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음표에 갇힌 한자말 (59) 고물(古物)

[우리 말에 마음쓰기 924] '위대함(大)'과 '큼-훌륭함-거룩함'

등록 2010.06.03 19:08수정 2010.06.03 19:08
0
원고료로 응원

 

ㄱ. 위대함(大)

 

.. 위대함(大)에 대한 이야기 ..  <도법-그물코 인생, 그물코 사랑>(불광출판사,2008) 88쪽

 

'-에 대(對)한'은 덜어내거나, '-을 말하는'이나 '-을 다루는'으로 손질해 줍니다.

 

 ┌ 위대(偉大)하다 : 도량이나 능력, 업적 따위가 뛰어나고 훌륭하다

 │   - 위대한 업적 / 위대한 자연의 힘 / 어머니의 사랑은 위대하다

 ├ 대(大)

 │  (1) 사물의 크기를 큰 것, 중간 것, 작은 것으로 구분하였을 때에 큰 것을 이르는 말

 │   - 나는 키가 커서 대를 입어야 한다

 │  (2) 중요한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 소(小)를 버리고 대를 구하다

 │

 ├ 위대함(大)

 │→ 훌륭함(큼)

 │→ 거룩함(큼)

 │→ 큼

 └ …

 

동네 저잣거리를 걷다 보면 옷가게가 줄줄이 늘어선 곳을 지나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따로 새옷을 장만하여 입지 않으니 옷가게 앞을 지나쳐도 구경하는 일은 없습니다만, 주렁주렁 걸려 있는 옷 사이에 드문드문 손글씨로 적어 놓은 알림글이 있으면 고개를 돌려 문득 쳐다보곤 합니다. 손글씨가 이끄는 힘일까 싶던데, 저절로 고개가 돌아가서 쳐다보아도 그다지 마음에 남을 만한 글월은 없습니다.

 

 ― 큰 사이즈 있음

 

다만 한 가지, "큰 사이즈 있음"이라고 적은 알림글이 가게마다 있기에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하면서 생각해 봅니다. '사이즈(size)'는 '크기'를 가리키는 말이니 "큰 크기 있음"이란 소리입니다. 이렇게 말한다고 하여 틀린 말은 아니라 할 터이나 어딘가 좀 얄궂지 않느냐 싶어요. "큰옷 있음"이나 "40 넘는 옷 있음"처럼 적어야 알맞지 않을까 싶은데요.

 

 ┌ 키가 커서 대를 입어야 한다 → 키가 커서 큰것(큰옷)을 입어야 한다

 └ 소(小)를 버리고 대를 구하다 →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찾다

 

우리 말에는 '크다-작다'가 있습니다. 이 그림씨를 이름씨 꼴로 바꾸어 '큼-작음'으로 쓰곤 합니다. 옷 크기를 가리킬 때에, '大-小'를 쓰지 않고도 '큼-작음'을 쓸 수 있습니다.

 

크니까 '크다'고 하거나 '큼'이라고 합니다. 작으니까 '작다'고 하거나 '작음'이라고 합니다.

 

크면서 훌륭하면 '훌륭하다'고 하고, 뛰어난 모습을 보이면 '뛰어나다'고 해 줍니다. 높으면 '높다'고 하며, 거룩하면 '거룩하다'고 합니다.

 

 ┌ 큰 이야기

 ├ 거룩함 이야기

 ├ 무엇이 큰 것인가 하는 이야기

 ├ 거룩함이란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

 ├ 거룩함이란 무엇인가

 └ …

 

스스로 커지고 싶다고 해서 커질 수는 없으나, 남 앞에서 내세우려는 마음을 다독이면서 이웃과 어깨동무하려는 마음을 북돋우면 저절로 커진다고 느낍니다. 알맞춤하게 말을 하거나 글을 쓰려고 애쓰면서 알맞춤하게 말을 하거나 글을 쓰기도 할 테지만, 이보다는 내 말을 듣거나 내 글을 읽을 사람들 눈높이에서 생각하고 살피고 곱씹으면서 가만히 귀를 기울이거나 기다리는 매무새를 길러 나간다면, 저절로 우리들 말과 글은 알맞춤한 자리를 찾아간다고 느낍니다.

 

자연스러움을 찾는 이한테는 자연스러움이 찾아가고, 겉치레를 찾는 이한테는 겉치레가 찾아갑니다. 살가움을 찾는 이한테는 살가움이 찾아가며, 겉멋을 찾는 이한테는 겉멋이 찾아갑니다.

 

말에 참됨을 담고자 하는 이는 참됨을 얻기 마련이고, 글에 자랑이나 똑똑함을 담고자 하는 이는 자랑이나 똑똑함을 얻기 마련입니다. 가만히 보면 그렇습니다. 참말로 바라는 대로 얻습니다. 바라는 대로 우리 몸이 움직이고, 바라는 대로 우리 말이 나오며, 바라는 대로 다른 이들 이야기가 우리 귀로 들어옵니다.

