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423) 모종의 2

― '모종의 거래', '모종의 사실' 다듬기

등록 2010.10.31 12:29수정 2010.10.31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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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모종의 거래를 한 건 아닌가

.. 바퀴벌레들이 부동산 중개업자와 모종의 거래를 한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  <더그 존스/박여라,이진혁 옮김-마이 브라더스 팜>(시금치,2005) 85쪽


"의심이 들 정도(程度)였다"는 "의심이 들기까지 했다"로 손볼 수 있습니다. '모종의(某種)'는 '어떤'으로 고치고, "거래를 한 건 아닌가"는 "거래를 하지 않았나"로 고칩니다.

 ┌ 모종의 거래를 한 건 아닌가
 │
 │→ 어떤 거래를 하지 않았는가
 │→ 숨은 거래가 있지 않나
 │→ 저희만 아는 거래를 하지 않았나
 │→ 저희끼리 숨어서 거래하지 않았나
 │→ 뒷거래를 하지 않았나
 └ …

사람들 눈에 뜨이지 않는 자리에서 하는 거래, 몰래 하는 거래라면 '뒷거래'입니다. '숨은 거래'나 '몰래 거래'라 해도 되겠지요. "저희들끼리 쑥덕쑥덕하지 않았는가"처럼 적어도 어울리고, "저희들끼리 몰래 짝짜꿍하지 않았는가"처럼 적어도 좋습니다. 그러고 보니 '쑥덕 거래'나 '짝짜꿍 거래'처럼 적어도 잘 어울립니다.

"저희들끼리 몰래 입을 맞추었나"처럼 적어도 되겠지요. "우리가 모르는 거래가 있지 않았나"처럼 적어도 됩니다. 글흐름과 글느낌을 생각해 보면, 저마다 다 다르게 풀어내고 담아내며 엮어낼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글짜임을 조금 손질해서 "꿍꿍이가 있지 않은가 궁금하기까지 했다"라든지, "몰래 무언가 짜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로 새롭게 적어 보아도 됩니다.

 ┌ 무슨 꿍꿍이가 있지 않은가
 ├ 뭔가 꿍셈이 있지 않은가
 ├ 남모를 꿍꿍이속이 있지 않은가
 └ …


생각을 펼치는 만큼 새 말투를 얻는다고 하겠습니다. 생각을 모두는 만큼 싱그러운 말투를 찾는다고 하겠습니다. 생각을 갈고닦는 만큼 아름다운 말투를 빚는다고 하겠습니다. 생각을 사랑하는 만큼 빛나는 말투를 길어올린다고 하겠습니다.

ㄴ. 모종의 사실

.. "아시겠습니까? 이 문서와 편지는 모두 모종의 사실을 증명하는 겁니다." ..  <데즈카 오사무/장성주 옮김-아돌프에게 고한다 (2)>(세미콜론,2009) 28쪽

"증명(證明)하는 겁니다"는 "보여주고 있습니다"나 "말하고 있습니다"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로 다듬어 줍니다.

 ┌ 모종의 사실을 증명하는
 │
 │→ 어떤 사실을 보여주는
 │→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
 │→ 어떤 말을 하고 있는
 └ …

말을 하는 길은 여럿입니다. 꾸밈없이 손쉽게 펼쳐 보이면서 꾸밈없이 손쉽게 알아듣도록 하는 길이 하나입니다. 말치레를 하면서 말치레를 느끼도록 하는 길이 둘입니다. 지식을 섞은 말자랑을 하면서 말자랑을 느끼도록 하는 길이 셋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알고 있다면 제대로 말하기 마련입니다. 빈틈없이 알고 있다면 빈틈없이 말하기 마련입니다. 옳게 알고 있다면 옳게 말하기 마련일 테지요. 그런데 우리가 누군가한테 말을 건넨다고 한다면, 말하는 내 눈높이가 아닌 듣는 사람 눈높이여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고 말하고자 한다면, 무언가 아는 내 눈높이가 아닌 무언가 모르는 다른 사람 눈높이에 맞추어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 무언가 숨겨진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 무언가 감춰진 이야기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 무언가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 …

듣는 이 눈높이에 맞추지 못하는 말은 부질없습니다. 말하는 이부터 멋모르는 소리요 듣는 이 또한 뜬금없는 소리입니다. 듣는 이 눈높이에 알맞게 맞추는 말은 아름답습니다. 수수하든 투박하든 아름답습니다. 조그맣든 나즈막하든 아름답습니다.

누군가를 돕는다 할 때에는 도움받는 사람 눈높이에 맞추어야 합니다. 누군가 배곯는 이를 돕는다 할 때에는 배곯은 이가 어떠한 몸인가를 헤아려야 합니다. 누군가와 사귀거나 어울리려 할 때에는 이이 눈높이에 내 눈높이를 맞추며 다가서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에 어떠하지요? 읽는 이나 듣는 이 눈높이에 맞추고 있나요? 읽는 이가 손쉽게 받아들이도록 힘쓰나요? 듣는 이가 즐겁게 받아안도록 마음쓰나요?

우리 스스로 우리 이웃과 동무와 식구 앞에서 어떤 모습인가를 곰곰이 헤아려 주면 좋겠습니다. 우리 스스로 내 삶과 넋과 말을 어떻게 갈무리하고 있는가를 찬찬히 되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의 #토씨 ‘-의’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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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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