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추적의 명탐정 정약용(82회)

세상을 바꾸는 명당 <1>

등록 2010.10.22 09:47수정 2010.10.22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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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토끼 한마리가 이동용 상자 안에 넣어져 놀고 있는 아래쪽에 시체는 두 눈을 감고 입술이 벌어진 채 이가 드러난 상태였다. 혀를 빼물었으나 한 푼은 족히 나왔고 살빛은 누런 데다 몸은 수척했다. 두 손은 주먹을 쥐었으며 둔부엔 대변이 나온 상태였다.

"손을 살펴라."


대개 죽은 자의 손엔 스스로 목을 맨 물건을 쥐는데 그것은 끈을 세게 당긴 탓에 죽은 후 손 안에 있기 마련이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서과는 두 주먹의 거리를 측량해 몇 자 몇 푼인지를 재었다.

숨통 아래 목을 맨 흔적은 1척(尺) 남짓이고, 줄이 교차된 부위의 상흔을 살피니 앞부분이 비교적 깊었다. 곧바로 구출해 끈을 풀었다면 혀를 빼물지 아니했을 것으로 판단됐다. 둔부엔 대변이 없으나 항문 주위가 어지러운 것으로 보아 목숨을 버린 지 꽤 시간이 지난 것으로 결론 내렸다.

"내 잠시 신고한 자를 만나 보마."

정약용은 방에서 나와 서리배들 사이에 앉은 쉰 살 가량의 사내 가까이 다가갔다. 서리배들의 눈짓 신호를 눈치챈 사내가 정약용에게 허릴 굽히며 자신이 이 집에 온 이유를 밝혔다.

"소인은 송길주(宋吉柱)란 풍수사로 사는 곳은 왕십립니다. 다섯 달 전 상희(尙姬) 아가씨가 가상(家相)을 살펴달라는 말을 했는데 그동안 소식이 없다가 하루 전에야 연락이 와 소인이 들르게 됐습니다. 오늘 아침 이곳에 도착해 보니 아가씨가 스스로 목을 졸라 자살한 것으로 보입니다."


"스스로 목을 졸랐다?"
"그렇습니다, 나으리."

풍수사의 말처럼 사체는 스스로 목을 조른 정황이 짙었다. 대개 목을 조른 경우, 시체는 입을 벌리기 마련이다. 눈은 부릅뜨고 목 위엔 졸린 흔적이 검게 나타난다. 식기상(食氣顙)은 당연히 꺼지기 마련이지만, 정약용이 궁금증을 떨쳐버리지 못한 건 풍수사가 무슨 이유로 이 집에 왔는가였다. 송길주가 입맛을 다시며 멈칫대더니 이유란 걸 내놓았다.


"다섯 달 전에 아가씨가 사람을 보내 날 불렀습니다. 그때는 이곳이 아니라 가게인 육의전(六矣廛)의 지전(紙廛)이었어요. 많은 사람이 오가고 있었습니다만 나는 가게의 기운이 이미 끊겨나갔음을 눈치채고 가게 주변을 둘러봤어요. 가게 자리가 서있는 건 이상이 없어 식구들이 사는 집을 보려 했으나 그 날 가게에 일이 있어 아가씨가 다음날로 연기한 바람에 물러나왔습니다."

"그 이후 연락된 게 이틀 전이었습니까?"
"그렇지요. 오늘 아침 약도에 그려진 집을 찾아오란 탓에 달려 왔습니다만, 아가씬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습니다."

"신고를 받고 이 집에 찾아오는 게 싶지 않았는데 풍수사께선 초행길에 어렵지 않게 찾았습니다. 약도로 봐선 쉽게 찾을만한 곳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렇지요. 처음엔 울컥 화가 치밀었으나 아가씨가 죽죽 그린 약도에 '계명형(鷄鳴形)'이란 말을 써 놓았기에 어렵지 않게 찾아냈습니다."