 

제아무리 훌륭하거나 거룩한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우리 스스로 바라지 않으면 귀에 한 마디도 안 들어옵니다. 제아무리 재미있거나 웃음 묻어나는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우리 스스로 찾지 않으면 코앞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해도 보이지 않습니다. 알맞는 낱말과 올바른 말투와 싱그러운 말결도 이와 같습니다. 스스로 찾으려고 해야 하고, 스스로 얻으려고 해야 합니다.

 

 

ㄴ. 고물(古物)

 

..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입맛에 꼭 맞게 설계되어 있어 젊은이들에게는 인기가 좋으나 우리 같은 고물(古物)들에게는 아직 수동의 재미를 잊을 수가 없다 ..  <선우중호-FAMILY ZONE>(눈빛,2009) 23쪽

 

'설계(設計)되어'는 '만들어져'나 '되어'로 다듬고, "수동(手動)의 재미"는 "수동 사진기 재미"나 "수동을 만지는 재미"나 "손으로 움직이는 재미"나 "손을 써서 움직이는 재미"로 다듬습니다. "젊은이들에게는 인기(人氣)가 좋으나"는 그대로 두면 되지만, "젊은이들에게는 사랑을 받으나"나 "젊은이들한테 사랑을 받으나"로 손볼 수 있어요.

 

 ┌ 고물(古物/故物)

 │  (1) 옛날 물건

 │   - 건축의 신수(神髓)를 뽑아 지은 고물인 것은 사실

 │  (2) 헐거나 낡은 물건

 │   - 고물 자동차 / 상은 역시 꽤 낡은 고물이었으나

 │  (3) 쓸모없이 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 내 머리도 이젠 고물이 되어 버렸군 / 이젠 이모도 고물 다 됐다

 │

 ├ 우리 같은 고물(古物)들에게는

 │→ 우리 같은 낡은 사람들한테는

 │→ 우리 같은 늙쟁이한테는

 │→ 우리 같은 늙다리한테는

 └ …

 

요즈음 만든 물건이 아닌 예전에 만들어 제법 햇수를 묵은 물건을 일컬어 '고물'이라 합니다. 이 낱말은 한자말이지만 굳이 한자말 틀에 넣기보다는 들온말로 삼아 얼마든지 쓸 만합니다. 딱히 한자를 모를지라도 쓸 만하고, 굳이 한자를 알려주지 않아도 알아들을 만합니다. 묶음표를 치고 한자를 넣을 때에는 외려 군더더기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더욱이 '늙쟁이'나 '늙다리'라는 낱말이 있어 나이들어 한물갔구나 싶은 사람을 빗대곤 합니다.

 

말투를 살짝 손질하여 '낡다리'라 해 보아도 잘 어울립니다. 우리 나름대로 우리 말투를 살리고 우리 말맛을 북돋울 새말은 언제나 즐겁게 빚을 수 있어요.

 

 ┌ 고물 자동차 → 낡은 자동차 / 낡다리 자동차

 ├ 꽤 낡은 고물이었으나 → 꽤 낡은 것이었으나 / 꽤 낡았으나

 ├ 고물이 되어 버렸군 → 낡아 버렸군 / 한물가 버렸군

 └ 고물 다 됐다 → 늙다리 다 됐다 / 낡다리 다 됐다 / 다 낡아 버렸다

 

국어사전 보기글을 살펴봅니다. "낡은 고물"이라는 보기글이 보여 흠칫 놀랍니다. '고물'은 "낡은 물건"을 가립니다. "낡은 고물"이라 적어 놓으면 말이 안 됩니다. "낡은 낡은 물건"처럼 말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다. '고물'이라고만 하든지 '낡은 물건'이라고만 하든지 해야 올바릅니다.

 

이 대목에서만 국어사전 보기글이 얄궂다면 그럭저럭 넘어갈 만하지만, 이 대목을 비롯해 올바르지 않게 보기글을 싣거나 낱말풀이를 해 놓은 곳이 무척 많습니다. 안타까운 노릇입니다만, 안타까운 모습이 바로잡히지 않습니다. 여느 사람인 우리들부터 우리 말글을 옳고 바르게 안 쓰고 있을 뿐 아니라, 말글을 다루는 학자들 또한 우리 말글을 옳고 바르게 가누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말이 주눅들고 참글이 꺾입니다. 참말을 살피지 않으며 참글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거짓말이 판치고 거짓글이 나돕니다. 거짓말이 북적대고 거짓글이 넘실거립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06.03 19:08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묶음표 한자말 #한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이사 3년 만에 발견한 이 나무... 이게 웬 떡입니까
  2. 2 도시락 가게 사장인데요, 스스로 이건 칭찬합니다
  3. 3 '내'가 먹는 음식이 '우리'를 죽이는 기막힌 현실
  4. 4 장미란, 그리 띄울 때는 언제고
  5. 5 1심 "김성태는 CEO, 신빙성 인정된다"... 이화영 '대북송금' 유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