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은 있는데 혜택받는 이가 없다?

[이주노동-꿈과 탄식 사이⑤] 필리핀 해외이주청의 한계

등록 2010.07.12 13:31수정 2010.07.12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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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14일~25일까지 필리핀 이주과정 전반에 관한, 한국으로의 이주노동을 중심으로 한 실태 조사 과정에서 겪은 이야기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이 글은 단순히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주와 관련하여 출국 전, 이주노동 현장, 귀국 후까지 이주과정 전반을 살펴보고, 아시아에서 이주노동이 차지하는 위치와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향후 어떤 정책이 개발되어야 하는지 등에 대한 고민을 담아보고자 한다.


이번 실태 조사는 기자 외에 아산외국인노동자센터 우삼열 소장, 박종우 활동가, 결혼이주여성인 안나, 의정부 엑소더스 이인화 간사가 동행했다. <기자 주>

글로벌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필리핀 이주노동자에 대한 수요는 줄어들지 않고, 외환 송금은 기대치보다 오히려 빠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일반적으로 영어 구사 능력이 있고, 성실하여 고용주들의 선호도가 아주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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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이주 노동 접수 대기자들 해외 이주노동을 떠나고자 하는 이들이 접수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 고기복



사실상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경제 위기 당시, 해외로부터의 외환 송금이 해고와 사업장 폐쇄 등과 같은 요인으로 30%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다. 그러나 이 예측은 빗나갔는데, 이는 몇몇 국가에서의 경제 위기로 인한 해고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노동 시장에서의 고용으로 대체되기 때문이었다.

BSP(필리핀 중앙은행)는 해외로부터의 외환 송금은 '09년말 기준 173억 달러('10.2.15 발표 자료)로 '08년도의 164억 대비 5.6% 성장을 했는데, 이는 BSP가 예상했던 4%를 훨씬 상회하는 수치라고 한다. 12월, 한 달만 놓고 봐도, 외환 송금은 15억 9천만 달러로, 전년 동월 14억 1천만 달러 대비 11.4% 증가하였다.


해외취업 돕는 해외취업청 있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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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출 인력 불법 모집 근절을 위한 광고 전단지 ⓒ 고기복


이러한 해외로부터의 막대한 외환 유입은 필리핀 경제에 젖줄과 다를 바 없다. 이를 위해 필리핀 정부는 자국민 해외취업 관리를 목적으로 1982년 5월에 POEA를 설립하였다. 해외취업 지원과 관리를 위해 POEA는 루손 지역과 세부 지역, 다바오 세 곳에 지부센터를 갖고 있고, 각 지역에는 다시 지부 단위 POEA 사무소와 POEA로부터 허가를 받은 민간 송출기관들이 있다.   

이는 정부와 민간이 인력송출에 깊이 개입돼 있는 구조로, 정부의 위임 혹은 허가를 받은 민간송출업자들에 대한 통제와 관리가 허술하게 될 때, 송출비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실례로 과거 한국에서 산업연수제가 실시될 당시, 필리핀 인력송출은 정부 기관인 POEA가 아닌, POEA로부터 허가를 받은 민간업체들에 의해 행해졌었는데, 당시 과다한 송출비용과 인권침해 논란이 줄곧 제기돼 왔었다.

POEA의 주요 기능으로는 해외 이주노동자, 선원노동자 등 송출 업무를 담당하고자 하는 송출기관 설립에 대한 인허가, 감독, 송출 모집 과정에서의 문제점 등에 대한 민원 청취, POEA 관련 규정과 법률 위반 여부 등을 모니터링하며, 이를 통해 최소 혹은 적정의 송출 비용을 책정하도록 조정하고, 불법 송출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필리핀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고자 하는 외국고용주나 기관 등을 선정 혹은 등록을 받고, 인력송출에 대한 인허가를 하기 위해 인력 수입국 관계 기관과 양해각서를 작성하고, 이주노동자 보호를 위한 공공 교육과 캠페인 등을 벌인다.

POEA의 업무 중 이주노동자 송출과 관련한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출국 전 오리엔테이션(Pre-Deployment orientation)과 불법 송출 근절을 위한 세미나 외에, 한국과 같이 국가 대 국가 인력 협정을 맺은 나라에 송출되는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언어와 문화, 노동법 등에 대한 내용을 교육하고 있다.

