마실을 하는 분한테 좋은 삶 좋은 앎 좋은 넋 좋은 빛이 알알이 어우러진 이야기를 오늘 하루 나눌 수 있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믿어 봅니다. 그예 조용히 믿으면서 몇 가지 책을 더 사서 이분한테 선물로 드리고는 책방 문을 나섭니다.

덧붙이는 글 | ― 서울 창전동 <글벗서점> / 02) 333-1382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덧붙이는 글 ― 서울 창전동 <글벗서점> / 02) 333-1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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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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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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