"계명형?"
"예에. 사람이 좋은 집터를 구하려는 게 나쁜 일이겠습니까만, 가상(家相)의 원줄기를 따진다면 관상이나 수상처럼 타고난 생김새로 운수를 알아내는 상학(相學)이지요. 선한 인연은 선하게, 악한 인연은 악하게 보응받습니다. 자자손손 선한 일을 해 왔거나 선한 인연을 받아야 복록을 누린다는 이치는 곧 하늘의 뜻입니다. 사람이 너나 할 것 없이 좋은 터를 고르는 건 선한 일을 했을 때에만 운수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지요."

"그게 계명형과 관계있습니까?"
"소인이 아가씨 서찰을 받고 한달음에 달려온 것은 '계명형' 때문이지만, 한양에 살면서 이곳에 그 같은 터가 있다는 사실에 한동안 정신이 혼미할 정도였습니다. 닭은 어떤 형태건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좋은 소식만 알리기에 태양의 사자로 알려지고 새로운 세상이나 올바른 질서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백성들은 어느 때부터 닭 그림을 대문에 붙여 액업이 끼어드는 걸 차단했다. 돌림병이 돌 때는 닭의 피를 대문이나 벽에 바른다. 그런 점을 놓고 본다면 닭은 사람들을 지키는 신의 사자임에 틀림없다. 송길주는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소인이 아가씨 가게에 갔을 때 아무리 훑어봐도 어려울 일이 없다는 겁니다. 소인이 집주름에게 들은 말에 의하면 아가씨의 부친 나웅배(羅雄培) 행수가 살아있을 때도 집에 대한 여러 말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집주름이 여러 차례 오간 것으로 보면 이 집을 팔라는 얘기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더군다나···."

정약용이 고개를 들자 풍수사는 도리질을 치며 손을 서너 차례 내저었다.
"아, 아닙니다. 내가 뭘 착각한 거 같습니다."

"그러니까 나웅배 행수는 이 집을 팔라는 말에 전연 움직이지 않았다는 얘기군요."
"그렇습니다."

"나행수가 세상을 떠나고 모든 게 아가씨 손에 넘어왔을 때 소인이 만났습니다. 아가씨가 '계명형(鷄鳴形)'이라 쓰고 장소를 가르쳐 준 것은 나의 지술(地術)을 알아보려는 속셈인 것은 소인이 이 댁에 들어서는 순간 그런 점을 한눈에 알아 봤습니다."

"집을 보니 어떻습니까?"
"몸채는 경사지지 않으면서 막다르지 않고 집 뒤론 나무숲의  경관이 빼어나 학문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이 살기에 족해 보였습니다."

한 걸음 내딛으며 송길주의 설명이 이어졌다.

"어느 집이나 가상법상 금기사항은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을 미신이라 여길 지 모르나 오행설로 보면 지극히 합리적인 게 한둘이 아니에요. 흥미로운 건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된다는 점이죠. 울 안에 나무를 심으면 곤할 곤(困)자니  꺼린다던가 디귿자 형의 집에 장독대를 왼편이나 오른편에 놓으면 망할 망(亡) 자가 돼 동티가 난다든지, 또는 부엌에서 밥을 풀 때 대문 밖으로 지나가는 복을 문안으로 끌어들이는 시늉이 돼야 좋다는 등이 그렇습니다. 그런 점을 놓고 봐도 이 집은 흠잡을 곳이 없어요."

"그런데도 사고가 났다는 건 어딘가 허한 자리로 좋지 않은 기운이 밀려들었다는 얘기가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요."