시스템은 갖춰져 있는데 혜택 받는 이가 없어?

이처럼 필리핀은 해외 이주 과정에 있어서 출국 전부터 정부 기관인 해외이주청(POEA)이 직접 개입하여 송출 비리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고, 해외 취업 전반에 대한 지원 체계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POEA로부터 인허가를 받은 송출기관(Licensed Agency)들이 모집 단계에서부터 사금융권과 연계되어 대부 사업을 하는 등 송출 피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필리핀 전체 GDP의 11%, 외환보유고 약 60% 차지하는 해외 이주노동자들의 송금 등으로 인한 경제 규모를 생각할 때, 해외 이주를 경험했던 이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 결과 이주노동 전반에 대한 정부의 간섭과 통제,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결국 인력송출 과정에서의 비리 근절과 피해를 막고, 해외이주노동자에 대한 지원 시스템은 명목상 갖춰져 있으나, 실질적인 혜택을 받는 이가 적다는 것은 시스템이 형식적으로 운영될 뿐, 실질적인 지원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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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 전 교육 과정 중, 컴퓨터 교육을 받고 있는 예비 해외이주노동자들 ⓒ 고기복


2001년에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하여, 8년간 한국에 있었던 호세 뽀르따시오(41)의 말이다.

"출국 전 교육을 받을 때 해외에서 재해를 입을 경우 보상받을 수 있도록 해외근재보험을 들었었다. 그러나 뇌졸중으로 쓰러져 돌아왔을 때, 정부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보험 유효기간이 지났다는 이유에서였다. 쓰러지고 돌아오기 전 마지막 7년간 일한 회사에서 퇴직금이라고 200만 원을 받았는데, 병원비 정산하는데 쓰고 나니 남는 게 없었다. 스스로 몸을 가눌 수 없던 입장에서 퇴직금을 달라고 싸울 수가 없었다. 나 같은 사람이 한 둘은 아닐 것이다." 

해외에서 질병을 앓고 귀국하거나 체불임금을 안고 귀국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닐 텐데, 그러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국내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다는 항변이었다.

한편 POEA로부터 허가를 받고 마닐라 퀘죤시에서 선원 송출을 하고 있는 한 업체 대표는 "선원이나 가사노동자나 송출 방법은 유사하다. 정부가 의지를 가지면 우리 같은 기업들 통제는 쉽게 할 수 있다. 송출을 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 다 성공하고 돌아오기를 기대한다. 어떤 문제를 안고 귀국해 버리면, 국외 문제를 민간 기업이 감당하기 어렵다. 이런 부분은 정부가 나서야 하는 부분이다"라며, 정부가 송출 이후 문제까지 간섭과 통제를 하는 방향으로 인력 송출 정책이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필리핀 전역에 걸쳐 산재해 있는 POEA와 인허가 송출기관들은 필리핀인들의 해외 이주 과정에 있어서 피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런 면에서 POEA는 NGO와의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해외 이주 과정 전반에 관한 모니터링과 출국 전 오리엔테이션과 불법 송출 세미나 등을 강화하고, 이주노동자 권익 향상을 위한 홍보와 프로그램 안내를 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를 위해 송출 과정에서 불법 모집으로 인한 피해자 구제 활동과 성인지 강화 교육, NGO와의 네트워크 구성 사업 등을 강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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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노동고용부 산하 귀환 이주노동자 지원을 위한 사회재통합센터 현판 ⓒ 고기복


한국에서 노무관으로 근무한 바 있는 필리핀 노동고용부 소속 사회재통합센터(NRCO)의 산토스 박사는 "이주노동자 권익 증진과 인권 보호를 위해 일하고 있는 한국 내 이주노동자 지원 NGO의 활동에 대해 깊이 감사하고 있다"면서 출국 전 교육과 홍보에 NGO 활용에 대한 안내를 통해 이주노동자 권익 문제에 적극 개입할 뜻을 밝혔다.
#POEA #NRCO #OFW #이주노동 #필리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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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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