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없애야 말 된다 (311) 유아적

― '유아적인 작품이지만 유치한 작품은 아니다 ' 다듬기

등록 2010.05.07 10:46수정 2010.05.07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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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아적인 작품

 

.. 분명 유아적인 작품이지만, 그렇다고 유치한 작품은 결코 아니다 ..  <제레미 시프먼/임선근 옮김-모차르트, 그 삶과 음악>(포토넷,2010) 67쪽

 

'분명(分明)'은 '틀림없이'로 다듬습니다. '유치(幼稚)한'은 '어린'이나 '낮은'이나 '어설픈'이나 '모자란'이나 '어수룩한'이나 '어줍잖은'으로 손보고, '결(決)코'는 '조금도'로 손봅니다.

 

그런데 '유아적'이라는 낱말에 담긴 뜻하고 '유치하다'라는 낱말에 담긴 뜻은 같습니다. 글쓴이는 말놀이를 하듯 '유아적'과 '유치하다'를 잇달아 쓴 듯하지만, 이 자리에서는 말놀이가 아닌 말장난이 되어 버립니다. 글쓴이가 당신 뜻을 옳게 나타내고자 한다면 앞쪽을 '유아다운'쯤으로는 적어야 합니다.

 

 ┌ 유아적 : x

 ├ 유아(幼兒)

 │  (1) 생후 1년부터 만 6세까지의 어린아이

 │  (2) = 어린아이

 │   - 유아 모집 / 유아로서의 한 시기를 지낸 사람

 │

 ├ 유아적인 작품이지만

 │→ 어린이 작품이지만

 │→ 어린이다운 작품이지만

 │→ 아이다운 작품이지만

 │→ 아이 티가 나는 작품이지만

 │→ 어린이 티가 남은 작품이지만

 └ …

 

국어사전을 뒤적여 보니 '유아적'이라는 낱말은 안 실려 있습니다. 좀 뜻밖이구나 싶지만, 이런 낱말까지 국어사전에 실어 놓는다면 더없이 머리가 지끈거릴 노릇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글을 얄궂거나 엉망진창으로 쓰는 모습이 고스란히 국어사전에 아로새겨지는 꼴이기 때문입니다.

 

'유아'라는 한자말은 남다른 낱말이 아닙니다. 오로지 '어린아이'를 뜻하는 낱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말은 '어린아이'요, 한자말은 '유아'입니다.

 

우리한테는 '어린아이'를 비롯해 '아이'와 '아기'와 '어린이'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나이 적은 사람들 삶을 가리키고자 한다면 이와 같은 우리 낱말을 알맞게 써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낱말을 멀리할 까닭이란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낱말을 손사래칠 까닭이란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낱말을 내팽개칠 까닭이란 없습니다.

 

 ┌ 틀림없이 어린이 작품이지만, 그렇다고 어린이 티가 나지는 않는다

 ├ 틀림없이 어린이가 쓴 작품이지만, 그렇다고 조금도 어설프지는 않다

 ├ 틀림없이 어린이가 만든 작품이지만, 그렇다고 높낮이가 낮지는 않다

 └ …

 

어린이가 작품을 하나 써냈는데, 이 작품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조금도 어린이가 써낸 작품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린이가 써낸 작품 하나라고 할 터이나, 이를 가만히 살펴보면 대단히 훌륭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나이로 치면 어린이가 써낸 작품이지만, 작품으로만 헤아리면 몹시 뛰어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틀림없이 어린이가 쓴 작품이다. 그러나 아주 훌륭한 작품이다."라든지 "틀림없이 어린 나이에 쓴 작품이다. 그렇지만 더없이 훌륭한 작품이다."처럼 이야기해야 올바릅니다. 글뜻을 꾸밈없이 드러내야 알맞습니다. 괜히 군더더기 같은 말마디를 늘어놓지 않아도 됩니다. 구태여 이런저런 말치레를 덕지덕지 붙이지 않아도 됩니다.