"풍수사께서 보기엔 이 집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건 풍수상의 허한 자리 때문으로 보십니까? 이 댁 아가씨가 풍수사를 집으로 부른 건 뭔가 할 말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스스로 목을 졸라 죽었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나도 그런 생각입니다만, 살다 보면 흉악한 기운은 장차를 알 수 없게 다가오는 것이니까요."
"이 집을 계명형(鷄鳴形)이라 부른 건 좋은 집터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풍수사는 다시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 정약용 쪽으로 돌아섰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으나 주위의 사람들 때문에 멈칫거린다는 눈치 채고 정약용은 그를 방 안으로 안내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면 숨기지 마시고 말씀 하세요."
"나으릴 만났을 때 소인이 계명형(鷄鳴形)이라 했던 걸 기억하실 겁니다."
"아, 예에."

"집은 각기 그 터가 지니고 있는 기운이 있습니다. 풍수적으로 물고기는 집안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렇기에 사대부 집안의 처마밑 네 귀퉁이엔 풍경(風磬)이 정겹게 흔들리죠. 그런가 하면 반닫이나 옷장, 돈궤 등등의 자물쇠에도 예외없이 물고기 장식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닭은 어떻습니까?"
"닭은 울음으로 새벽을 여는 태양의 사자로 알려졌습니다. 첫닭 우는 시각에 맞춰 제사를 드리기 때문에 계명축시(鷄鳴丑時)라 부르고, 밤사이 먹이 사냥을 나간 산짐승이 야간 활동을 멈추고 잠자리로 들어가 쉬는 게 호명인십(虎鳴寅時)니다. 더구나 이 집은 개축이나 증축이 필요없는 계명형입니다."

"그토록 계명형의 터가 좋은 자립니까?"
"세월을 지나오면서 제 모습을 숨기고 지금에 이르렀지만 더는 어쩌지 못하고 세상에 얼굴을 드러냈어요. 이른바 세력의 발톱에 찢긴 거지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런 연유로 풍수사를 동원해 초년 운이 강한 집으로 알려진 이곳을 찾아나선 겁니다. 지금까진 누구든 이곳에 살면 '수약중봉처자난(水若重逢妻子難)'이라 했으니 아내와 상극이며 자식과 헤어진다고 믿었으니 좋은 집터로 보진 않았지요."

"그렇다면 이곳이 좋은 터란 말입니까?"
"예에, 오명계(五鳴鷄) 텁니다."
"오명계?"

"닭이 두 번 운다고 알려졌지만, 오명계는 하루 저녁에 다섯 번 웁니다. 자정이 지나 날이 밝기 전까지 다섯 번 우는 것에 궁안 사람들은 관심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렇잖습니까. 닭머리의 볏은 관(冠)을 벼슬을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기에 궁에 있는 누군가는 관심이 많았을 것으로 봅니다."
"으음."

"선대왕께선 갑신년(甲申年)에 보위에 올라 병신년(丙申年)에 세상을 떴으니 보위에 오른 지 쉰 두 햅니다. 조선의 왕으로 보위에 있는 기간이 짧지 않았지만 육십 년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닭이 우는 이곳, 즉 60년만에 나타난 오명계(五鳴鷄) 터를 손에 넣어야 정권을 잡을 수 있다 본 거지요."

정약용은 할 말을 잃고 풍수사를 바라보았다. 그는 상대가 놀라는 것에 조금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터가 좋은 곳이라 해도 집이 서 있는 방위가 따라 주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집의 구조상 삼대 요소는 대문과 큰방 부엌입니다. 이것들이 어느 방향에 위치하는가에 따라 길흉을 따지는 게 양택삼요(陽宅三要)에요. 그에 따르면 이 집은 풍수사들이 복위주순양지택(伏位主純陽之宅)이라 부르지요."

"좋은 집터겠군요?"
"아닙니다, 아주 나빠요"
"예에?"
"무슨 이유로···, 시체 곁에 토끼가 놓여 있을까요?"

[주}
∎집주름 ; 부동산 소개업자
∎오명계(五鳴鷄) ; 자정 이후 다섯 번 우는 닭
∎도중(都中) ; 시전의 우두머리
#추리,명탐정,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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