 

군더더기를 붙인다고 글줄이 한결 아름다워지지 않습니다. 말치레를 한다고 말마디가 새롭게 태어나지 않습니다. 말은 말이고 삶은 삶입니다. 말을 말대로 바라보면서 슬기롭게 가다듬으면 좋겠습니다. 삶을 삶대로 살피면서 넉넉하게 부둥켜안으면 좋겠습니다.

 

 ┌ 그야말로 유아적 발상이다

 │→ 그야말로 어설픈 생각이다 / 그야말로 어린 생각이다

 ├ 나의 유아적 성향은 제대로 고착화되어 버린 것이다

 │→ 내 어린이다운 모습은 제대로 뿌리내어 버린 셈이다

 ├ 유아적 언행이 보인다고 나왔네요

 │→ 어린이 같은 말과 몸짓이 보인다고 나왔네 / 철없어 보인다고 나왔네요

 ├ 유아적 수준의 종교

 │→ 어수룩한 종교 / 어린이나 끌어들이는 종교 / 어설픈 종교

 ├ 유치한 말을 들을 때나 유아적 놀이 등을 할 때

 │→ 어설픈 말을 들을 때나 어린이 놀이 들을 할 때

 ├ 정부 조직개편은 유아적 대응

 │→ 정부 조직개편은 어설픈 대응 / 정부 조직개편은 철없는 대응

 └ …

 

오늘날 사람들은 '유아적'이라는 낱말을 어떻게 쓰는지 하나하나 헤아려 봅니다. 학교이든 정치판이든 사회 곳곳이든 문화예술밭이든 언론매체이든, '유아적'이라는 낱말을 곧잘 들먹입니다. '유아적'이라는 낱말을 들먹이는 자리는 하나같이 '눈높이가 낮다'거나 '어딘가 알맞지 않다'거나 '나이값을 하지 못한다'거나 '낮고 얕고 모자라다'거나 '터무니없다'거나 '철부지 짓이다'고 하는 자리입니다.

 

가만히 따지고 보면, 어린이를 얕잡아보는 눈길이 짙게 배었다고 할 만합니다. 어린이야 나이가 적을 뿐이지 어른하고 똑같은 사람이요 삶인데, 나이가 어리면 '배움이 짧거나 얕다'든지 '생각이 좁거나 모자라다'든지 '마음그릇이 어설프다'고 여기는구나 싶습니다. "어린이다운 대응"이 왜 나쁜 뜻으로 쓰여야겠습니까? "어린이다운 종교"가 왜 나쁜 소리를 들어야겠습니까? "어린이다운 말과 몸짓"이 왜 철딱서니없다는 뜻이 되어야겠습니까? "어린이다운 생각"을 왜 나쁘게 받아들여야겠습니까?

 

 ┌ 유아적 → 어린이다운

 └ 성인적 → 어른다운

 

우리 삶이나 생각을 나타낸다면서 고르는 낱말이나 말투는 얼마나 알맞은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낱말이며 말투며 아무렇게나 골라서 대충대충 읊조리고 있지 않나 궁금합니다. 제대로 말을 못하고, 올바로 글을 못 쓰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유아적'이라는 낱말을 쓴다면, 이와 맞물려 '성인적'이라는 낱말도 쓰리라 봅니다. 그리고, '유아적'이라는 낱말을 쓸 때하고 매한가지로 '성인적'이라는 낱말 또한 옳지 않게 쓰거나 잘못 쓰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아니, 우리들은 '어린이다운'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모르고, '어른다운'이 어떤 모습을 일컫는지 모르지 않느냐 싶습니다. 말뜻을 모르고, 말쓰임을 모르며, 말느낌을 모르는 우리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말뜻을 제대로 가누지 않고, 말쓰임을 옳게 살피지 않으며, 말느낌을 알맞게 나누지 않는 우리들이 아니랴 싶습니다.

 

말을 가꿀 줄 모르는 모습입니다. 넋을 추스를 줄 모르는 모양새입니다. 삶을 일굴 줄 모르는 매무새입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05.07 10:46 ⓒ 2010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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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적 #적的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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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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